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가슴 만지듯 레몬을 짜라' 말하는 그들에게
똑똑.
명함 케이스를 꼭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리를 살짝 숙이며 인사하고 명함 한 장을 건넸다. 두 손은 곧장 ‘나마스테’ 말할 듯 가슴 앞에서 합장했다. 제발 이 자리가 무사히 넘어가길 바라는 기도의 손짓이었을까.
“반갑습니다. 말씀을 많이 들었어요. 최 선생님이죠?”
최 씨는 변호사다. 그가 건넨 명함은 투명한 플라스틱이어서 명함을 쥐고 있는 내 손까지 비추고 있었다. ‘金明’ ‘Geum MYUNG’ ‘법무법인 금명’ 로펌 이름을 새기기에 한 번으로는 모자란 지 세 개의 언어로 표현해놨다. 바로 아래에는 로펌 이름과 같은 변호사 이름이 있다. ‘011’로 시작하는 연락처도 보인다. 아직 ‘011’을 쓸 수가 있구나.
“안녕하세요. 저는 형님 친한 동생입니다. 꽤 알아주는 종합병원을 운영하고 있어요.”
키가 크고 머리가 반쯤 벗겨진 남성이 뒤따라와 인사했다. 초대된 손님이 아니다. 나를 보자마자 본인을 병원장이라 소개했고 얼마나 병원이 잘 나가는지 늘어놓았다.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명함 케이스만 조물딱 대며 병실이 몇 개 있는지까지 알게 됐다. 그는 최 변호사와 가까운 사이인 듯 옆자리에 앉으며 "어제는 잘 들어가셨냐" 물었다.
자리를 주선한 식당 사장과는 한 달 전 처음 만났다. 취재 차 한식당에 들러 사장과 질답을 주고받다 우연히 나의 출신 지역을 말했다. 사장은 “아는 형님 중에 그쪽 출신이 있다”며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했고, 얼마 뒤 전화가 와 “다음 주 월요일 7시 반을 비워놓으세요. 웬만하면 오시는 게 좋을 겁니다”라고 했다. ‘웬만하면’이라는 말이 압박으로 느껴져 내키지 않은 약속을 잡았다.
정사각형 목재 식탁에 그렇게 넷이 둘러앉았다. 내 옆에는 식당 사장이, 맞은편에 변호사가 앉았고 그 옆은 병원장인 구도. 한정식 코스는 거창하게 준비됐다. 소주를 못 마시기 때문에 맥주를 주문하려 했는데 병원장이 말리며 소주와 함께 레몬만 주문한다.
“아가씨, 저희 레몬 좀 주세요.”
여자 종업원에게 ‘아가씨’라고 부르더니(엄연히 직업인으로서 서비스를 해주고 계신데 왜 ‘아가씨’라고 할까) 능글맞은 미소를 짓는다. 주먹코가 한층 동그래 보인다. 종업원은 곧장 슬라이스 레몬을 가져왔지만 병원장은 대뜸 짜증을 냈다.
“아니 언니, 센스가 없네. 통 레몬을 줘야지.”
이번에는 왜 언니라고 하는 거야, 종업원 나이가 훨씬 어린데다 동성도 아닌데. 보통 술 마실 때 레몬을 달라고 하면 슬라이스 레몬을 주지 않나. 사장은 왜 자기 직원을 괴롭히는데 가만히 있는 걸까. 내 안에서 불만이 부글 끓었지만 삭였다. 통 레몬을 가져온 종업원에 "잘했다"며 어깨를 토닥이더니 팁 만 원을 찔러줬다. 뿌듯한 미소와 함께.
병원장은 소주 뚜껑을 열어 뚜껑을 레몬 꼭지에 갖다대더니 힘껏 돌려 레몬에 구멍을 냈다. 두꺼운 손으로 레몬을 쥐고 컵에 레몬즙을 짰다. 처음 보는 기술이다. 그 위에 소주를 붓고 건네며 “이렇게 마시면 기가 막힙니다, 원샷!” 외쳤다. 다같이 잔을 부딪히고 새삼스레 ‘반갑습니다’를 외치며 술을 마시지 시작했다. 이후 나에 대한 변호사의 호구조사가 시작됐다. 말 그대로 '기가 막힌' 대화의 시작이었다.
“아버지 뭐하시노?”
단골 질문이라 답변은 준비돼있었다. 동향 출신이라 고향에 있는 저수지에는 어떤 괴담이 얽혀있는지, 그 옆에 자리 잡은 카페의 커피는 얼마나 탄 맛이 나는지부터 이야기했다. 우리 집 위치도 말했다. 아버지가 기계를 운전하신다는 것, 지금은 일하다 다쳐 병원에 입원해계신다는 이야기를 덤으로 전했다. 변호사는 갑자기 폴더폰(‘011’로 시작하는 휴대전화가 모습을 드러냈다)을 열어젖히더니 “어이, 김 검사”라며 통화를 시작했다.
“다른 게 아니라 내 누구 사람 좀 찾고 싶어서 전화했다. 저쪽 저수지 근처에 살고, 레미콘을 운전하신다네. 최근에는 종합병원에 입원하셨단다. 좀 알아봐래이.”
변호사는 굳이 내게 아버지 성함을 묻지 않고, 본인이 알아내겠다며 탐정놀이를 시작했다. 지역 토박이라 한 다리만 건너면 신상을 다 알 수 있다고 으쓱거렸다. 고향 친구들과 이주에 한 번은 만나 술을 마신다며 경찰, 모 회사 이사장, 모 연합회 회장 등 그들의 직책도 소개도 했다.
“주로 어디서 술 드세요?”
