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레지던스라 말하는, 배우의 북스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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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레지던스라 말하는, 배우의 북스테이
‘모티프원’ 호스트 겸 배우 이나리
세계적인 영화감독, 작가, 학자, 셰프, 기업가가 하루를 머물며 휴식과 함께 인생의 지혜를 깨닫고 가는 곳. 경기도 파주에 있는 모티프원은 게스트에게 앞으로 살아갈 날을 위한 영감을 제공한다. 이곳에서 환한 미소로 게스트를 따뜻하게 환대하는 이나리 호스트는 더 많은 사람들이 내면의 숨겨진 창의성을 발견하기를 바라며, 또 만나자고 인사한다.
아버지 이안수 촌장을 이어 모티프원을 운영하는 이나리 호스트는 찾아오는 손님을 밝은 미소로 반긴다. 모티프원을 방문한 날도 그랬다. 노란색 문이 활짝 열리며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하는 이나리 호스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긴장으로 굳어 있던 마음이 풀렸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즐거운 대화로 이끌었다. 큰 창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처럼 인터뷰 역시 포근했다.
-모티프원이 북스테이인 줄 알았는데, ‘아티스트 레지던스’라고 소개했더라고요.
"모티프원을 설명할 때 가족 이야기가 빠질 수 없어요. 모티프원은 우리 가족의 성향과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을 담고 있거든요. 아버지는 저희 남매가 어렸을 때부터 무엇이든 새롭게 경험하고 내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끄집어내는 창의성과 다양성을 강조하셨어요. 그런 의미에서 모티프원을 아티스트 레지던스라고 소개하는 것은 좁은 의미의 아티스트 레지던스가 아니라, 창작하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레지던스라는 의미를 담은 거예요. 저희가 생각하는 아티스트, 즉 예술은 일반적인 의미보단 창의성에 더 가까워요. 저는 모든 사람에게 아티스트적인 내면(창의성)이 분명히 있고, 어느 순간 발현된다고 생각해요."
-소셜 미디어에 유명 인사들이 와서 인생의 깨달음을 얻고 가는 곳으로 소개되었던데, 이런 수식어가 부담스럽지 않나요?
"부담되지 않아요. 이미 아버지 때부터 오랫동안 운영해왔기 때문에 저희는 코어가 단단하게 잘 잡혀 있거든요. 그러니 저는 해오던 대로 열심히 사람들 만나고 잘하면 돼요. 그저 ‘요즘 시대의 언어는 이런 거구나, 신기하고 감사하다’라고 느껴요. 또 지금 저희 부모님이 세계 여행을 다니시는데, 책에서만 보던 삶을 사시는 것을 옆에서 직접 보면서 큰 도움을 얻고 있거든요. 제가 동경하는 부모님의 삶을 훨씬 더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아요."
-한번 찾아온 사람은 계속 방문한다고 들었어요. 대체 모티프원의 무엇이 사람들을 다시 방문하게 만드는 걸까요?
"여행의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모티프원은 이곳에서의 경험을 온전히 즐기러 오는 분이 꽤 많아요. ‘나의 첫 번째 영감’이라는 뜻이 담긴 이름처럼 모티프원에선 나의 내면을 여행하고, 영감을 얻어 숨어 있던 창의성을 발견하면 되는 거예요. 그렇기에 이곳은 나를 잘 만나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요소가 많은 거죠. 방마다 놓인 방명록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여기 와서 무엇을 새롭게 만나고 경험했는지, 그로 인해 어떤 영감을 받았는지를 풀어놓고 가요. 그리고 그 경험이 좋았던 분들은 혼자 또는 가족이나 지인과 함께 다시 오기도 하고, 때로는 지인에게 추천하기도 해요."
-새로운 사람들을 계속 만나는 기회가 생기는 거네요.
"저는 손님들과 최대한 많이 소통하려고 해서 나중엔 친구처럼 느껴지는 게 있어요. 그래서 가시는 분께 “나중에 또 봐요”라고 인사해요. 단순한 말 한마디이지만 그 말이 주는 다정함이 있잖아요. 그리고 이 작은 세상에서 우리는 언젠가 꼭 다시 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실제로 얼마 전에 제가 운영하는 곳인지 모르고, 10년 전에 같이 영화 작업을 했던 스태프가 손님으로 온 적도 있어요."
