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278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강민지
과테말라의 12월이 시작되면 거의 모든 도시와 가정에는 아주 특별한 공간이 만들어진다. '나시미엔토(Nacimiento)'라는 이름의 이 장식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그것을 며칠간 온 가족이 함께 준비하고 만들면서 갖는 이곳 사람들의 정성과 극진함을 생각하면 덩달아 보는 이의 마음도 축복 속에 있는 느낌이다.
나시미엔토는 스페인어 글자 그대로는 '탄생'이라는 의미이지만 이곳에서는 여러 조각상과 장식물로 예수의 탄생 장면을 재현하는 것을 의미하는 성스러운 단어가 된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는 크리스마스 전 4주간을 뜻하는 대강절(The Advent)로부터 시작되어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온 날인 주현절(Epiphany 1월 6일)까지 계속되는 나시미엔토는 시나 회사에서는 공원이나 특별한 공간에 수십 미터에 달하는 크기의 정교한 구성으로 그리스도의 탄생 장면을 재현한다. 소규모의 사업장이나 가정에서도 각자의 형편에 맞는 크기의 나시미엔토를 설치하고 구세주의 탄생을 기린다.
올해에도 과테말라 시티에서는 센테나리오공원(Parque Centenario)에 실물크기 인물상들을 배치하는 설치를 했고 안티구아에서는 공예학교의 학생들이 만든 나시미엔토를 중앙공원 옆 안티구아대주교궁전 전시장(Antiguo Palacio Arzobispal de Santiago de Los Caballeros de Guatemala)에서 전시 중이다.
평소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 자원봉사 의료진과 기부금으로 가난한 병자들을 무료로 치료하고 빈민 노인과 어린이를 돌보는 '산토 헤르마노 페드로 사회사업재단(Obras Sociales del Santo Hermano Pedro)'의 산 페드로 병원 (Hospital de San Pedro)도 개방되었다. 팔다리가 없는 예수상이 걸린 현관을 들어서자 중앙정원에서는 가수의 캐럴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약제과가 있는 안쪽 작은 정원으로 들어가자 나시미엔토가 설치되어 있다.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방문하면서 나시미엔토를 감상하고 기부함에 돈을 넣곤 한다.
다시 중앙정원으로 나왔을 때는 공연을 마친 가수가 악기를 챙기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병원에서의 캐럴 무료공연(크리스마스 리사이틀. 12월 22일 일요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무료입장)을 진행한 에드윈 베자라노(Edwin Bejarano 50세) 씨에게 과테말라에서의 ‘나눔’의 의미를 물었다.
-당신이 이곳 병원의 정원에서 무료 공연을 하기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회의 가장 소외된 사람들, 즉 병자, 빈자, 그리고 고아들을 돕는 돌봄과 교육에 헌신하신 산토 헤르마노 페드로(Santo Hermano Pedro) 성인의 정신을 받드는 이 병원의 나시미엔토를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보시고 사회공헌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이 병원은 가난한 병자들을 돕고, 당신은 그들을 돕는 병원을 돕는군요. 그럼 당신은 누가 돕나요?
"ㅎㅎㅎ 저는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노래하고 보수를 받고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강의료를 받습니다. 저에게 돈을 받는 곳에서 일을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이런 병원에 기여할 수 있는 자원봉사입니다."
-과테말라의 사회 곳곳을 살펴보니 가난한 사람도 많지만 그 가난을 함께 극복할 수 있도록 나눔의 마음을 실천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에 놀랐습니다.
"그것은 이곳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체험할 수 있는 아름다운 경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셨고 우리는 당연히 받은 것 중의 일부를 나누어야 합니다."
-이런 나눔은 주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나요?
"정기적인 후원도 가능하지만 누구나 나시미엔토에 놓인 모금함에 돈을 넣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연말에는 특히 장난감이나 옷을 모아 필요한 곳으로 배달하는 그룹도 있고 음식을 만들어 배달하는 그룹도 있습니다."
-이 병원에서 입원한 분들과 진료받는 분들의 상황과 그것을 지탱하는 기금의 조성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요?
"이 병원에는 과테말라 전역의 가난한 사람들이 찾아옵니다만 우리 지역의 노숙인 환자들도 400여 명 치료와 돌봄을 받고 있습니다. 돈, 옷, 식료품을 기부하러 오는 분들도 있고 매년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One Million Friends'행사를 개최합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나눔은 무엇이고 어떤 것입니까?
"물론 나눔은 내가 가진 것의 일부를 내어놓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돈이나 옷처럼 물질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내어놓는 것(give of oneself)'입니다. 즉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말을 경청해 주는 것, 그들과 동행하는 것, 그들이 의욕을 가지고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 그들에게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조언을 주는 것, 진보할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하는 것 등이죠. 어떻게든 삶의 좌초나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는 것인 셈입니다."
-그러니까 부자가 아닌 사람도 누구나 나눌 수 있는 입장이라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누구나 큰마음을 낼 수 있죠. 그것의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시간을 나누는 것입니다. 누구나 공평하게 가진 것이 시간입니다. 그 의미는 세상에 나눌 수 있는 것이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저와의 대화에 당신의 시간을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시길...
"제게 말을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에드윈 씨와 대화를 하고 나니 산 페드로 병원의 나시미엔토가 있던 벽에 걸린 동판 속의 글귀가 더욱 마음에 와닿는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일만 하고,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는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People who work for God, simply work and do not care what others think or say about them)."
Caption
-여러 조형물로 예수의 탄생을 표현하는 '나시미엔토'
-당연히 받은 것 중의 일부를 나누어야 한다고 말하는 가수, 에드윈 베자라노씨
-산 페드로 병원의 현관에 걸린 예수상
-자신이 돌보고 있는 사람들의 누더기 옷을 입고 그들을 돌보기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종을 울리며 거리를 누볐던 프란치스코회 사제인 에르마노 페드로 베탕쿠르(Hermano Pedro Betancur)
-성탄을 맞는 과테말라 안티구아의 시가
-'산토 헤르마노 페드로 사회사업재단(Obras Sociales del Santo Hermano Pedro)'의 산 페드로 병원 (Hospital de San Pedro)과 산토 헤르마노 페드로 성당(Iglesia Santo Hermano Pedro de San José Betancur)
-선과 악의 대결을 성경적으로 묘사한 가면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