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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Apr 01. 2024

쌍문동 주민들은 선생님 잊지 않았습니다.

Ray & Monica's [en route]_138


장기 여행자의 시름, 봄을 앓다

 

3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사순절과 부활절 주일을 맞아 이곳 라파스는 28일부터 관공서와 기업들이 문을 닫았다. 출퇴근의 일상에서 벗어난 거리는 사뭇 한산하다.     

 

우리 부부는 아침에 눈을 뜨면 정원부터 살핀다. 비스마르크야자(Palma bismarquia)는 낮은 햇빛의 역광 속에 더욱 장엄하다. 눈부신 햇살을 받은 꽃들은 유난히 선명하고 생기로 가득하다. 나뭇가지마다 새들의 각기 다른 울음소리로 가득하다. 특히 품 넓은 초록으로 무성한 타마린드(Arbol de tamarindo) 속에는 도대체 몇 종류, 몇 마리의 새들이 터전을 삼고있는지 짐작조차되지않는다. 주렁주렁 달린 갈색 꼬투리는 그들의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지 싶다. 열매에 관심을 두지 않는 딱따구리(Pajaro carpintero)가 나무를 쪼는 소리는 타악기를 연주하는 소리 같다.     


눈길 가는 어디에서나 그곳에 있는 흰끝비둘기(Paloma arroyera)와 귀비둘기(Torcaza pajaro), 노란색 깃털로 존재감이 확실한 칼란드리아 투네라(Calandria Tunera), 지금 연이어 꽃을 피우고 있는 알로에 베라Aloe vera의 긴 꽃꼭지 속에 긴 부리를 꽂고 놀라운 정지비행으로 열심히 꿀을 핥고 있는 허밍버드(Chupa rosa), 내가 있는 곳을 고향집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집참새(Gorrion comun),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채 소리로만 존재를 알리는 새들이 더해 아침의 정원을 오케스트라 연주장으로 만든다.     


낯선 곳에서 이런 풍성한 아침도 일순 고향으로 마음을 데려간다. 지난해 3월 중순 서울을 떠나 나라 밖 생활 1년이 넘은 아내는 간혹 태평양 너머를 바라본다. 한국의 봄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에 사무치는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 장기 여행자의 입장에서 이런 순간은 계속되어야 할 여정에 자칫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 그리움이 고향을 향한 슬픈 근심이 되면 다리 근육의 통증보다 위험하다. 이를 때면 주로 벗님들이 보내오는 안부로 처방을 한다.     



●며칠 전 쌍문동 쓸모의 발견이라는 1.5평 좁작 서점에 갔어요. 덕성여대 약초원에 있는 서점입니다. 선생님 안부를 전하니 서점주인이 알고 있더군요. 쌍문동 주민들은 선생님 잊지 않으니, 선생님도 저희 잊지 마시고 건강하게 여행하고 오세요. 꽃소식도 담주에 알려드릴게요._by 긍정태리

▶이렇듯 그리운 곳의 소식을 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쌍문동 골목골목의 모습과 그 골목의 풍경을 만들던 한 분 한 분들의 정겨운 목소리와 몸짓 하나하나도 그리워 목이 메입니다. 선생님 어머님의 그 지혜로운 말씀이며 당찬 실천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언제 돌아가 어머님과 다시 마주 앉아 얘기를 청할 수 있을는지... '쓸모의 발견'은 제가 쌍문동에 있을 때도 그리워 저녁 산책을 나갈 때면 부러 그 골목으로 돌아오곤 했던 곳이죠. 늦어서 문이 닫겼어도 1.5평의 서점 불빛이 켜져 있는 모습만으로 적이 안심이었죠. 골목의 등대불처럼 여겨졌던 거예요. 서점이 될 곳이라고 여기지 않은 공간에서 쓸모를 발견한 부인은 이웃 주민들 모두에게서 잃어버렸던 정의 쓸모를 발견해 내는 분이죠. 부디 '쓸모의 발견'이 그곳에서 등대로 있어주기를... 쌍문동은 참 꽃이 많은 동네지요. 약초원에 가득했던 산수유꽃, 북한산 온 산의 진달래, 우이천의 벚꽃... 선생님과 벚꽃 피는 계절 우이천 인근에서 함께했던 식탁 위의 이야기를 그리워합니다. 진달래능선의 진달래꽃이 피면 부디 알려주세요.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은 마을 마다 타는 저녁 놀,ㅡ박목월님의 시가 생각나는 선생님의 모습이 연상 됩니다. 헤이리에 쉬고 싶을 때 머물 수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여행이라는 형상으로, 좀 오랜 시간 비워진 상태가 되었네요. 선생님의 빈자리가 아쉬워도 구름처럼 바람같이 세월을 기다리며 보내겠습니다._by 겸목

