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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Use Sep 01. 2021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반쪼가리 인간이다

이탈로 칼비노 作 - <반쪼가리 자작>


환상문학의 대가 이탈로 칼비노의 전집을 샀다. 칼비노의 작품인 <반쪼가리 자작>, <나무 위의 남작>, <존재하지 않는 기사> 3개를 합쳐서 '우리의 선조들' 3부작으로 부른다. 3개 모두 환상 문학인데, 모두 내 취향의 작품들이었다. (그의 다른 작품인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은 재미없었다)


<반쪼가리 자작>은 '우리의 선조들'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다. 이 이야기는 몸이 반토막 나는 주인공인 메다르도 자작의 시점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의 어린 조카가 객관적인 시점에서 서술한다.


메다르도 자작은 전쟁에 나갔다가 대포에 맞으며 몸이 두 동강이 난다. 그중 몸의 오른쪽만 살아남았고, 남은 부분은 다행히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반쪽이긴 하지만 찰과상 하나 없이 멀쩡하게 살아난 것이다.


물론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만 이게 칼비노 작품의 특징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서 그레고르가 눈을 떠 보니 벌레가 되어 있는 것처럼 이 작품도 그저 몸이 두 동강이 나며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뿐이다.



조카가 있는 자신의 마을로 돌아온 반쪽짜리 메다르도 자작은, 완전히 달라져 있다. 아버지가 아끼던 새를 죽이는 걸 시작으로, 그가 지나가는 길에 있는 열매와 개구리, 버섯들을 모두 반 조각낸다. 조카에게 반쪽짜리 버섯들이 담긴 바구니를 주고 튀겨 먹으라고 하지만, 그건 모두 독버섯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메다르도의 사악한 면만 모아진 반쪽이라며 수군거린다. 그가 자작이라는 높은 신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재판을 할 때마다 모두 교수형에 처하는 끔찍한 판결을 내린다.


그의 말발굽 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사람들은 놀라서 달아나 버리곤 했다. 자작의 사악함은 그 누구도 용서하지 않았고, 전혀 예상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돌발적인 행동들을 일순간에 폭발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어린 조카는 마을 사람들을 관찰하는데, 그들은 모두 어딘가 특이하다.


트렐로니는 평생을 배 위에서 보낸 선상 의사였다. 그는 의사지만 환자를 돌보지 않으며, 자신의 과학적인 발견에만 몰두해서 닭 천 마리 중 한 마리가 걸릴까 말까 하는 미미한 질병 같은 것만 연구한다.


피에트로키오도는 목수 일을 하는 마을의 장인이다. 자기가 맡은 일이면 그 어떤 것이든 열심히 하는 믿음직하고 뛰어난 일꾼이지만, 걸작이라고 할만한 여러 고문 기구들과 교수대를 만든다. 그는 자신이 제작한 도구들로 무고한 사람들을 사형하는 것에 항상 괴로워하지만 제작을 멈추지는 않는다.


전염이 될까 외딴곳에 떨어져 사는 문둥병 환자들은, 마을 사람들의 지원을 받으며 살아가지만, 그것을 방탕하게 사용하며 매일매일을 놀며 지낸다.


그리고 위그노교도인 들도 있다. 위그노교도들을 박해하는 프랑스에서 도망 온 사람들인데, 박해를 받거나 신앙이 전혀 다른 사람들 틈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전혀 믿지 않는다. 은총을 받을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거의 죄를 짓지 않고 살며, 남녀 모두가 열심히 일한다.


내가 어느 곳을 돌아보아도 트렐로니, 피에트로키오도, 위그노들 그리고 문둥이 같은 반쪽짜리 인간의 표식을 지닌 사람들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봉사하고 있는 주인은 바로 메다르도 자작이었고 우리는 그에게서 자유로워질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자작의 남은 반쪽이 살아 돌아온다. 그 반쪽은 다행히도 선한 반쪽이었다. 악한 반쪽이 제비들 다리를 부러뜨려 놓으면, 선한 반쪽이 모든 제비들의 다리를 치료해주는 등 두 자작의 행동은 계속해서 충돌했다. 마을 사람들은 선한 반쪽이 돌아왔으니 이제 괜찮아질 거라며 안심한다. 하지만 선한 반쪽은 지나친 선행을 베풀었다. 염소와 오리가 비에 젖을까 봐 자기 망토를 천막처럼 벌리고 서 있고, 자고 있는 어린 조카의 위로 독거미가 지나가려고 하니, 그를 깨우고 싶지 않아 자신이 대신 독거미에 물리는 걸 택한다.


아, 파멜라. 이건 반쪽자리 인간의 선이야. 세상 모든 사람들과 사물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야. 사람이든 사물이든 각각 그들 나름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이지. 내가 성한 사람이었을 때 난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귀머거리처럼 움직였고 도처에 흩어진 고통과 상처 들을 느낄 수 없었어. 성한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도처에 있지. 반쪼가리가 되었거나 뿌리가 뽑힌 존재는 나만이 아니야, 파멜라. 모든 사람들이 악으로 고통받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면서 너 자신도 치료할 수 있을 거야.



