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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꼽슬이 Apr 18. 2024

내가 달리는 이유

드디어 하프코스다

어린 시절, 나는 잘 달리는 아이였다.

운동회에서 달리기를 하면 1등이었고, 반별 계주를 하면 항상 선수로 뽑히곤 했다.

체력장에서 100m 달리기를 하면 기록은 항상 여자 중에서 3등 안에 들었고 말이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온 이후, 나는 달리기를 잊고 살았다.

그리고는 달리기를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스장에 가서 트레드밀 위에 올라가도 빠르게 걷기는 했으나 달릴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다 결혼을 했고, 몇 년이 지나 엄마가 되었다.

그 사이는 일이 바빠서, 젊어서 큰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운동 생각도 안 하고 살았다.


아이를 키워 본 엄마들은 이해하겠지만, 직장을 다니며 어린아이를 키우자면, 엄마의 운동은 언감생심이다.

할 수 있을 땐, 시간이 있어도 안 했는데 못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운동을 해야 하는데... 마음은 굴뚝같지만, 무슨 운동을 해야 할지, 어디를 가야 할지 운동 생각을 하면 머릿속이 하다.


그러다 아이도 어느 정도 자라고,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그게 5년 전이다.

1학년과 달리 2학년만 되어도 훨씬 손이 덜 갔다. 그러나 나이 많은 엄마는 어느새 40대가 되었다.

40대가 되니 그렇게 체력 좋았던 엄마도, 수면 부족에 운동 부족이 더해준 체력 저하는 어찌할 수가 없다.

이제는 선택이 아닌, 살기 위한 동이 필요했다.


그래서, 일단 무작정 나가서 걸었다.

걷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었으니까.

대학 시절, 학교는 수원인데 뚜벅이로 서울을 그렇게 자주 다니며, 서울 구석구석을 많이도 걸었었다.


걸어보니, 좋았다.

산책로가 잘 되어 있는 동네에 사는 것이 감사했다.

일찍 재워야 키 큰다는 신념에, 미라클 베드타임 코칭을 받은 후로는 9시에는 아이를 재웠고( 재웠다기보다는 같이 잠들었다), 그러다 보니 5시도 안 되어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검푸른 하늘 아래, 새벽 공기를 마시며 걸으니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그제야 내 옆을 쌩하니 달려서 지나가는 복장 갖춘 조거들이 눈에 보였다.

달. 리. 기.

잊고 있던 단어였는데, 한 번 달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앞에 있는 가로등까지만 달려보자.

저 코너를 돌 때까지만 달려보자.

1km만 달려보자.

그렇게 조금씩 달리다, 걷기를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10km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되었다.


2022년에는 버츄얼레이스 두 번을 포함해서 10km 마라톤을 세 번 참가했고,

1시간 이내로 완주하는 성과를 거뒀다.

달리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고,

2023년에는 하프마라톤을 완주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었다.


그러나, 뭐가 그리 분주했는지 신청기간도 놓치고 이래저래 마라톤은 참여하지 못하고 지나갔다.


올해 다시, 새해 목표 중 하나를 하프 마라톤으로 잡았다.


2022년 가을에 10km 완주했던 경기일보 주최의 경기마라톤대회에 신청했다.

생각보다 체중 감량이 안되어서 신청 순간까지 그냥 10km만 달릴까 갈등했으나,

일단 그냥 질렀다. 에라 모르겠다. 이번엔 하프 코스다.

마라톤 참가자 기념품과 책자, 그리고 배번

달리면, 숨이 차다. 점점 힘이 든다.

그런데 그 순간을 버티고 이겨내며 내가 스스로 정한 목표를 달성할 때의 쾌감은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는, 그런 쾌감이 있다.

땀을 쭉 빼고, 몸이 한결 가벼워진 그 느낌. 그것도 참 좋다.


그렇게 나는 달리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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