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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얼리 May 22. 2022

[단독]“트랜스젠더 차별”…국회, 성별칸 없앴다

'단독'을 붙인 건 이 내용을 싣지 않은 매체에 대한 자조적 표현

지난 1월 한 트랜스젠더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방문 신청을 할 때 성별을 기재하는 것은 트랜스젠더 차별”이라는 내용이다. 3개월 후 국회는 방문신청서에 ‘성별 칸’을 없앴다. 입법 기관에서 트랜스젠더 민원을 받아들여 공식 시정한 사실상 첫 사례다.


국회 방문 시 작성해야 했던 방문신청서. / 자료출처 : 국회사무처


국회 당직자로 비주기적으로 출근하는 A 씨는 트랜스젠더다. 출입 때마다 방문신청서를 작성해 신분증과 함께 제출해야 방문증을 받을 수 있다. 방문신청서에는 신청인의 개인정보를 써야 하는데, 이때 성명과 생년월일 기재란 옆에 ‘남‧여’라 적혀 있어 둘 중 하나에 표시를 해야 한다. 태어나 지정된 성별, 즉 신분증 상 숫자로 표기된 성별과 다른 성별 정체성을 가진 A 씨는 “방문신청서를 작성할 때마다 나의 정체성과 다른 성별을 써야 한다”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먼저 A 씨는 남과 여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 ‘제3의성’ 정체성을 가진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라 보았다. 성별 이분법을 강제하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는 본인의 성별을 남과 여에 규정되지 않는 '제3의성'으로 인지한다. 남 혹은 여로 본인을 인식하더라도, 겉모습과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반대로 작성하며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게 된다.


또, 국회 방문자의 성별 정보를 수집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성별은 개인을 식별하는 필수 정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권위는 A 씨의 진정이 타당한 문제제기라 판단하고  조사에 나섰다. 국회에 방문신청서 양식을 요청하며 다음 질의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성별이 출입을 위해 필요한 정보가 맞는지?

-성별을 표시하지 않으면 방문증 발급 불가한지?

-성별 정보 기재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일 수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앞으로 이를 개선할 계획 있는지?


마침 국회 청사 출입 내부 규정을 수정 중이었던 국회는 한 달도 안 돼 “검토하겠다”라고 답했다. 성별은 꼭 필요한 정보가 아니고, 기재하지 않아도 방문에는 지장이 없다고도 덧붙였다. 그리고 정확히 27일 만에 내규를 개정해 곧장 바뀐 방문신청서를 배치했다.



2022년 3월 29일부로 개정된 국회 방문신청서. / 자료출처 : 국회사무처


성별란을 삭제했다. 대신 ‘방문목적’을 묻는 칸이 추가됐다. A 씨의 진정은 국회 방문신청서 성별 표기란에 대한 첫 민원이었다. 국회는 “성별 기입이 성소수자 차별이라는 문제의식에 공감했다”라며 “향후에도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 밝혔다. 물론 비성소수자 중 아무도 불편하지 않을 변화라 순조로웠겠으나, 인권위에서도 국회의 이 같은 결정에 “환영” 메시지를 전했다.


본격 조사에 나서기 전에 국회가 문제점을 시정해 인권위는 해당 진정을 기각했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통계청의 질병 분류 상 트랜스젠더는 ‘성주체성 장애’를 가진 사람이다. 인권위는 “장애 규정은 이중적인 사회적 편견과 낙인을 강화해 혐오와 차별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지적했다.


반면 성소수자 관련 국가 통계는 없어 인권 개선이 쉽지 않다. 이에 대해서도 인권위는 통계청과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 관련 기관에 “국가승인통계조사 및 실태조사”를 할 때 성소수자도 정책 수립 대상 인구 집단으로 고려할 것을 권고했다. 통계청은 “예민한 사안이라 당장 결론을 내기 힘들다”라며 “2025년 인구주택총조사 전까지 연구용역을 맡겨 검토하겠다” 회신했다. 나머지 기관들은 아직 답변을 미루고 있다.


국회의 변화 소식을 접한 한 트랜스젠더 당사자는 “궁극적으로는 ‘MTF*’라 기재해도 되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전했다. 성소수자의 문제제기는 모든 개인 정보에서 성별 기재를 금지하는 게 목표가 아니다. 성별이 ‘O/X’ 같은 이분법적 선택지가 아니라 주관식으로 기재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주관식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MTF : Man To Female의 약자. 지정 성별이 남성이지만 정체성이 여성인, 트렌스젠더 여성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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