돈 꽤나 쓰는 사람들은 시골 동네에서 어디를 가나 호기심에 물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상기된 표정으로 “뒷산 있다이가, 거 산 밑에 좋~은 데가 있다”하더니, 병원장과 눈을 맞췄다. 불쾌한 사인이라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언니(왜 또 굳이 ‘언니’라고 할까)들이 대접해주는 술집에 간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약하자면 등산코스로 유명한 산 바로 아래 여성 접객원이 나오는 유흥업소가 있으며, 그곳에서 모임을 자주 갖는 고향 친구들은 토박이라 그 동네 술 좋아하는 사람은 다 안다는 뜻이다.
아버지 이름을 알아낼까 무서웠다. 첫째는 아버지에게 폐가 될까하는 막연한 두려움이었고, 둘째는 그들이 아버지 이름을 안다면 아버지도 유흥업소를 가는 그들과 아는 사이라는 뜻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김 검사라 불리는 이의 회신이 오기를 기다리며 그들은 ‘룸살롱’ 썰을 이어갔다. 세 달 전에는 방역수칙을 어기고 유흥업소를 이용하다 적발됐고, 지난주에는 걸릴 뻔했지만 미리 경찰 출동 소식을 알아 도망쳤다는 이야기. ‘룸살롱 팸’들은 수년 전까지로 역사를 뻗쳤다.
문득 내가 여기서 50대 남성 3명과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싶었다. 그들은 허허실실 웃었다. 변호사는 자신이 어떻게 경찰과 신뢰관계를 쌓아 적발 대상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는지 자랑했다. 진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씁쓸하고 불쾌한 느낌이다. 두 가지 생각이 충돌했다. ‘발 넓은 사람들인데 관계를 유지해야겠지’ vs ‘이 순간이 어색해지더라도 룸살롱 이야기를 못하게 해야겠다’
애석하게도 둘 중 하나를 고민하다 어정쩡한 모양새가 됐다. 웃진 않는데 다른 반응도 보이지 않는 채 자칫 동석자들이 ‘이 자리가 지루하구나’ 생각할 수 있게 하는 표정을 지은 것이다. 병원장이 분위기를 띄우려 한다.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 사장에게 레몬소주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사장은 레몬꼭지를 곧잘 땄지만 즙은 잘 짜지 못했다. 병원장은 팁을 알려주는 '농담'을 했고, 나는 경악했다.
“아이, 형님. 느낌 알잖아요. 여자 가슴 만지듯이! 거침없이 요래 요래!”
레몬을 쥐고 짜는 시늉을 하며 사장에게 윙크해댔고 사장은 따라하며 “기자님 듣고 계신다”며 웃었다. 나는 병원장 눈을 똑바로 쳐다본 다음 눈썹을 찡그렸다.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알짜배기 취재원을 얻고 싶은 막내 기자, 사회초년생이자 눈칫밥 먹기가 습관인 나는 그것밖에 하지 못했다. 병원장은 표정을 읽고 “왜요?” 물었고 나는 “레몬이 시네요”라 대답했다.
변호사가 말했다. “기자 언니야, 근데 우리가 나쁜 짓 하는 게 아이고 그냥 한 번 노는 김에 더 재미있게 놀라고 거 언니들이 술만 좀 따라주는기다.” 아무도 묻지 않은 방문 이유를 말하며 자기변호를 하더니 이번엔 나를 겨냥해 이야기했다. “근데 니는 내같이 나이 많은 오빠야는 안 만나보고 싶나?” 변호사는 내 아버지와 동갑이다. 이때도 못 들은 척 바닥만 쳐다봤다. 분명 좀 전까지 딸 이야기를 했는데.
집에 돌아오는 길 주먹으로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나는 얼마나 성공할 인재이길래 불쾌한 말을 듣고도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는 말을 하지 못했나. 자책감에 한숨만 허공으로 내던졌다. 여성들을 위한 기사를 쓰고 싶다 말하는 내 자신에게 부끄러웠다. 여성들이 당한 성희롱에 버럭하면서도 정작 나는 성희롱을 듣고도 그들과 불편해질까 참고 있었다. 나에게도 미안했다. 레몬이 시긴 뭘 시단 말인가. 달기만 했는데.
후유증은 길었다. 자책이 80, 분노가 20이었다. 혼자 앓다가 선배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하냐 물었다. “아, 그럴 때 많지”라는 대답에 슬퍼졌다. 일상적인 일이랬다. “그런데 얘기해. ‘요즘 그런 말하면 안 돼요’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하면 그쪽도 아무 말도 못하더라.” 휴대전화 메모장을 열고 매뉴얼 하나를 만들었다.
<성폭력 위기대응 매뉴얼> (*아주 부드러운 나만의 대응 방법)
1. 성희롱 발언을 들었을 땐 “요즘 그런 말씀하시면 큰일 나요” 웃으며 경고하기.
2. 경고가 안 먹힐 땐 표정 굳히고 사과를 기다리기.
3. 그럼에도 뻔뻔하다면 신고하기. 그의 상사나 그에게 영향력 미칠 수 있는 사람에게 찔러 멕이든가.
삼일 뒤 전화가 왔다. 변호사가 아버지 성함을 못 알아냈다 말했다. 탐정 놀이에 실패한 변호사는 "느그 아버지 재미없게 사시는 갑다"라며 '재미있게' 사는 자신을 위로했다. 멋쩍게 영양가 없는 말을 이어가길래 옳다구나 하며 전투력을 불태웠다. '어디 한 번 또 성희롱 해보시지.' 아쉽게도(?) 5분 간의 통화에서 매뉴얼을 써먹을 기회를 도통주지 않았다. 끊기 전 그는 저녁 약속을 제안했고 나는 이유 없이 거절했다. '룸살롱 팸'으로부터 받은 마지막 연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