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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썬 Jun 18. 2021

이제서야 글을 쓰는 이유

한국으로 돌아온 지 일 년 반이 된 지금, 나는 기록한다

    2020년 3월 25일 오전 10시 35분. 샌프란시스코 공항. 나는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니,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날 있었던 모든 일은 아주 생생히 기억난다. 미국에서 만난 나와 영혼을 나눈 것만큼 비슷했고 또 달랐으며,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에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이리도 가까워 질 수 있을까 믿어지지 않는 친구인 린다가 공항까지 나를 데려다 줬다. 린다는 내 기숙사 방에서 그 전날 잠을 잤고 새벽 5시 우린 먹먹한 마음을 머금고 공항으로 떠났다. 미국에 지내는 동안 린다의 차를 타고 이동한 적이 참 많았다. 대부분의 이동을 린다의 차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우린 항상 붙어다녔고 린다는 나와 함께 이동하는 걸 즐거워했다. 항상 비틀즈와 같은 올드팝, 우리의 수다와 웃음소리으로 가득 찼던 린다의 차는 그날 새벽만큼은 고요했다. 저멀리 해가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고 있음에도,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도 우린 약속이나 한 듯 입을 열지 않았다. 열 수 없었던 걸까? 시간은 야속하게도 내가 진짜 출국 게이트로 들어가게 떠밀었고 그간 몇 날 몇일을 눈물로 지새웠던 우리는 만두같이 퉁퉁 부운 얼굴로 마지막 포옹을 한 채 기약없는 Goodbye를 외쳤다. 이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 몰랐기에, 팬데믹이 마침내 끝났을 때 우리 각자의 상황이 어떨지 알 수 없었기에.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온 난 너무 아팠다. 가슴이 쓰라렸다. 장대한 목표를 품은 채 떠났던 나의 교환학생은 터무니 없게 끝나버렸다. 나의 잘못 때문이 아닌 갑작스레 전 세계가 맞이한 운명의 장난에 난 날개가 꺾인 채 돌아왔다. 산타크루즈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그 곳에서의 나의 자유가 그리웠으며 새로운 학문과 개방적인 수업 분위기, 학생들의 열정이 자꾸만 생각났다. 눈이 마주치면 피하기 보단 싱긋 웃으며 가벼운 인사를 건네던 그 동네의 편안함과 포근함이 잊히지 않았다. 금방 괜찮아질거라 생각했던 건 큰 오산이었고 난 지금까지도 미국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인화하지도 못할 만큼 아파하고 있다. 사진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들여다보면 눈물이 터져나올 것 같았고 답답함과 억울함, 서러움에 온몸이 찢어질 것만 같아서 그 두려움에 가끔 갤러리로 슬쩍 추억하기만 했고 그러는 중이다.

Natural Bridges State Beach, Santa Cruz. 꿈에서 깨자말자 이 영상을 찾아봤다. 분홍빛 하늘이 그 달콤함을 뿜어내니까.

    하지만 그저께 밤, 산타 크루즈에서의 추억이 참 예쁘게 그리워지는 경험을 했다. 아련했지만 예전만큼 아픈 꿈이 아닌 그저 몽실거리는 설렘으로 산타크루즈는 내 꿈속에 나타났다. 내가 지냈던 기숙사 방과 그 당시의 하우스메이트들, 내 대학교 절친,그리고 린다까지 다 나와서 한참 수다를 떨고 기숙사를 어떻게 꾸밀 지 재미나게 의논하던 꿈이었다. 기숙사는 내가 떠났던 그 때와 똑같았고 하우스메이트들도 마지막 기억 속 그들이었다. 린다는 요즘도 자주 페이스타임을 하기에 마지막 페이스타임 때의 모습이었다. 오랜만이었지만 어색함 하나 없이 반가웠고 그들이 주는 즐거움은 몇 배가 되었으며 그리웠던 산타크루즈의 냄새도 내 온몸을 산뜻하게 만들어줬다. 꿈속에서도 팬데믹은 여전해서 다들 조심하였고 세탁실에 빨래하러 가는 과정조차 쉽지 않았다. 그마저도 좋았다, 하지만. 그토록 달콤했던 꿈에서 일어난 후, 나는 결심했다. 산타크루즈에서의 기억을 내 마음과 머릿속에만 담아두지 않기로. 산타크루즈를 다녀온 후 나의 변화를 기록으로 남겨보기로.


    이별의 아픔을 이겨낼 시간이 분명 찾아온 것이다. 나의 성장을 마주할 순간이 마침내 다가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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