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머뭇거리게 되는 나이. 스물 셋, 너무나도 어린 나이.
2016년에 발급된 나의 하나 뿐인 주민등록증은 벌써 너덜너덜하다. 분명히 처음 받았을 땐 윤기가 흐르고 빛이 났는데 말이다. 이건 바로 저 구석부터 벗겨진 보호필름 때문이다. 2018년 새내기, 즉 스물이 된 순간부터 쉬지 않고 나의 나이를 알려주려 노력했던 이 아이는 조금씩 자신이 제 역할을 했다는 걸 내게 드러내왔던 것이다. 지쳤을 만도 하지. 송도에 있는 국제캠퍼스에서 동기들과 철없이 하하호호 생애 첫 자유를 만끽하며 보냈던 나의 스물, 신촌 캠퍼스로 새롭게 왔으니 또다시 새내기라고 억지를 부리며 밤새 집을 들어가지 않았던 스물 하나, 꿈을 찾아보려 미국으로 갔으나 무력하게 돌아와서 보냈던 스물 둘, 그리고 지금의 난 벌써 스물 셋 하고도 반 년이 지난 이 순간까지 쉴 새 없이 내 지갑 한 켠을 들락날락 거렸으니 말이다.
숨길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떳떳하진 않은 점은 바로 난 술을 즐긴다는 점이다. 잘 마시는 건 아니다. 단지 술을 마실 때 함께 있는 사람들, 취기가 점점 오르며 한숨 돌리는 나 자신, 툭툭 스스로를 내려놓으며 풍겨내는 흥겨운 분위기가 좋아서 그렇다. 아니, 적어도 2학년 때까지는 그랬다. 그 땐 취해서 여과없이 보이는 친구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재밌어서 술자리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리도 유쾌했던 친구들을 만나도 우리의 주제는 더없이 무거워졌다. 겨우 평균 수명의 4분의 1을 겨우 넘겼지만 남은 인생에 대한 책임감은 너무나도 크게 와닿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하루 빨리 "취준"을 성공해야지. 효도해야지. 내 집 내 차, 더 나아가면 내가 일구어낸 나의 식구들까지. 시시콜콜한 농담을 하기보다는 취기에 각자의 고민을 털어놓고 정답이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하나둘씩 털어놓는 시간을 가진다. 약간 어색했던 사이의 사람들에게조차 술 마시자는 핑계로 만났던 우리는 이젠 잘 지내냐는 안부 인사가 두려워 가깝던 사람조차 피하게 되는 시기가 맞이하였다. 그리고 난 자연스레 술을 마시러 외출하는 빈도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누군가 나에게 "넌 요즘 뭐 준비해?" 라는 질문만큼 두려운 게 없으니까. 언제까지 "아직은 더 고민해보려고"라는 대답이 유효할 지 잘 모르겠으니까.
눈에 띄는 결과를 내진 않았지만 도전을 머뭇거렸던 적은 없었던 지난 일 년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꿈꿔왔던 꿈을 실패하더라도 미련은 남기지 말자는 생각에 하루에 열 시간도 넘게 공부하며 준비하기도 했었고, 불가능한 걸 알지만 스펙 쌓겠다고 여기저기 지원한 적도 있었다. 나보다는 타인을, 우리 가족보다는 괜시리 이 세상을 원망한 적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열심히 한다고 해서, 무언가에 도취되어 산다고 해서 객관적인 수치로 나의 능력을 증명해야하는 순간에 그 능력과 잠재력이 그대로 인정받을 순 없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솔직하게 나의 이야기를 소소히 전달할 수 있는 이유는 지금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어렴풋이 윤곽을 잡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스스로에게 더이상은 얽매여 있지도, 미래의 내가 돌이켜봤을 때 후회하는 건 아닐까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지도 않다. 내가 나 자신에게 가장 솔직해져 있는 이 순간이기에 나는 글을 쓰고 내게 자유를 되찾아줬던 교환학생 시절을 아득히 추억한다. 나의 글을 통해 36.5도, 인간의 온기를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따스한 빛 줄기의 품에 누군가를 품을 수 있길 바라며. 아름다운 추억을 그려냄으로써 찬란한 미래를 그려나가는 게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니까. 세상이 다시금 꿈틀거리는 지금, 어떠한 싹을 틔울 지 나는 정했으니까. 그리고 그 싹이 금새 시들더라도 새롭게 움트는 새싹에게 더 신선한 물을 줄 자신이 있으니까.
단 하나의 걸림돌 없이 쭉 뻗어나가는 산타크루즈의 지평선을 담아낸 사진은 매 순간 내게 깊은 울림과 위로를 준다. 마치 나에게도 한계란 없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