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긴 마찬가지인데 우는 동생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언니니까. 아빠가 일찍 출근하시고 처음 집 안에 둘이 남겨졌다. 동생은 일어나자마자 꺼이꺼이 울었다. 괜찮다며 안고 토닥여주었다. 내가 있으니 괜찮다고, 곧 우리 돌봐줄 할머니가 오신다고. 동생은 더욱 목 놓아 울었다. 낯선 사람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일 거다. 나도 마찬가지다. ‘날 안아줄 언니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할머니는 그날부터 매일 우리 집으로 출근하셨다. 아빠가 집에 오고 나면 퇴근하셨다. 물론 친할머니가 아니다. 아빠가 고용한 베이비시터다. 외출할 때는 할머니 손을 잡고 나갔다. 이가 흔들릴 땐 치과에 가지 않고 할머니가 이에 실을 끼워주셨다. 다들 그렇게 이를 뽑는 줄 알았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그게 아니었다. 나만 이가 삐뚤게 난 것 같기도 했다. 학부모 참관 수업에도 나만 할머니가 오셨다. 친구들에게는 친할머니라고 속였다. 제발,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정확히 5년 뒤 정말 엄마가 생겼다. 언니도 생겼고, 오빠도 생겼다. 마냥 기뻤다. 이제 ‘나도 엄마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가장 기분 좋았다. “이제 너네 엄마가 될 거야”라는 아빠의 말에 동생과 나는 박수를 쳤다. 춤도 췄던 것 같다. 할머니는 엄마가 우리 집에 드나들 때부터 일을 그만두셨다. 다시 볼 수 없었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이모’는 ‘새엄마’가 됐고 어느덧 ‘엄마’가 됐다.
언니, 오빠와 같이 살진 않았다. 엄마의 전 남편과 함께 산다고 했다. 우리가 이따금씩 언니, 오빠가 사는 집을 놀러갈 뿐이었다. 볼 수 있는 시간대도 정해져 있었다. 드문드문 보기도 했고 나이 차이도 많이 나 친해지진 못했다. 그들은 내가 아침에 일어나 울어도 달래주지 못했지만, 나는 대학생 오빠와 고등학생 언니가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오빠가 떡볶이를 사주겠다며 학교 앞 분식집으로 오라고 했다. 설탕 가득, 떡만 한가득 담긴 떡볶이 한 접시와 어묵 두 꼬치가 테이블에 놓였다. “고마워.” 오빠한테도 낯을 가렸다. 별 말 없이 먹고 있으니 하교 시간에 맞춰 점점 분식집이 바글거렸다. 반 친구들이 옆 테이블에 앉으며 인사했다. 왠지 모르게 우쭐한 미소를 지었다. ‘나 오빠 있다!’ 그런데 친구들은 부러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들리지 않게 수군댔다. 아랑곳 않고 떡볶이를 먹으며 오빠랑 친한 척을 했다.
오빠가 계산하는 사이 친구들이 다가와 물었다.
“누구야?”
“우리 오빤데?”
“무슨 오빠?”
“친오빠!”
“거짓말”
“진짜야”
“거짓말하지마”
“진짜라니까. 나 언니도 있어”
그들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자기네들끼리 또 속닥거렸다. 오빠가 듣진 않았을까 조마조마했다.
이 날 이후 우리 가족은 6명이 됐다. 가족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부모님이랑 오빠, 언니, 나, 그리고 동생까지 모두 이야기했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분식집에서 한 말이 거짓이 되니까. 가족 그림을 그릴 때도, 가족에 대해 소개를 할 때도 그랬다. 오빠와 언니에 대해서는 상상해서 말해야 했다. 그들을 속속들이 알 만큼 가까워지지 못했고 쌓은 추억도 몇 가지 없어서다. 한 번 시작한 거짓말은 아주 어린 시절까지 꾸며내야만 했다.
친구들은 궁금한 게 많았다. 오빠, 언니랑 나와 동생이 왜 이렇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지, 왜 지금까지는 소개를 안 했는지, 왜 우리와 같은 초등학교 출신이 아닌지. 부모님이 만나게 된 이야기부터 만들어내야 했다. 5년 전 아빠는 베이비시터 할머니가 자주 가시는 옷가게에 몇 번 할머니를 모시러 갔다가 엄마를 만나게 됐다. 이게 사실이다. 하지만 더 젊고 극적인 만남이 필요했다. 그러면서도 현실적인.
아빠는 결혼 전 부산에서 일했다. 퇴근 후 바다내음을 맡으며 혼자 물가를 걷는다. 맞은편에서는 엄마가 회사 동료와 함께 걸어온다. 눈이 마주친다. 엄마는 아빠에게 호감을 느꼈지만 아빠는 다시 걷기만 한다. 스쳐지나간 후 서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걷는다. 찰나지만 엄마에게는 운명처럼 느껴졌다. 아빠는 당시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안전제일 마크 옆에 ‘삼성콘크리트’라고 적혀있던 걸 엄마는 봤다. 다음 날 엄마는 점심을 거르고 ‘삼성콘크리트’로 찾아갔다.
결혼 직후 오빠와 언니를 낳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아빠 회사가 기울어 작은 시골로 이사해야 했다. 엄마는 교육 문제로 부산에 남았다. 오빠, 언니와 함께. 기러기 아빠는 시골에서 집을 얻어 건실하게 돈을 모아 가계를 다시 일으켰다. 엄마도 시골로 내려왔고, 오빠와 언니는 부산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다. 부모님은 안정적으로 생활하게 되자 나와 동생을 낳은 거다.
참 꼼꼼하게도 이야기를 짰다. 시나리오를 만들어놓고 거기에 맞춰 대답했다. 어떤 질문도 수월하게 넘겼지만 거짓말은 덕지덕지 불어났다. 어쩌다 빈틈이 보여도 우겼다. “저번엔 오빠가 선물해줬다며?” 능숙하게 다음 ‘가짜 이야기’를 덧붙였다. "알고 보니까 언니랑 같이 준비해준 선물이더라고!" 재혼한 가정이라고, 그래서 생전 처음 보는, 같이 살지도 않는 가족이 생겨서 생일을 같이 안 챙긴다고 이야기할 순 없었다. 화기애애한 가족, 함께 위기를 극복한 완벽한 가족, 누구 하나 빈 곳 없는 가족을 완성했다.
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선생님 책상에는 내 일기장이 펼쳐져 있었다.
“너 동생밖에 없잖아. 왜 일기에 거짓말 했어?”
일기에 언니가 옷을 물려준 이야기를 썼다. ‘그게 얘한테 맞겠냐’라고 언니에게 핀잔을 줬던 오빠 이야기도 썼다. 실제 있었던 일은 아니다. 오빠와 언니 이야기를 쓰고 싶어 지어냈다.그래도 오빠와 언닌 정말 있는데...
선생님은 내 생활기록부 속 가족관계란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종이에 적힌 나의 가족은 아빠, 나, 동생 그리고 새로 추가된 엄마까지였다. 엄마 이름이 가장 밑에 적혀 대놓고 ‘추가됐어요’ 알려주는 것도 속상한데 이 기록은 아예 오빠와 언니를 없던 사람으로 만들었다. 처음으로 선생님에게 대들었다. 엄마는 내 엄마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 학교에 불려왔다.
“엄마 아빠 처음 만났던 바다 가고 싶다.”
문득 동생에게 던진 이야기. 시나리오를 받아본 적 없는 동생은 어리둥절했다.
“엄마랑 아빠가 바다를 간 적이 있어?”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가상 가족 이야기를 현실로 믿기 시작했다. 재혼 가정 이야기는 이제 머릿속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