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431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시애틀의 단풍은 대부분 땅 위로 내려앉았다.
이미 떨어질 결심을 굳힌 잎들이 가지를 붙잡고 버티는 투쟁을 하지 않는 모습이 수행 깊은 고승의 속탈(俗脫) 같아서 앙상한 나뭇가지와 바닥의 고운 단풍잎을 번갈아 보게 된다.
옷을 벗듯 번뇌를 벗어버리는 일이 어려운 사람으로서 계절에 순응하는 낙엽수들의 단호한 버림이 경외스럽기만 하다.
밴쿠버를 떠나올 때 UW에서 공부하고 강의했던 존 선생님께서 이 대학 '더쿼드(the Quad : Liberal Arts Quadrangle)'의 벚꽃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모두들 벚꽃이 만개한 봄날, 그곳에서 발길을 멈추지요."
'더쿼드'라 불리는 캠퍼스 중앙의 잔디 광장은 사베리홀(Savery), 레잇홀(Raitt), 고웬홀(Gowen), 스미스홀(Smith), 밀러홀(Miller) 등 인문·사회과학 건물들로 둘러싸인 직사각형 공간이다.
광장에는 30여 그루의 일본 왕벚나무(요시노 벚나무)가 심어져 있어, 매년 3월 중순 경에 만개해 시애틀 봄의 도래를 알린다.
마침내 존선생님이 말씀하신 더쿼드의 벚나무 앞에 섰을 때는 가을이 절정이었다.
콜리지에이트 고딕(Collegiate Gothic) 양식의 건물과 나란히 수도원 회랑의 열주처럼 도열한 90년 넘은 벚나무의 몸통은 나이로 검고 거칠어졌지만 사방으로 뻗은 가지들은 단풍으로 찬란했다. 멈춘 발길을 쉬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구태여 수잘로 도서관(Suzzallo Library)을 몇 번 더 발걸음한 것도 이 쿼드의 벚나무 단풍길을 지나고 싶어서였지 싶다.
계절의 끝은 달음박질로 왔다.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밤, 가지뿐인 모습은 적요했다.
화려함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자만이 누릴 자격이 있는 순간의 선물이다. 화려함을을 버린 나무 앞에서 누구도 발길을 멈추지 않는다. 나무는 비로소 고요를 되찾았다.
#UW #theQuad #벚나무 #시애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