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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얼리 Jan 22. 2023

각오를 했어도 이런 식의 폭력은 많이 아파요

학교폭력 말고 또다른 폭력, 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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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일정>

(월)

축산물 시장 – 전문가 인터뷰


(화)

송아지 경매시장 – 축산 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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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힘들겠다” 현장을 방문하기 전, 걱정 어린 말을 들었다. 각오는 돼있었다. 소고기는 원치 않아도 심심찮게 봐왔고 심지어 매체에서 본 소 도축 장면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나도 소고기를 먹을 때가 있다. 그 중 자발적일 때도 있다. '고기'가 되는 소를 취재하며 너무 마음 아파하는 것도 기만이라 생각했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올라올 때마다 떼어내고 발로 차버렸다.

 

  이 힘듦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그라면 공감하며 함께 마음 나눴을 거고, 그랬다면 고이지 않았을 텐데…. 혼자 다 괜찮다고 되뇌이다 잠에 들었고, 결과적으로 상담사를 만나고서야 털어놨다. 울 일인가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 “많이 힘드셨겠어요”라는 상투적인 말을 들었고, 소 시장에 있던 나를, 정육점 앞에 있던 나를 멀리서 바라보았다. 오열했다. 상담사는 내게 "글을 쓰라" 했다.




축산물시장 입구에 소 캐릭터가 '한우'를 들고 웃고 있다


  축산물시장 간판에는 ‘소고기’를 들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윙크하는 소 캐릭터가 붙어 있다. 시장엔 이 캐릭터를 제외하면 귀여운 혹은 살아있는 소 따위 없다. 소가 원래 얼마나 컸는지, 머리를 제외한 부위들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통째의 사체도 걸려있다. 소머리, 사골, 꼬리, 우족, 곱창, 대창, 간, 천엽… 잘게도 쪼갠 ‘소고기’는 해체돼 빨간 바가지에 담겨 늘어섰다. 고개를 돌리면 돼지의 머리가, 머리 위에 머리가 또 쌓여있다.


  정육점 문 밖에 걸린 ‘소고기’는 기묘하다. 새빨간 ‘고기’, 선홍빛 ‘고기’, 더 연한 핑크빛 ‘고기’들이 전시돼있다. 동물 사체를 주렁주렁 널어놓는데, 그 아래 핏물도 흐르는데 모두가 태연한 게 기이했다. 설 대목을 맞아 상인들의 칼질은 기계와 같고 기계들의 움직임은 사람과 같았다. '고기'들을 외면 하고 눈을 빠르게 굴려 사람들만 봤다. 상인들과 소비자들을 만나 '한우' 가격에 대해 물었다.


소 경매시장, 펜스에 송아지가 매여있다


  매주 화요일마다 송아지 경매시장이 열리는 지역에 갔다. 농민들은 경매가 열리기 4시간 전부터 부지런히 송아지를 싣고 온다. 도착하면 트럭 짐칸에 맸던 밧줄을 풀어 경매장의 펜스에 다시 묶는다. 밧줄은 송아지의 얼굴과 입을 동시에 감싸 닫는다. 영문 모르는 송아지들의 울음소리는 처절하다. 귀가 아프게, 시끄럽게 운다. 그 큰 눈을 더욱 부릅뜬 채 목청껏 울부짖었다.


  그러다 도망가려 하기도 한다. 줄을 놓친 농민은 당황하지만 송아지는 달리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축협 직원에게 단번에 잡힌다. 송아지들은 끌려가며 입에 거품을 문다. 이 경매시장은 자기 몸값을 매겨져 팔리는 곳이지만 당장 죽이진 않는다. 아직 어린 소들이라 더 키워서 도축하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아니다. 이를 알 리 없는 아이들은 죽음이 앞에 놓인 줄 안다. 기계에 매인 채 헛발질을 하고 옆 송아지에게 기대어도 본다.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헉헉거린다. 입김이 하얗게 시장을 뒤덮는다.


송아지가 기계에 매여 하릴없이 끌려가는 송아지


  경매에 참여한 농민들은 하나씩 들어오는 송아지를 보고는 스마트폰에 가격을 입력한다. 송아지들은 계단식 좌석에 앉은 농민들을 올려다보며 무대 중앙에 선다. 사려는 사람이 많지 않으면 낙찰에 시간이 더 걸리고, 최저가가 연속으로 떨어지는 동안 송아지는 빙글빙글 돌며 날뛴다. 긴장감이 고조되는 거다. 낙찰되면 또 트럭에 시린다. 죽이지 않는다는 것에 한숨 놓았을까?


