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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vocado Mar 20. 2021

"약속하세 세계에 도전하는 우리의 모습"

첫 직장 그리고 꿈과 도전의 1-1장

에필로그: 에피소드를 시작하기 전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가, 다음 이야기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대학 생활 4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가슴 벅차면서도 까마득한 과거 같다. 전공은 전자공학, 하지만 꼭 이 전공을 선택하고 싶어서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87년 고3 때 진학하고자 하는 대학교와 전공의 선택이라는 것은 담임 선생님이 펼쳐 놓은 예비 학력고사 성적 (내가 아마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과 별의별 다양한 입학 가능 학교를 보여주는 커다란 종이에서의 선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몇몇 똑똑한 친구들은 소신껏 혹은 호기에 자기가 정해서 해보겠다며 선생님과의 면담시간에 감히 선생님이 추천(?) 해 주시던 학교와 전공과는 전혀 다른 곳을 선택하곤 했다. 뭐 이것은 많지 않은 경우였고 대부분 친구들은 나와 같이 선생님의 30cm 자와 빨간펜이 가리키는 학교를 지원하였다. 결론은 선생님의 조언과 마지막 나의 선택에 결코 후회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어렵게 입학하고 중간에 국방의 의무를 위한 휴학을 빼고는 달리 방황하지 않고 4년의 대학 생활을 마칠 수 있어서 작게나마 나 자신에게 자랑스럽기도 하다. 사실 대학시절 4년은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용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만큼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그래서인지 대학 생활 4년 동안 서로 다른 직업, 아마도 기억에 10가지 이상은 해본 것 같다. 남들 다하는 과외 빼고 말이다. 갈비집 서빙/불판 닦기, 백화점 식품매장, 야간 경비, 아르바이트 방범 (그때 당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각 경찰서나 파출소에서 경찰업무 일부를 도와주는 아르바이트였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편하고 보수도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주로 밤에 파출소에서 일을 하다 보니 낮과 밤이 바뀌는 게 문제였지만), 선배 아버님이 하시는 옷 공장에서 시다 (우리말로 바느질 보조?), 백화점 물건 배달, 공사장 막일 (정말 힘들어서 오래 하지는 못했다), 물류창고 회사에서 물건 정리, 등등. 힘들기는 했어도 이러한 경험들이 지금의 내가 있게 한 과정이자 회사의 이름이나 직업의 종류를 따지지 않는 열린 생각과 도전의 밑바탕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정신없이 대학 생활을 보내면서 4학년 초인가 몇몇 회사에 선지원 할 기회가 생겼다. 지금은 달라진 것으로 아는데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하더라도 보통 대기업들의 정기 입사 지원이 11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있던 학과도 그다지 네임 벨류가 나쁘지 않아서 인지 다른 일반 지원자들보다 먼저 지원할 기회가 생겨서 혜택을 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지원한 곳은 엘지 전자하고 삼성전자였다. 엘지를 먼저 지원해서 서류합격이 먼저 되었는데 나중에 삼성이 돼서 삼성으로 최종 결정을 하고 엘지 인사과에 전화해서 정중히 양해를 드렸던 기억도 난다. 삼성 입사 과정은 다 공평한 것으로 아는데 언제 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삼성 직무평가 시험도 보고 집단 면접도 보고 거쳐야 하는 것은 다했고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어 최종 합격을 하였다. 대망의 94년 2월 14일 삼성 생명보험 연수원 (이하 생보 연수원)에 첫발을 디디면서 4주간의 기본 합숙 교육을 다른 모든 그룹에 입사한 동료들과 같이 받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생보 연수원은 내가 알기로는 에버랜드 맨꼭대기에 위치한 최초로 지워진 삼성 연수원이다. 뭐 내심으로는 입사 당시 가장 최근에 지워진 시설 좋은 창조관 (생보 연수원 아래쪽에 있는 연수원)으로 가기를 바랐는데, 어디 그게 내 뜻대로 될 것은 아닌 것 같고, “자 이제 시작이다”라는 부푼 마음을 품고 하루를 시작한 잊지 못할 기억이 되었다.



