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한 것보다 아름답고 생각한 것보다 참혹하다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강민지
어제(1월 9일), 아티틀란 호수가 마을 13개(Panajachel, Santa Catarina Palopo, San Antonio Palopo, San Lucas Toliman, Santiago Atitlan, San Pedro La Laguna, San Juan La Laguna, San Pablo La Laguna, San Marcos La Laguna, Tzununa, Jaibalito, Santa Cruz la Laguna, San Jorge La Laguna)와 호수 윗마을 4개(Solola, Santa Lucia Utatlan, Santa Clara La Laguna, San Andres Semetabaj) 등, 17일 동안 총 17개 마을의 마야인들의 마을을 답사하고 안티구아로 돌아왔다.
안티구아로 돌아오자마자 12시간을 잠에 곯아떨어졌다. 두어 번 잠이 깼었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아마 강행군으로 몸에 탈이 났었지만 그것을 마음이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같다. 긴 잠만으로 몸이 다시 움직이고 정신이 명료해진 것을 보면 무엇보다도 잠이 치료제였던 것 같다.
책상에 앉아 지난 17일간의 여정을 뒤돌아 보니 공간의 여행이라기보다 시간 여행에 더 가까웠다.
아티틀란 호수(Lake Atitlan)는 84,000여 년 전 화산 폭발로 분화구가 함몰되어 형성된 칼데라 호수로 길이 약 18km, 너비 약 10km 크기이다. 호수는 아티틀란 화산(Volcan Atitlan 3,537m), 톨리만 화산(Volcan Toliman 3,158m), 산 페드로 화산(Volcan San Pedro 2,995m) 등 세 개의 화산을 비롯한 산들이 둘러싸고 있고 마을들은 해발 약 1,562m의 호수변 가파른 산자락과 산 정상 인근에 형성되어 있다.
이 마을들은 칵치켈(Kaqchikel), 추투힐(Tz’utujil), 키체(K’iche’) 등 각기 마약의 다른 부족이 공동체를 이루어 여전히 그들 고유의 언어와 전통, 생활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어릴 적 모국어인 칵치켈어, 추투힐어, 키체어를 쓰다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키체인이 아닌 경우에도 가장 많은 마야인들이 사용하는 키체어와 스페인어를 함께 배운다.
막 책상에 앉아 지난 17일간의 여정을 뒤돌아 보니 공간의 여행이라기보다 시간 여행에 더 가까웠다. 우리는 호수변의 마을은 배로, 산 위의 마을은 로컬 버스로, 인접한 마을은 마야인들의 트레일을 따라 걸어 답사했다.
각기 다른 부족이 험한 지형으로 격리되고 지리적 조건으로 마을마다 다른 문화를 갖게 되었고 여전히 남아있는 그 고유한 삶의 습속들에 접근하려고 애썼다.
그들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지만 대부분 전통 의상(Traje Tipico)를 일상복으로 사용하고 있다. 각 공동체의 정체성이 반영된, 마을마다 다른 패턴과 색으로 정교하게 짠 후이필(Huipil 튜닉 스타일의 여성 상의), 코르테스(Cortes 전통적인 스커트), 파하(Faja 벨트)만으로도 마야인과 마야 마을을 확실하게 차별화한다.
현대 마야인들은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가톨릭 영향하에 있지만 고대 마야 신앙을 함께 유지하고 있다. 마야의 영적 지도자인 마야 사제, 아흐키(Ajq'ij)가 의식과 제사를 거행하는 신성한 장소들을 찾아서 그들을 만났다. 고대 마야 신앙과 로마 가톨릭 요소가 혼합된 형태의 신인 막시몬(Maximon)과 산시몬(San Simon), 예수를 모시는 신당을 찾아서 그들의 신앙 형태를 살폈다.
민속학자이자 마야 유물 컬렉터로부터 마야 달력과 마야인들의 유물을 통해서 해석한 그들의 우주관과 자연관에 대해 들었다. 커피 생산을 비롯한 장날과 축제에 함께하면서 그들의 삶 속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다.
파나하첼과 산 후안 라 라구나, 산 페드로 라 라구나 등 몇 개 마을은 관광지화 되어서 관광수입에 삶을 의탁하고 있고 산 마르코스 라 라구나의 경우는 관광지화 되었지만 세 화산을 마주 보고 있는 지리적 특성을 활용해 요가와 명상,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명상센터로 특화하고 있었다.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여러 호수마을에서 개인의 행복과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대안적 삶을 살고 있는, 북미와 유럽에서 온 이들과 함께했다.
