이 사람 뭐지?
내가 그녀에게 호기심을 갖게 된 계기가 몇 가지 있다. 좋아함과 궁금함 중에 어느 것이 먼저일까? 나는 종종 사람들에게 좋아하기 때문에 핑크빛 물음표를 한가득 품게 되는 건지 아니면 그 물음표가 결국 좋아함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건지 묻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당신은 둘 중 어느 쪽에 속하냐고. 그걸 알아야 “언제부터 여자친구를 좋아한 거야?” 라는 숱한 물음에 답할 수 있을 것이기에. 아니, 어쩌면 그렇다 해도 아무런 답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원래 땅을 비집고 나오는 새싹은 뒤돌아서면 어느 틈에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는 법이니까. 봄은 그렇게 오기 마련이니까.
먼저, 오랜만에 선교단체 모임에 참석한 날이었다. 서로의 일상을 도란도란 나누는 중에, 그녀는
“제가 길에서 다친 참새를 발견하고 동물병원으로 데리고 갔는데요.”
그렇게 말을 시작하여 결국에는 그 참새의 치료비로만 20만원 가량이 나왔고 그럼에도 끝내 살아나지 못했다고, 그래서 슬프다고 했다. 심지어는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꺼냈다가 잔소리만 실컷 들었다고 했다. 모두는 어이없는 듯 피식 웃었는데 사실 나도 만일 내가 그녀의 어머니였다고 해도 비슷한 반응을 보일 듯했으나 동시에 ‘이 사람 뭐지’ 싶어 어안이 벙벙했다. 무엇보다 그 참새에게 덜 외로운 마지막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생명에게, 고작 최저시급으로 근근히 벌어 생활하는 대학생이 20만원을 썼다는 게 약간은 너무 바보같아 보이면서도 그 작은 생명을 소중히 할 줄 아는 사람이어서 좋았다. 오히려 어리석은 것은, 그녀가 아니라 굳이 치료비를 모두 받아먹은 동물병원 의사였다. 무슨 치료를 했는지 모르지만 20만원은 분명 순수한 대학생을 등쳐먹기 위한 금액이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더구나 프롤로그에서 밝혔듯 그녀는 엄청난 동안이다. 고작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사람이 웬 참새를 데려왔으니 오늘 술값은 벌었다 싶었겠지.
물론, 멀리서 보았기에 아름답고 소중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웃음) 만약에 그녀가 내 동생, 딸, 애인과 같이 좀더 밀접한 관계로 엮여 있었다면 “넌 참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구나. 허허~” 라며 뒷짐을 지고 있는 게 가능했을까? 아마 그러지는 못했을 거다. 찰리 체플린의 말처럼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기에. 그럼에도 사실 나는 생명을 소중히 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 가까이서도 희극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때도, 지금도.
얼마 후, 이번에는 같은 모임에서 세미나를 진행한다 하여 신촌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홍대입구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한창 걸어가고 있는데, 급하게 달려가던 분의 발에 밟혀 그만 흰지팡이가 부러지고 말았다. 여분의 지팡이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기에 나는 얼굴에 ‘나 지금 무척 난감함’ 표시를 띄어놓고는 가만히 멈춰섰다. 할 수만 있다면 얼굴에 비상깜박이라도 키고 싶었다. 자동차에 비상깜빡이를 넣을 생각을 한 사람은 정말이지 천재임이 틀림없다. 웃음)
흰지팡이가 없는 채로 신촌역, 학교, 다시 신촌역 그 너머 인천에 있는 집까지의 여정 혹은 뒤돌아 인천행? 나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놓고 온갖 상상과 가설을 붙였다 떼었다 난리를 쳤다. 결국에 한참을 망설이다가 공익요원의 도움을 받아 인천으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이어 카카오톡으로 그녀와 그린이에게 세미나에 참석하지 못하게 됐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음, 집으로 향하는 공항철도에서 사실 나는 조금 우울했다. 누군가의 성급한 발걸음에 그리도 쉽게 부러져나가는 것이 나의 일상이구나 싶어서. 복잡한 대중교통에서 흰지팡이가 누군가의 발에 차여 멀리 날아갈 때에도, 심지어는 자기가 멀리 차버린 것을 주워주기는커녕 “아, 뭐야.” 하고 무심하게 지나버리는 사람을 만났을 때에도 늘 내 일상이라는 건 크게 위협받고 흔들렸다. 세미나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 게 고작 흰지팡이가 부러졌기 때문이라니. 더구나 약간은 그녀와 그린이가 이런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스러웠다. 내가 봐도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 이유가 오로지 핑계로만 보이는 건 아닐까? 약속에 늦은 사람이 “내가 많이 늦었지? 미안해. 지하철이 좀 막히더라.” 처럼 실없이 늘어놓는 헛소리로 느껴지는 건 아닐까? 두 사람을 믿지 못했다기보다는 내 두려움의 크기가 그만큼 대단하고 단단했다.
“헐 내가 거기로 갈까? 흰지팡이는 어디서 팔아? 가까우면 사올게.”
먼저 그린이에게 답이 왔고,
“앗, 괜찮아?”
다음으로 그녀에게서 답이 왔다.
그녀의 답장에 ‘괜찮을리 없잖아’ 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나는 이상하게도 괜찮아졌다. 정말 이해할 수 없게도. 마법처럼 깔끔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 말에 추운 겨울날의 호빵처럼 온기가 스며있는 것 같아 자꾸만 입김을 호호 불며 들여다보고 싶었다. 조물조물 새하얀 호빵이 까맣게 되기까지 손떼가 묻더라도.
더욱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쪽은 그린이였는데 분명 그린이의 적극성이 매우 고마웠는데 그럼에도 그녀의 “괜찮아?” 가 더 굵고 진한 흔적을 남겼다(그린아 미안).
민망함에 한 가지 변명을 하자면, 글쎄. 그녀가 더 좋아서, 그녀가 더 따뜻해서, 그녀가 훨씬 큰 중력장이어서는 아니었다. 뭐랄까. 그때의 내게는 여타 수많은 말보다 단순한 “괜찮아?” 가 필요했다. 괜찮지 않음을 이해받고 싶었기에. 부러진 흰지팡이를 가방에 쑤셔넣고 공항철도 열차문에 기대어 꿋꿋하게 서있긴 하지만 누군가 그 너머를 바라봐줬으면 했다. 겉으로 보이는 표정이나 몸짓이 아닌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