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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꼽슬이 May 08. 2024

국악소녀, 나의 딸

가요보다 민요

딸아이는 어릴 때부터 흥이 많았다.


32개월쯤 안면도 오션캐슬로 가족여행을 갔는데, 저녁을 먹고 나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리조트 야외 펍에서 맥주 한잔하고 있었다. 


마침 라이브 공연이 시작되었고 분위기 무르익을 즈음 신나는 노래가 나오자 단체로 오신 듯한 어른들 무리가 무대 앞으로 나가서 전형적인 관광버스 춤을 추시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을 유심히 살피던 아이가 갑자기 무대 쪽으로 아장아장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남편과 시동생은 맥주 마시며 대화가 무르익어 못 보고 있었고 나만 혼자 보다가 저기 좀 보라며 둘에게 무대를 가리켰다.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손뼉을 치다 어깨춤까지 추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뻣뻣한 몸치 부모에서 어쩜 저리 흥 많은 아이가 나왔지? 너무 신기하고 예뻤다.



그렇게 흥 많던 딸은 노래도 참 좋아했다. 듣는 것도 좋아하고 따라 부르는 것도 좋아하고.


아이가 겨울왕국 OST와 dance monkey라는 팝송을 되지도 않는 영어로 들은 대로 따라 부르는 것을 들으신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노래를 좀 가르쳐보면 어떻겠냐고 진지하게 말씀하셔서 깜짝 놀랐다.


나는 고음불가에 박치까지 겸한, 누가 뭐래도 음치.

남편은 나보다 좀 낫긴 하지만 그렇다고 노래방 가수 정도도 안 되는 노래실력이라...

아이가 노래를 잘할 것이라는 기대는 1도 안 했기 때문이다.

고음이 많이 안 올라가는 것이 사실이기도 했고...


그런데 생각보다 노래를 잘 불렀다. 자기 목소리에 어울리는 노래를 골라 수도 없이 듣고, 따라 부르니 잘 부를 수밖에 없나?라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난 아무리 그렇게 해도 잘 부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나의 약점 중 하나가 노래 부르는 것이었다. 나는 그래서 학창 시절에 음악시간이 가장 괴로웠고, 가창 시험이 제일 싫었다. 그래서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은 꽤 좋은 재능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 번 가르쳐보자 싶어서 걸어서 갈 수 있는 동네 성악학원에 가서 상담을 받고 바로 다음 주부터 레슨을 시작했다.


예체능은 돈 없으면 못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는 레슨비였지만 아이를 위한다고 생각하니 아깝진 않았다.


그런데 6개월을 주 1회 수업받는 동안 아이는 점점 레슨 시간을 싫어했다. 선생님과 잘 안 맞는 것 같았는데, 가르치는 방식이 아이의 장점을 살려주거나 약점을 개선시켜 주는 것 같지 않았다. 그 와중에 아이는 수업 때 받은 동요 악보를 보고 노래는 주야장천 불러젖혔다.


그중에서도 몇 곡 안 되는 국악 동요를 부를 때 특히 신나게 잘 부르는 것 같았다. 듣고 있으니 허스키하고 저음에 좀 더 강점이 있는 목소리가 국악과 더 잘 맞는 것 같기도 했다.


요즘 애들은 워낙 아이돌을 좋아해서 가요도 아니고 국악을 배우고 싶어 할까 싶었는데 혹시나 해서 물으니,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국악 배우고 싶어요!"


찾아보니 다행히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국악 학원이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우리 동네의 가장 유명한 학원 건물에 떡하니 있었는데 우린 왜 몰랐을까. 전화로 시간을 잡고 상담을 받아보니 선생님은 명창에게 사사 받은 분으로 성격도 참 좋아 보이시고, 아이와 성격도 잘 맞으실 것 같아 보였다.


성악 배우기를 그만두고 7개월을 쉬다가 시작한 국악이 이제 만 4개월이 되었다. 배우면 배울 수록 좋아하는 아이는 7월이면 덴마크에 가는데 거기 가서도 배울수 있냐며 선생님께 줌 수업 허락을 받고 오는 적극성을 보였다.


배운 지 두 달도 안 됐던 설 연휴 때도 할머니댁에 가서 진도아리랑을 불러 드리고 용돈 겸 세뱃돈을 두둑이 받아왔는데, 며칠 전 가족 모임에 가서는 진도아리랑, 남원산성, 너영나영 이렇게 세 곡을 불렀고, 여러 어른들께 용돈을 받으며 신나 했다.


성악 배울 땐 동요라 어른들께 불러드릴 일이 없었는데 판소리와 민요는 참 좋은 아이템이 되었다. 이 아이에게 국악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 나도 참 궁금한데, 아이가 하고 싶다고 할 때까지는 계속 응원하고 지원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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