이렇듯 기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유적의 촬영에 욕심을 내다가 넘어져 콧등을 갈았고 발을 접질려 지금도 보행에 통증이 따른다. 등과 다리 등 광범위한 부위에 베드 버그에 물린지 일주일이 지난지만 여전히 극심한 가려움증과 발진에 시달리고 있다.
칵치켈 마야 어르신 댁에 아내를 두고 홀로 4일간의 호수에서 먼 마을 탐사를 나갔다. 아내가 호수의 온천수 주변 쓰레기를 청소하는 중에 인근을 지나는 배가 만든 파도가 가방을 덮쳐 핸드폰은 기능이 상실되었다. 내가 더 깊은 오지에 가 있는 동안 일어난 이 일로 연락이 두절되어 서로가 안부를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가장 날씨가 화창한 날, 아랫마을에서 산 정상까지의 마야 트레일 걷기에 도전했다가 사람이 다니지 않는, 절벽과 숲속 거의 지워진 길을 더듬어 통과하는 과정에서 길을 잃거나 낭떠러지로 미끄러져 떨어질지도 모르는 공포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치킨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안티구아로 돌아오는 아내 옆자리에 앉은 중년 부인이 칼로 가방을 찢어 소매치기를 시도하는 일을 당했다. 잃은 것은 없지만 신뢰에 큰 상처를 입었다. 파나하첼 ATM의 현금 인출에서 현금 인출 영주증의 액수와 달리 400케찰이 덜 나온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현지인과의 대화에서 대부분 대화 끝에 작은 돈을 요구하는 일이 계속되다 보니 대화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되는 안타까움이 있다. 이런 일은 길거리의 상인, 일반인뿐만 아니라 사제, 성직자 부인, 성당 종사자를 망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과테말라가 좋다. 이런 일들은 오랜 식민지의 수탈과 극심한 가난에서 비롯된 피해자의 증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대부분 외국인 소유의 호숫가와 언덕의 전망을 독점하는 호텔을 제외한 원주민 주거지의 삶은 여전히 삶의 기본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6살 정도만 되어도 메카팔(Mecapal 마야인들이 이마에 끈을 두르고 짐을 나르는 도구)을 두르고 건축용 모래 자루를 나르는 노동에 투입되고 있다. 14, 15살 여성의 조혼이 성행하고 가혹한 노동환경에 내몰리는 여성이 태반이다. 알코올중독 남편이나 아들 때문에 부인과 노모의 노동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살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 환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내와 나는 마야 마을들을 탐험하는 거점으로 삼았던 산타 카타리나 팔로포(Santa Catarina Palopo) 마을을 떠나기 전, 숙의를 했다. 영어 관광 가이드가 꿈이라고 했던 15살 소녀, 로살리나(Rosalina)에 대한 얘기였다. 학교를 가는 대신 가사와 식당 일을 하면서 가정의 생계를 돕고 있는 그녀가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영어를 배우는 것이 첫 단계일 것이다. 등록금이 없는 공립학교 학업도 계속할 형편이 되지 않는 그녀에게 비싼 등록금을 내야 하는 사립 영어학교를 다닐 수 있는 형편이 그녀에게 언제 올지는 기약할 수 없는 일이다.
그녀가 집안일을 도우면서도 영어를 공부할 수 있는 안을 제안했다. 그것은 무료 영어학습 앱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아내는 몇 개의 괜찮은 앱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필요했다. 우리는 그녀에게 스마트폰을 쥐여주기로 했다. 그녀가 스마트폰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가능성은 어쩔 것인가에 대한 우려는 그의 몫으로 두기로 했다.
다음날 새벽, 길을 나서면서 그녀를 만났다.
"우리는 너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지금 그 꿈을 향하지 못하는 네 처지에 가슴 아팠다. 그 꿈에 다가가는 첫발을 떼도록 응원하고 싶다. 우리가 그동안 절약해서 모아둔 여비를 너에게 전하려고 한다. 그전에 약속을 받고 싶구나. 첫째, 이 돈은 스마트폰을 구입하는 비용으로만 사용해야 한다. 모자란다면 네가 어떻게든 돈을 모아 보태어 너의 노력에 대한 자부심으로 삼아라. 두 번째, 스마트폰은 여러 기능이 있지만 꼭 영어 공부하는 도구로 삼아야 한다."
그녀의 오랜 허그를 풀고 칵치켈 마야 마을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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