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258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아내는 2020년 10월 31일, 정년퇴직을 했다. 은퇴는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그동안 유보되었던 일을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 아내는 더 이상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다음날 자전거 여행(퇴직기념 서울_부산국토종주자전거라이딩)을 떠났다.
그것은 아내가 퇴직 전에 계획한 퇴직 후의 할 일들을 준비한 목록 중의 하나였다.
1. 서울-부산 국토종단 자전거 여행
2. 섬살기
3. 산살기
4. 사찰기행 및 스님과의 차담
5. 수행 및 명상
6. 아들과 영국 및 유럽살기
7. 민화열공과 민화 해외소개
8. 남편과 세계탐험
9. 프리랜서 근로 및 봉사
그 목록이었다. 퇴직 후 2년 동안 아내는 홀로 목록의 8번(남편과 세계탐험)을 제외한 나머지 항목들을 타파하고 있었다. 나의 은퇴가 확정된 것은 작년 초였고 비로소 8번도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
●정년퇴직
https://blog.naver.com/motif_1/222133928487
●[퇴직여행_1]"맙소사! 출발일에 비라니~"
https://blog.naver.com/motif_1/222136922638
●아내의 목욕봉사
https://blog.naver.com/motif_1/222191743835
#2
아내가 한국을 떠난 것은 2023년 3월 16일, 내가 한국을 떠난 것은 55일 뒤인 5월 10일이었다. 오늘은 영국에서 아내와 합류한 날로부터 556일(1년 6개월 반)이 되는 날이다. 그동안 영국_아일랜드_아이슬란드_영국_미국_멕시코_미국을 거쳐 이곳 과테말라에 닿았다. 나라밖 생활 10년을 계획했으므로 아직 여행 초반인 셈이다.
오늘도 변함없이 아내가 준비한 아침을 받고 그동안 길 위의 시간을 뒤돌아보았다. 좀 각별하다고 생각되는 순간들이 먼저 뇌리에 스쳤다.
-한국으로 되돌아 가야되지않을까를 고민했던 때 : 나의 복통을 암으로 여꼈던 날들
●11일간의 암 환자
https://blog.naver.com/motif_1/223386506331
-가장 위험했던 순간 : 펜타닐 중독자들의 집단속을 통과해야 했을 때
●Be safe!
https://blog.naver.com/motif_1/223142338921
-아내를 눈물 나게 한 경우 : 아들의 결혼식에 불참했을 때
●24시간 동안의 결혼식
https://blog.naver.com/motif_1/223568731878
-가장 잘 한 결정 : 내 은퇴를 미루지 않은 일
●무슨 돈으로 10년간 해외여행 가세요?
https://blog.naver.com/motif_1/223093143920
우리 부부가 함께한 여정이 1년 반을 넘어섰다. 최근 들어서는 부쩍 그 시간이 빨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남은 8년 6개월이 지나고 보면 마치 10년이 10개월 쯤으로 여겨지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이런 삶에 대해 사람들은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을 보이곤 한다. 하나는 '10년간의 세계여행, 꿈을 현실로 이루는 지극한 행복입니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왜 사서 이 고생을 하세요?'이다.
부부가 길 위에서의 삶을 이어간다는 것의 실상은 생각보다 지치는 일이다. 낯선 곳의 안전을 염려해야 하고 매일 밤이슬을 피할 값싸고 안전한 숙소를 찾아야 하며 모국어를 사용하지 않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친화를 도모해야 한다. 또한 먹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놓아서는 안 되고 우리의 경제사정을 넘어서는 물가에 어떻게 대응해야 지속 가능한 여행이 될 수 있을 지에 대한 방편을 찾아야 한다. 또한 호스텔의 작은 방 하나에서 부부가 24시간 함께 보내는 일은 일생을 통해 쌓아온 사랑과 우정을 단번에 잃을 위험 상황을 극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크게 향수를 앓지 않고 이 나라밖 순례가 가능한 것은 가족과 함께하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모두 독립한 상황에서 '부부'는 온전한 가정이다. 세계 어디에 있건 그곳에 나의 가정이 있는 것이다.
아내는 오늘도 우리 가정의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쌀에 감자, 당근을 넣고 끓이다가 귀리, 브로콜리, 시금치를 넣어 끓여 낸 영양죽이다. 지역을 옮길 때 마다 각기 다른 그 지역의 재료를 가지고 창의적인 식단을 만들어내는 아내의 식단에 숟가락을 얹으면서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다시 초심을 되새겼다.
"열심히 공부하다 죽는다."
생전 관직 하나 한 적이 없는 나의 지방 (紙榜)에 자식들은 이렇게 쓸 것이다.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 '배우는 학생으로 인생을 살다 죽은 사람'이라는 의미의 지방 속 '학생'에 부끄럽지 않게 말이다.
#은퇴여행 #안티구아 #과테말라 #세계여행 #모티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