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취하지 않고 어떻게 긴 인생을 살수 있을까!

Ray & Monica's [en route]_315

by motif Mar 23. 2025

안티구아의 올드 바, La Subidita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강민지


안티구아는 수많은 바들이 있다. 안티구아에 처음이자 멕시코가 아닌 곳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메즈칼 바이면서 로컬 'Ilegal Mezcal'이라는 브랜드가 만들어진 곳인 'Cafe No Se, 미국의 금주법 시대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분위기를 재현한 양복점 뒤에 숨겨진 바, Charleston Antigua 등 개성적인 곳 외에도 Ulew Cocktail Bar, El Barrio, Antigua Brewing Co., El Ilegal, The Snug, Las Vibras, Reilly’s, La Taverna 등 많은 바들이 밤이 오기를 기다린 사람들을 유혹한다. 


스노우버드들은 밤을 더욱 간절히 기다리게 마련... 은퇴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때로는 취하지 않고 어떻게 긴 인생을 살수 있겠는가. 


하지만 안티구아 시내의 바들은 너무 세련되어 있다. 관광객들을 맞이해야 하는 입장에서 그들의 취향을 만족할 만한 방식으로 조금씩 변하다 보니 안티구아 서민이 취하지 않고는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과 함께한 작고 소박하고 저렴한 'Dive bar'의 고유한 분위기와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안티구아와 인접한 호코테낭고(Jocotenango)에서 나고 자란 루이스(Luis)는 그런 곳을 알고 있었다. '라 수비디타(La Subidita)'가 그곳이었다. 루이스와 함께 100번도 더 그 골목길을 지났다는 알렉스(Alex)가 호코테낭고로 가는 안티구아의 끝 경사 골목에 있는 이 바로 이끌었다. 


하나같이 세련된  안티구아의 작은 간판들의 '세련됨'에서 벗어난 손글씨의 볼드 간판은 안티구아 시의 엄격한 간판 규격만은 벗어나지 않았다.   


춘분의 오후 4시는 음주를 시작하기에는 적당치 않아 보이는 시간이었었다. 노랗게 칠해진 사자상이 창문의 창살 속에서 지루한 표정으로 해가 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으로 발을 들이자 갑자기 정전된 방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몇 초쯤 지나 실내의 풍경이 살아났다. 강력한 석양빛에서 실내의 어둠에 적응한 눈에 비친 선술집에는 예상대로 단 한 사람의 손님도 없었다. 


사자상이 있는 옆벽은 한 변이 모두 쇠창살로 막혀있었다. 루이스가 '누구 없소'를 왜 치고 나서 백발의 할머니가 쇠창살 너머에서 모습을 보였다. 


알렉스가 어떤 술이 좋을지를 물었다. 우리는 각자의 취향대로 아과르디엔테(aguardiente  '불타는 물'이라는 뜻의, 주로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알코올  증류주)인 케즐테카(Quezlteca)와 베나도(Venado) 그리고 맥주 가요(Gallo)를 각 병 주문했다. 이 술들은 과테말라의 남성성이 녹아있는 과테말라 브랜드이다.  


홀의 3개 테이블 중 가장 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곧 할머니께서 우리의 주문이 준비되었음을 알렸다. 


알렉스가 술병을 루이스가 레몬과 소금 접시, 그리고 얼음 접시를 받아왔다. 할머니는 결코 창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술병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케즐테카는 병 속의 과테말라입니다. 이걸 마시면 사랑에 빠지게 될 거예요!"


알렉스가 술병을 놓고 다시 의자에 앉으려다 놀라서 일어섰다. 발로 테이블 아래에서 잠든 팔자 좋은 이집 개을 밟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테이블 아래에서 기어 나온 것은 한 사내였다. 정신이 혼미해 보이는 그는 왼손으로 홀 바닥을 짚고 오른손으로 허공을 잡으려고 애써다가 알렉스가 내민 손대신 의자를 잡고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그가 몸을 일으키고도 한동안 테이블을 움켜쥔 내 양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비틀거리는 몸이 테이블을 칠 것 같았다. 


완전히 눈의 초점을 잃은 그가 제발 테이블에서 멀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우리의 마음과는 달리 오른손을 내밀어 한 명 한 명 악수를 청했다. 손을 내밀 때마다 살짝 두려웠다. 그 두려움은 그가 패악을 부릴 것 같아서가 아니라 테이블 위로 엎어져 막 차려지고 아직 맛도 보지 못한 술상을 엎어버릴 것 같아서였다. 


그는 잡은 손에 두어 번씩 힘을 주었고 그때마다 '미안하다'를 반복했다. 8번 이상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했지만 사실은 우리가 미안했다. 그가 우리보다 훨씬 일찍 술을 마시고 취기를 주체하지 못해 가장 긴 테이블 밑 시원한 타일 바닥에서 잠을 청한 것을 우리의 발이 깨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술자리를 파할 때까지 대각선 쪽 테이블에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초점을 맞추기 위해 애를 써는 그의 눈과 마추쳤을 때 그를 취하게 한 것이 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어떤 '상실'이었다. 그는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실을 노려보고 있었다. 


술값을 치르는 동안 그와 좀 더 가까이서 그의 상실이 무엇인지를 느껴보려고 했다. 그것이 돈인지 사랑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가능한 한 가장 부드러운 눈길로 그가 의욕만을 상실하지 않기를 바라는 내 마음을 전하려 애썼다. 


선술집을 나서면서 루이스가 말했다. 


"이런 바는 이제 안티구아에는 거의 남아있지 않아요."


아내에게 술값이 얼마인지를 물었다. 


"38 케찰(GTQ)이요."


아직 단 한 사람의 손님도 없을 것이라는 내 예단을 빗나가게 한 올드 바, 7천 원으로 네 사람이 취향껏 술을 마실 수 있는 이 집마저 사라지면 여전히 남은 인생이 긴 가난한 사람들은 어디에서 취할 수 있을까?


●Caption

-안티구아와 호코테낭고의 경계에 위치한 안티구아의 변두리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선술집

-주정꾼들로부터 안전할 수 있기를 바란 듯이 주인이 위치한 주방 쪽은 창살로 막혀있다.  

-탁자 아래의 바닥에서 잠을 자던 사내가 일어나 한 첫 행동은 자신을 밟은 이를 '괜찮다'라고 용서하는 일이었다. 

-타인에 의해 잠이 깬 그 사나이는 다시 케즐테카 한 병을 주문하고 줄곧 우리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의 시선에 악의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선술집 창살 안에서 용맹을 잃은 수사자상. 

-메카팔(Mecapal : 이마에 걸어 짐을 운반하는 끈) 자루에 마체테(machete : 농업과 일상생활에서의 사용하는 긴 칼)를 담고 일을 나가는 전형적인 과테말라 육체노동자.


#올드바 #안티구아 #과테말라


#올드바 #안티구아 #과테말라

작가의 이전글 Actor/Bookstay Host Lee Na-ri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