-나리 님이 모티프원을 처음 봤을 때 첫인상은 어땠나요?
"모티프원의 첫인상이라고 하면 기억나는 장면이 있어요. 완공 후 아버지가 거실에 텐트를 치고 묵으면서 춘천에서 들여온 원목을 끼워 맞추며 서재 책장을 만들던 모습이요. 아무것도 없던 곳에 수많은 이야기와 기억이 쌓여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진 거죠. 그래서 그때의 장면은 마치 소설의 첫 문장 같아요. 소설가가 첫 문장을 쓸 때 엄청난 생각과 고민을 하잖아요. 그때의 아버지에게도 수많은 고민 끝에 정해진 청사진이 있었을 거예요. 고등학생이었던 저는 몰랐지만요. 지금은 개요는 다 완성되었고, 본문의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혼자서 이곳을 운영하는 게 힘들진 않나요? 사실 호스트라는 게 많을 것을 신경 쓰고 돌봐야 하니까요.
"그 질문 많이 받아요. 어렵거나 무섭지 않냐고. 불특정 다수라고 표현하지만 저에게는 안전한 사람들이에요. 바쁜 시대에 돈과 시간을 들여 모티프원을 찾아온다는 건, 최소한 저와 접점이 세 가지는 있다는 뜻이거든요. 책, 예술, 자연이요. 그래서 모르는 사람은 맞지만, 나와 아주 동떨어진 타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나와 매우 닮았을 수도 있다, 아니면 적어도 우리가 좋아하는 게 세 가지 이상은 된다고 생각해요. 손님 중엔 대화를 많이 못 나눈 사람도 있어요. 못 들여다봐서 아쉬워요."
-사실 저는 엄청 내향적이거든요. 그래서 이곳에서 수많은 낯선 사람을 맞이하고 반겨주는 나리 님의 성격과 생활이 신기하면서도 부러워요.
"어려서부터 사회생활을 많이 했지만, 기질 자체가 호기심이 많아서 모티프원에 오는 사람들이 궁금하고 좋아요. 또 저희 부모님께선 모티프원에 오는 사람들은 다이아몬드 같다고 하셨어요. 사람은 외면과 내면이 있는데, 대화를 하다 보면 겉으로 보이지 않은 내면이 보이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알 수 있어요.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고유성이고 엄청 대단한 거거든요. 어머니께선 지금 세계를 여행하며 살 수 있는 용기는 모티프원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는 걸 알고,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꿈꾸면서 생겼다고 해요. 그러니까 저희에게도 각 개인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놓치지 말고 살펴보라고 하셨어요."
-누군가를 탐구하고 알아갈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좋은 가르침이네요.
"게스트에게 자연스럽게 오늘은 뭐 했는지, 어디서 오셨는지 기본적인 것을 물어보면서 라포rapport(관계)를 형성하거든요. 한번은 어느 분과 꽤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되었어요. 레스토랑을 운영한다는 분이었는데, 다른 게스트들도 멋있는 어르신이라고 할 정도로 인상에 남았어요. 그분이 이곳을 떠날 때, 레스토랑에 한번 찾아가겠다며 명함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명함을 보니 제가 감명 깊게 본 영화 <어른 김장하>에 나온 분이었어요. 특히 저한테 제일 기억에 남은 분이었거든요. 바로 다시 나가서 인사드리면서 꼭 레스토랑에 찾아가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아마 제가 그분께 말을 걸고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거예요. 그동안 대화를 나누고 그 사람의 깊은 곳까지 보지 못해서 놓친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그게 아쉬워요."
“사람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더 고민하게 되었어요.”
-아버지를 이어 모티프원을 운영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어떻게 보면 부모님의 일을 잇는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모티프원을 운영하시면서 부모님이 변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거든요. ‘과연 이곳의 무엇이 부모님을 변하게 만들었을까?’, ‘이 공간에서 대체 무엇이 이뤄질까?’ 궁금했어요. 그리고 과연 나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도 기대가 되었고요. 그리고 가끔 아버지가 2~3주씩 자리를 비울 때 제가 맡아 운영한 경험도 있었거든요. 또 이미 배우라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직감적으로 잘 맞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저는 저에게 다가오는 일은 다 시도하는 편이에요."