  94년 삼성은 그 유명한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 다 바꿔보자"라는 고 이건희 회장의 유명한 말과 함께 7시 출근 4시 퇴근이라는 국내 어디에서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것을 시작한 첫해 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 시작의 고통을 연수원 처음 들어온 신입 사원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7시 교육 시작을 위해서 5시 기상, 이것은 뭐 다시 군대 들어온 느낌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럼 이론대로라면 4시에 교육이 끝나서 자유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밤늦게까지 팀원들과 다음날 과제 준비하면서 거의 자정이 다 돼서야 잠자리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4주 동안 반복되는 일상이었으나 지치고 피곤하기보다 즐겁고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하라 하면 늦게 자는 것만큼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매일매일 바쁜 일과 속에서도 가장 즐거운 시간은 아침 점심 저녁 꼬박꼬박 챙겨 먹는 식사 시간이 이였다. 단체 급식이지만 매번 바뀌는 식단이 허기짐을 달래는 것뿐만 아니라 먹는 즐거움까지 주고 있었으니 지금 일일이 메뉴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4주 내내 대만족이었다. 물론 식사 후에 이어지는 강도 높은 강의와 과제들 그리고 밀려오는 졸음에 두 눈을 부릅뜨려고 한 노력은 지금도 생생하다.



  연수원에서 우리들의 멘토이자 훈육관이 되어주신 지도 선배들이 있었는데, 빨간 모자만 안 썼지 가끔 군대 유격 훈련 조교 같은 느낌이 들곤 하였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모든 지도 선배들은 현업에서 발탁되어 4주간 신입 사원들과 같이 합숙하며 본인의 일상을 뒤로한 채 신입 사원들 챙기느라 많은 희생을 감수한 분들이었다. 그분들의 노력과 열정으로 어리숙한 신입 사원들 몸에 차츰 파란색을 입혀가는 삼성 연수원 생활 동안은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감사드리는 마음이다. 우리들의 모습이 해이해질 때면 엄한 모습으로, 힘들고 지칠 때면 다정한 모습으로 때에 따라 적절히 밀고 당겼던 선배들의 모습을 기억하면 입가에 미소가 피어난다. 비율로 본다면 소위 군기를 잡을 때가 많았는데 어느 날은 선배들 본인의 신입 사원 시절 힘든 업무나 꾸지람으로 인해 옥상이나 화장실에 가서 남모를 눈물을 여러 번 흘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이제 곧 나에게 닥칠 고난의 모습이 그려지며 다시 긴장의 끈을 조이곤 하였다. 그 와중에 겉으로 여유 있는 동기들이야 아무 내색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누구도 모를 미래에 벌어질 일에 대해 그냥 듣고 흘릴 친구는 없었을 것이다. 선배들이 이야기한 여러 에피소드들이 당장 훈육을 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본사 배치후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화장실에서 울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밀려오는 스트레스에 하늘을 쳐다보며 막막한 심정에 눈가가 조금 촉촉해질 정도 하하.



  여러 계열사 즉 삼성전자, 물산, 화재, 생명보험 등등에 배치될 다양한 배경과 지식을 가진 동기들과 함께 했던 4주 동안 느낀 것은, 세상에는 참 재주 있는 사람들이 많구나 라는 것이었다. 브레인스토밍 (소위 돌 폭풍이라고 하는 서로 돌아가며 아이디어와 의견을 이야기하는 도전적인 시간) 때 생각지도 않거나 어울일 것 같지 않은 아이디어들을 쏟아내고 팀워크로 같이 구체화하며 발전시켜 답을 찾아내는 과정은 지금 생각해도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영어가 필요할 때면 어디선가 나타나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친구, 음악이 필요할 때면 여러 악기를 잘 다루는 친구들, 심지어 작곡가 까지. 같은 공간 안에서 단순한 지식이나 사고방식을 주입시키는 시간이 아니라 주어진 문제를 혼자가 아닌 팀원들과 함께 어떻게 풀어가는지 또 어떻게 팀워크를 만들어가는지 배우게 되는 몇 주간의 시간은 지금까지의 긴 회사 생활중 가장 재미있었던 시간이었다. 아직도 그때 당시 동기들과 찍은 오래되어 바랜 사진들을 보면서 옛일을 회상하면 즐거울 따름이다. 연수원에서 첫발을 같이 내 디딘 동료들과의 시간은 사회 초년생으로서 너무나도 새로운 것이었고 소중한 추억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지금도 기억난다. 우리들이 같이 만든 동기가에 있던 구절, “34기 20차 동기들이여 불태우자 뜨거운 정열, 약속하세 세계에 도전하는 우리의 모습" 지금 글을 쓰면서 되뇌어 보아도 정말 잘 만들고 가슴 벅찬 구절이 아닌가 싶다. 지금 그 동기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 다들 자기 위치에서 열심히 또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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