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314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강민지
#1
안티구아에서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곳은 장기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이다. 한 지붕 아래의 사람들은 영어강사, 혹은 연주자로 단기 취업 중인 사람, 디지털 노매드로 일하고 있는 젊은 사람들부터 따뜻한 남쪽 지역으로 이동하여 겨울을 보내는 캐나다와 미국에서 온 은퇴자들까지 다양하다.
계절 이주자들인 스노우버드(Snowbird)는 대부분 5, 6개월 체류 후 북쪽의 봄소식과 함께 본국으로 돌아가지만 이런 정기적인 이동이 불편한 사람들은 과테말라의 '연금 수령자 또는 고정적인 임대 소득이 있는 사람을 위한 영주권 프로그램(Residencia Permanente para Rentistas o Pensionados)'을 활용해 정기적으로 출국과 입국을 되풀이하는 불편을 피하기도 한다.
단기 취업자도, 외국인 은퇴 비자 소유자도 아닌 우리 부부는 예외적인 경우이다. 각기 다른 문화권의 삶을 공부하기 위해 기약 없이 부유하는 우리는 그들에게도 흥미거리인 모양이다.
"너희들은 은퇴한 거야?"
이 물음 속에는 연금으로 여행하는 거 맞니?, 하는 의문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즉 'Pensionados (연금 수령자)'가 맞는지에 대한 확인인 것이다.
"너희들 건물 사놓았어? 아니면 주식이 있거나?"
이 물음의 좀 더 명확한 풀이는 부동산 임대료나 투자 배당금을 받고 있는 거야?, 하는 질문이다. 즉 'Rentistas (임대 수익자)'인지를 묻는다고 볼 수 있다.
이 물음에 우리는 또 다른 질문으로 답을 한다.
"우리 부부가 왜 이렇게 다정한지 아니?"
당연 그들의 대답은 "여전히 사랑이 변하지 않아서겠지." 정도이다. 그때 그들이 궁금해하는 우리의 사정을 말한다.
"우리는 현지에서 수익을 만드는 여행자가 아니기 때문에 긴 여행에서 최소한의 수익이 있어야지. 우리의 여행자금은 매달 받는 연금이야. 그런데 변화무쌍한 젊은 날을 보낸 나는 연금이 쥐꼬리만큼 밖에 안돼. 아내는 그런 모험적인 남편을 대신해 꾸준히 직장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보다는 연금이 많아. 그것이 우리가 다정한 이유의 비밀이야. 두 사람의 연금을 합치지 않으면 두 사람 모두 여행을 지속할 수 없는 거지. 즉 사이가 나빠져서 각방을 사용해야 한다면 숙박비를 감당할 수 없고 요리를 모르는 내가 아내에게 극진히 하지 않아 음식을 모두 사 먹어야 한다면 비싼 외식비 때문에 연금을 초과하고 말 거야. 우리의 금실은 적은 연금으로 10년 여행자로 살겠다는 공동 목표를 지속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필요충분조건인 셈이야."
#2
리처드(Richard MacDonald) 씨는 우리가 좀 더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선택을 권하곤 한다.
"은퇴 비자를 받으면 옮겨 다녀야 하는 비용도, 불편도 아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영주권을 신청하지 그래?"
6년째 과테말라 영주권자로 살고 있는 미국인 리처드 씨는 지난달 69세 생일을 맞았다.
"매월 $1,250 이상의 외국에서 받는 수입이나 연금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면 돼. 부부의 겨우 1명의 추가 식구로 $300 수익만 더 증명하면 되지. 영주권이 있으면 비자 만료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고 체류 기간 갱신을 위해 오가는 비용도 아낄 수 있고. 영주권 취득 후 5년 후에는 시민권 신청도 가능해."
리처드의 일주일 루틴은 아침에 일어나 간단한 아침식사를 준비해 옥상으로 올라간 다음 화산을 보면서 일광욕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난 매일 이렇게 비타민 D를 합성하면서 아침식사를 하지."
아침식사와 함께하는 일광욕으로 면역력도 향상하고 불면증으로부터도 자유롭다고 한다.
그의 일주일은 '나들이(Outings)'로 구성된다. 2번은 친구와의 골프 라운딩이다. 이 시간이 그에게는 하이킹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는 제법 먼 곳으로도 하루 나들이(Day trip)를 하곤 했지만 지금은 주로 도시내 공원 나들이나 식사를 겸한 소셜 아웃팅이 주가 된다. 스노우버드들과의 밋업(Meetup)이다. 일주일에 두어 번은 클럽 아웃팅을 즐긴다. 칵테일과 함께하는 음악과 대화가 목적이다.
지난 3개월을 함께 생활하는 동안 발견한 그의 미덕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식사용 빵과 치킨을 사가지고 올 때는 2인분 이상을 사서 반을 초등학생을 둔 메이드 몫으로 건넨다. 설탕이나 소금, 때로는 원두까지 모두의 몫으로 부엌에 비치하곤 한다. 정원과 옥상을 스스로 가꾼다. 태양광 정원등을 세우고 전지판에 먼지가 쌓이면 수시로 닦는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커피 메이커가 불완전하면 미리 새것을 사다가 비치해둔다.
이 집을 거점으로 살고 있는 늙은 길고양이를 발렌티나(Valentina)로 이름 짓고 여왕으로 섬긴다. 사료와 물은 분부를 기다리지 않고 받든다. 발렌티나는 주변 동네 지붕을 오가는 자유를 즐기다가 배가 고프면 언제든지 옥상으로 와서 리처드 집사의 시중을 받을 수 있다. 리처드의 걱정은 식탐이 없는 발렌티나가 점점 야위어가는 것이다.
그와 함께 클럽에 갔다가 그에게 세 명의 양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남루한 세 명의 아이가 클럽을 들어와 곧장 리처드에게로 갔다. 그가 아이들을 데리고 입구로 갔다. 입구에는 그 아이들의 엄마가 있었다. 아이들은 리처드에게 친할아버지처럼 매달렸다. 식사를 주문해 그들을 먹였다. 그 식구들과 어떤 관계인지를 물었다.
"내 아이들이야. 중앙공원에서 이들을 만났고 매주 수요일마다 이곳으로 오면 내가 저녁식사를 사주기로 약속을 했어. 이들의 아버지가가 누구인지, 엄마는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 단지 하루 종일 행상으로는 외식 한번 못하는 형편인 것 같아서 일주일에 한번은 내가 이들에게 식사 한 끼는 사고 싶었어. 누구와 함께 와도 좋다고 했지. 오늘은 엄마랑 함께 왔네."
연금생활자 리처드가 홀로 살면서도 늘 발걸음이 경쾌한 이유들이 이렇게도 많다. 하지만 우리는 리처드의 영주권 권유를 뿌리치고 다음 달이면 떠나야 할 것 같다.
●"은퇴자 영주권 신청할 생각 없어요?"
https://blog.naver.com/motif_1/223677366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