   긴 속눈썹 아래 공포에 질린 눈동자는 ‘너도 날 못 도와줘?’ 묻는 것 같았다. 밧줄 풀어줘도, 멀리 가지도 못할 거면서… 또 순하게 잡혀 돌아올 거면서…. 그러니까 죄책감 심는 표정을 보내지 말아달라고 속으로 애원했다. 송아지들은 끝까지 그 하찮은 밧줄 하나에서 벗어나려 머리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본다. 자신을 끄는 방향과 반대로 힘을 주며 버텨본다. 모든 몸짓은 낭비될 뿐이다.




  솟값이 폭락해 경영난을 겪은 농민 두 명이 지난 13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 취재를 시작한 이유다. 코로나19 당시 ‘한우’ 소비가 활발해 소 가격이 올랐고 농가들은 앞다퉈 가축 두수를 늘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기 침체가 시작되며 비싼 국내산 ‘소고기’ 소비가 얼어붙었다. 그럼에도 대형마트는 수익 절반을 가져다주는 정육 코너의 ‘소고기’ 가격을 낮추지 않았고, 소비가 촉진되지 않으니 애꿎은 소 가격만 쭉쭉 하락했다.


  농민들은 절규했다. 정부는 산지나 시장에 그 어떤 지원이나 규제를 하지 않았고, 수입산 ‘소고기’만 마구 들여왔다. 대출 받아 축사의 설비를 마련한 농민들은 오른 금리에 허둥거린다. 물가가 올라 소 한 마리를 기르는 데 드는 돈은 점점 오르니 어느 순간 소를 키우는 게 적자가 됐다. 한 농민은 2년 전에 610만 원을 주고 튼실한 송아지를 데려와 500만 원 이상을 들여 키웠지만, 이 소는 지금 시장에 나가면 많이 받아야 천만 원에 팔린다.


  소에 이입한다 해서 외면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 생각했다. 버젓이 놓인 진실을 덮을 순 없지 않은가. 농민들에게는 평생을 일궈온 터전의 문제고 생계의 문제다. 마음을 다잡고 취재를 이어가야 한다.




누적된 배설물을 바닥 삼아 소들이 서고 앉았다


  석유 찌꺼기가 뭉쳐있는 듯한 시커먼 배설물 위에 소들이 서있었다. 다리가 치덕치덕 잠겨 다리의 3분의 1은 대변 색이었다. 그 위에 눕기도 한다. 소를 처음 봤을 때 몸집이 너무 커서 놀랐다. 비정상적으로 커보였다. 살이 쪄 배가 축 늘어져있는데 움직일 공간이 없다. 같은 몸집의 소 5마리가 1평에 들어차있기 때문이다. 몇 발짝 움직이지도 못하는 곳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쇠로 된 펜스 사이 목을 집어넣어 밥을 먹는 일이었다.


  쇠 펜스를 입에 물고 계속 씹으며 덜거덕거렸다. 점박이인 줄 알았던 하얀 무늬는 자세히 보면 피부병이었다. 화상 입은 것처럼 벗겨져 있었는데 소는 가려운지 긴 혀로 계속 건드렸다. 축협 직원은 이 소들이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고급육' 중의 '고급육'이란다. 문득 축산물 시장 간판에 걸린 <투쁠러스 9등급 한우와 설 명절 보내세요> 문구가 떠오른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며 만든 떡국에는 이 병든 소의 ‘고기’가 고명으로 올라가겠지.


  1평 남짓 공간이 마흔 여덟 칸, 소 240마리가 살고 있었다. 한 칸에는 비슷한 나이, 비슷한 품질의 소들이 함께 산다. 1톤 가까운 무게를 가진 가장 큰 소들은 곧 도살장으로 가야 한다. 가야 할 때인데 농민은 보내지 못하는 상황이라 출하를 한 달 넘게 미루고 있단다. 왜? 지금 팔면 제값이 안 나오니까. 들어간 돈이 아까워 버티는 거다. 암소 임신도 못 시키는데 낳아봤자 팔면 적자라는, 같은 이유다.


  두 팔 벌려도 안을 수 없을 큰 소들은 겁이 많다. 사람이 걷다가 휙 돌기만 해도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친다. 조그마한 드론 하나를 띄우자 혼비백산이 됐다. 자신들이 얼마나 크고 힘이 센지도 모르고 "덩치값 못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마음이 저렸다. "애들이 참 귀엽네요" 하니, "값이 뚝뚝 떨어지는데 속 모르는 소리 하시네" 답했다. 좋은 것만 먹이고 싶다는 농민이 말했다.


  “자식처럼 키웠어요. 나는 저 숫자가 안 붙어있어도 누가 누군지 다 안다고.”

  큰 눈망울에 담긴 진실은 뒤로하고 다른 진실만을 기사에 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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