▶선생님 계신 곳의 마을을 간혹 떠올려봅니다. 아니 절로 가슴으로 찾아오는 그곳입니다. 나그네가 떠나온 곳에 집착하면 아니 되지 싶어 억지로 그 생각들을 떨쳐버리려고 애를 씁니다. 오늘은 선생님에 기대어 듬뿍 그곳을 그리워해봅니다. 지금쯤 마을을 흐르는 냇가에는 보송보송 버들개지 피어겠지요. 노을동산의 진달래는 꽃소식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10번 게이트 선생님댁 앞산의 생강나무 향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있지, 싶습니다. 여전히 그립습니다. 더 성장해서 돌아가겠습니다.     


●작년에 개화시기가 빨랐고 늦게 추위가 찾아와 올해 사과는 '귀족사과'로 불리고 있습니다. 올해는 벚꽃 축제를 일찍 시작했으나 3월 추위가 오래가서 개화가 늦었습니다. 해서 축제운영팀은 밤새 조명을 켜두어 개화를 부추기고 있었지요. 금요일부터 기온이 갑자기 한 자리대에서 26도까지 올랐습니다. 일제히 꽃들이 한꺼번에 폭발하듯 피어버렸고, 황사와 강풍이 올 시기와 겹쳐 동시에 다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어제 26도에서 오늘 아침 현재는 9도입니다. 올해는 강력한 폭염을 예고했지만 그보다 더한 기록과 일상이 펼쳐질 듯합니다. 

▶늘 지구의 기후 패턴에 대해 몹시 애를 태우시는 선생님. 저희 부부는 룸의 전기 스위치에 손이 갈 때마다, 샤워실의 물줄기를 대할 때마다 선생님을 떠올립니다. 그때마다 선생님께서는 온실가스 배출과 싸우는 전사의 모습으로 우리앞에 서계십니다. 여행지에서 결코 TV 스위치를 켜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에어컨 리모컨을 멀리하는 것도 기후위기의 전장에서 분투하고 계신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충분히 인내심이 발동됩니다. 이곳 숙소 주인 옥스나르는 올해 허리케인이 올 계절을 어찌 대비할 지 지금부터 궁리 중입니다. 이곳은 직접적으로 태평양 해안선에 노출되어 있는 만큼 허리케인에 취약합니다. 작년 여름 허리케인으로 제가 묵고 있는 방의 바닥이 발목까지 물에 잠겼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도 기후 패턴의 장기적 변화에 주목하시면서 점점 더 재앙적이 되어가는 기후영향을 염려하시는 선생님 마음의 절박함을 실감합니다. 86년 봄, 저희 부부의 신혼여행지였던 선생님 계신 제주의 봄날을 안타까워합니다. 하지만 안타까워만 하고 있는 대신 그 원인을 쫓아버릴 궁리와 실천에 함께하겠습니다.      


*보내주신 모두의 다정한 비방과 비약에 감사드립니다.     


●아내가 떠났습니다.

https://blog.naver.com/motif_1/223047292309   

   


#향수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반도 #라파스 #세계일주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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