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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Nov 03. 2022

워홀 막차 제가 한번 해보려고요.

내가 32살에 워홀을 결심한 이유

2020년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할 때 나는 30살이 되었다. 역마살이라는 핑계로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나를 정당화하고 30년을 살았건만 코로나의 등장으로 나는 더 이상 역마살이라는 핑계로 이곳을 떠날 수 없었다.


2019년,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현금화하고 세계여행을 떠났다.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엄청난 기대를 가지고 떠난 여행은 아니었다. 그저 오랜 내 버킷리스트를 이루기 위해서였다. 웃을 수도 있겠지만 내 어린 시절 꿈은 '명탐정 코난'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남도일의 부모님이었다. 


그들처럼 글을 쓰며 세계여행을 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꿈은 늘 그렇듯 어느새 희석되고, 27살 나는 직장인이 되었다. 꿈을 꾸던 어린 소녀는 커서 그저 한 사람의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세계여행에 대한 꿈은 계속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틈만 나면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돌아다니게 했었다. 


그렇게 미적미적 시간만 보내던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모든 것을 들고 세계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하게 된 것은 내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오고부터였다. 이렇게 직장인으로 안주하고 지내다가는 결국 내 마지막 꿈까지 이루지 못하고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끝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정말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 29살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떠난 세계여행이라는 꿈에 부푼 것도 잠시, 나는 이 여행에서 생각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영어도 부족했고,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조금이라도 일이 틀어질까 조마조마하게 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통장의 잔고를 걱정하고, 어느 날은 행복했다가 어느 날은 혼자 있음에 외로워했다. 사건사고들도 많았는데, 그 이야기를 모두 듣던 친구들은 '너랑 여행 가면 심심하지는 않겠다'라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곤 했다. 


생각해보니 실패의 연속이었던 것 같은 여행이었는데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을 주저하지 않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나는 오히려 더 자유로웠다.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되었다. 정말 너무 간단했다.


그렇게 계속 다른 곳으로 향하던 나의 여행의 끝은, 예정에 없던 폴란드의 한 마을에서 바라본 노을에서였다. '아, 나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가도 좋을 것 같아'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렇게 멋진 노을을 볼 수 있었으니 나는 이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2019년 7월이었다. 다시금 남들과 같이 돈을 벌고, 그러다 너무 힘들어질 때면 짧게나마 여행을 떠나 새로운 곳을 마주하다 보면 이런 삶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가 터지고 짧게나마 떠나던 여행들도 갈 수 없는 순간이 오자,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집과 회사로의 반복된 생활에 지치면 떠날 곳을 잃은 나는, 어느 날은 만족스러웠다가도 어느 날은 무언가의 존재가 지독히도 나를 짓누르는 기분에 내 주변을 돌아볼 수 없게 만들었다. 


어른들이 말하듯 그저 단조로운 곡선을 그리듯 일상을 이어가다 보면, 어느새 또 버티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기도 했었다. 실제로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가 터지고 내 통장의 잔고는 계속해서 불어 나갔다. 내 유일한 취미인 여행을 잃으니 돈을 쓸 일이 없었다.


나는 전혀 행복하지가 않았다. 불어나는 잔고를 보며 기쁜 마음도 잠시, 이런 삶이 앞으로도 20년 30년 계속될 거라 생각하니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내가 과연 다른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안정된 생활은 독이었다. 행복하지 않다고 나를 구렁으로 몰아넣다가도 이대로도 괜찮지 않아?라는 합리화를 하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마음과 별개로 몸은 이 생활에 적응해버린 탓이었다.


그렇게 이번에는 게으름을 핑계로 어영부영 시간을 죽이던, 2022년 근무하던 회사에 처음으로 적자가 났다. 경영진들은 그 모든 탓을 우리에게 돌리듯이 말을 하는데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적자는 잠시였다. 곧 다시 흑자로 전환되었지만, 많은 이들이 회사를 떠났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어디든 안전한 방공호는 없었는데, 나는 이곳을 방공호라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곳을 떠나기로 했다. 10년 전 나는 아주 최소한의 돈을 가지고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었다. 바뀐 환경에서 내가 배운 것은 움직이지 않으면 시작되지 않는다는 사실 었다. 물론 그때의 어린 나와 지금의 나는 또 다른 나겠지만, 그곳에서 게으름만 피우던 나에게 움직이지 않으면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 귀인을 만났듯이 이번의 나의 결정이 앞으로의 10년을 위한 나에게 무언가 선물이 되기를 바랐다.


해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그 말을 나는 믿는다.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매우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그저 다시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내 주변에 이루고 있던 것들을 바꾸고 나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진 것이다. 실패할 수도 있다. 나는 완벽한 사람도 아니고 태생이 게으른 사람이기 때문에 돈만 날리고 돌아올 수도 있다. 그럼에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아직 나에게 남아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으면 나는 그것으로 내가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것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또다시 어느 날의 폴란드의 하늘처럼, 나에게 다시 그런 하늘을 보여주기를 바라면서 나는 32살 워홀 막차에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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