-아버님의 모티프원과는 다른, 나리 님의 모티프원은 어떤 모습인가요?
"전체 기조는 이미 충분하고 저도 너무 사랑하기에 그대로 유지하지만, 식물이나 인권을 다루는 책, LP 플레이어 등 제 취향이 많이 들어왔어요. 아버지가 운영하실 때는, 이미 사회 경험이 충분한 사람이 다 제쳐두고 북스테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한 과정을 궁금해한 분들이 찾아왔어요. 또 아버지는 혜안이 깊으시기에 인생의 답이나 조언을 들으러 온 사람도 많았고요. 하지만 저는 그저 함께 고민하고 나누고, 지금의 느낌과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며 어떻게 살면 더 나을지를 이야기하는, 같이 성장하는 사람이죠. 누군가에겐 딸일 수도, 누군가에겐 친구, 누군가에겐 언니일 수도 있는 그런 사람이죠."
-직접 운영하면서 호스트라는 입장에 대해서 생각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옆에서 아버지를 보던 것과 호스트로서 지내는 지금 무엇이 달라졌냐고 물으신다면 ‘사람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에 관해서 더 고민하게 되었다고 할까요? 전에는 아버지가 게스트를 어떻게 맞이하고 만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해보니까 사람과 만나는 방식에 따라 나도 변하고, 그들이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알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게스트와 만나고 시간을 보내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게 됐어요. 요가 수업도 하고, 아침에 함께 샌드위치도 만들어 먹고, 문화 산책 시간도 갖고. 이러면서 많은 방식과 가능성이 있다는 걸 인지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호스트를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일종의 삶의 방식이라고 할까요? 좋았으니까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거예요."
-모티프원에서 반드시 이것만은 경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나요?
"객실마다 저희가 만든 노트를 방명록으로 놓아두었는데, 사이사이에 모티프원에서 시도했으면 하는 것들을 적어놨어요. 핸드폰보다는 나를 보기, 처음 해보는 거 시도하기, ‘Not’을 ‘Why not’으로 바꾸기 등등. 여기서 작게라도 무언가가 일어났으면 좋겠다, 이곳에서의 작은 변화와 시도가 앞으로의 가이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요. 방명록을 보면 이 문장이 나에게 어떤 생각을 하게 해줬는지 남기고 간 분도 많아요. 자기와 똑같이 느낀 것에 대한 글을 읽고 공감하는 분도 많고요. 또 앞으로 오실 분들을 응원하는 글도 있어요."
-나리 님은 배우로서도 활동하고 계시죠. 어떤가요, 호스트라는 업이 배우 활동에 영향을 주기도 하나요?
"모티프원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옆으로 넓어지는 것 같아요. 그러면 제가 표현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질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또 연습실에서 에너지를 분출하다가 나의 아지트로 돌아오는 기분도 들어요. 어쩌면 서울에서 배우 생활만 했다면 지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모티프원에서 사람을 만나는 게 에너지를 쓴다기보다 받는 느낌이에요. 여기 오시는 분들의 에너지는 고요하지만 단단해서 뭔가 편안한 느낌이거든요. 또 배우 일을 하다 보면 여러 캐릭터와 직업군을 연기하게 되는데, 모티프원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부분에 도움이 돼요. 그래서 호스트와 배우를 따로 떨어뜨려 생각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고, 많이 얽히는구나 싶어요."
-윈윈 관계네요. 마지막으로 새해 계획을 물어봐도 될까요?
"거창한 계획은 없지만,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걸 많이 해보고 싶어요. 조찬 모임, 시나리오 읽기, 음감회 등 게스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내년에 시도할 도전이에요. 아니면 ‘사과가 맛있으니까 같이 먹자고 말하기’와 같은 작은 시도도 계속 많이 하고 싶고요. 개인적으로도 작은 시도를 꾸준히 하고 있는데 내년에도 계속, 많이 하고 싶어요."
Text | Young-eun Heo
Photos | Estee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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