마을 사람들은 곧 지나친 선행은 악행만큼 나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트렐로니는 자기 의술을 실제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착한 반쪽이 매일 아침마다 가난한 사람, 환자, 나이 든 사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 모두를 방문하며 트렐로니를 불러 치료를 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착한 반쪽은 위그노교도인 들을 방문해서 그들이 팔고 있는 호밀을 더욱 저렴하게 내놓아야 가난한 이들이 굶어 죽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미 저렴한 가격이었지만 착한 반쪽은 그들에게 더 선행을 베풀라고 강요한다.


위그노들은 이제 착한 반쪽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교대로 보초를 섰다. 위그노들은 이미 그를 조금도 존경하지 않았다. 착한 반쪽은 매번 그들의 곡창에 곡식이 얼마나 있는지를 감시하러 와서는 곡식의 매매 가격이 너무 높다고 설교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여기저기 하고 다녀 위그노들의 장사를 망쳐 놓았다.(104p)



목수 피에트로키오도에게는 그가 만든 기계들이 초래한 비극적 결과를 상기시키며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게 아닌 선의를 베풀기 위해 사용할 기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부추긴다. 피에트로키오도는 고민과 자책감 속에서 지내게 된다. 착한 반쪽은 가난한 사람을 위해 밀가루를 빻는 물방아도 되고, 빵을 구울 수 있는 오븐으로 사용할 수도 있으며 오르간도 되는 기계를 만들어 내라고 하지만, 목수는 그런 물건을 만들 수 없다. 악한 반쪽이 시킨 사형대나 고문대는 금방 만들었음에도 말이다. 목수는 자신의 영혼에 사악함이 있기 때문에 잔인한 기계밖에 만들 수 없는 게 아닐지 괴로워한다.


그리고 문둥병 환자들의 부도덕한 행동에 분개했고, 그들에게 설교했다. 그는 문둥병 환자들의 영혼까지도 치료하려고 했다. 문둥병 환자들의 행복하고 방탕한 시절은 끝나 버렸다.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지 않으면서 광장에서 유희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떠들고 놀면서 감정을 발산해 내지 못하게 된 문둥이 여자들은 갑자기 밝은 태양 앞에서 자신들의 병을 발견하여 밤이면 밤마다 절망에 눈물로 지새웠다.


악한 반쪽보다 착한 반쪽이 더 나빠.



악한 반쪽은 선한 반쪽이 자신을 죽일까 두려워 수비대들을 보내 선한 반쪽을 죽이라 명령한다. 하지만 수비대들은 착한 반쪽을 죽일 수 없어, 착한 반쪽에게 사실을 말하고 악한 반쪽을 죽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착한 반쪽은 살인할 수 없다며 그들을 돌려보낸다.


"그를 구제하는 방법은 바로 친절함과 자비로움으로 선한 행동을 보여 주는 길뿐이라오."
"우리는 그러면 당신을 죽여야만 합니다."
"안 되오! 아무도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우리가 자작을 죽이지 않을 경우 우리는 그에게 복종해야만 합니다."
"이 약병을 가져가시오. 그걸 자작에게 가져다주고 이렇게 말해요. 억제해야 할 열정을 지녔다는 게 무얼 뜻하는지 아는 사람이 보내는 선물이라고요."

수비대들은 약병을 가지고 자작에게 갔고 자작은 그들을 교수형에 처해 버렸다.


인간에게는 선한 면도 있고 악한 면도 있다. 이탈로 칼비노는 선과 악을 완전히 이등분해 버림으로써 절대선과 절대악 어느 쪽이든 하나만 존재해서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은 선과 악이 공존함으로써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낼 수 있다.


우리의 감정은 색깔을 잃어버렸고 무감각해져 버렸다. 비인간적인 사악함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비인간적인 덕성 사이에서 우리 자신을 상실한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트렐로니는 결국 악한 반쪽과 선한 반쪽을 붙이는 데 성공한다.


그렇게 해서 외삼촌은 사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사악하면서도 선한 온전한 인간으로 되돌아왔다. 표면적으로는 반쪽이 되기 전과 달라진 점은 없었다. 그러나 그에겐 두 반쪽이 재결합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주 현명해질 수 있었다.
...
아마도 우리는 자작이 온전한 인간으로 돌아옴으로써 놀랄 만큼 행복한 시대가 열리리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세상이 아주 복잡해져서 온전한 자작 혼자서는 그것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 책은 어른들을 위한 우화 형식으로 쓰여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 그의 장편 소설들 중 짧은 편이기 때문에 몰입해서 금방 읽어버리기 좋다. 선과 악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이렇게 쉽게 우화로 그려낸 것이 놀라웠다. 환상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칼비노의 작품에 빠지게 될 것이다.


나는 완전한 열정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항상 부족함과 슬픔을 느꼈다. 때때로 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불완전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그가 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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