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서 Apr 22. 2022

사일런스, 사일런스, 사일런스

여행산문. 여행에세이

"폰디체리에서의 마지막 날 조용한 오후를 보낸 덕에, 나는 잠시 동안 신을 그리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면허는 필요 없다고 했다. 눈이 큰 인도인 청년은 씩 웃으며 핸들을 조작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난 처음 타 보는 건데 괜찮을까?" "노 프라블렘, 여기서 잠시 연습해봐." 그는 내게 열쇠고리도 없는 키 하나를 쑥 건넸다. 스쿠터는 제법 크기가 큰 모델이어서 잘못하면 왠지 사고가 날 것만 같았다. 청년은 내가 자전거는 탈 줄 안다고 하니 그럼 탈 수 있을 거라며 내게 키만 건네주고 다른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하지만 오로빌로 가려면 스쿠터가 필수 이동수단이다. 나는 용기를 내서 한 번 운전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스쿠터에 앉아서 살짝 당기니 웅! 하고 엔진 소리가 났다. 그리고 갑자기 앞으로 튀어 나가더니 5미터 정도 끌려가다시피 하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인도 청년이 뛰어왔다. 난 혹시라도 스쿠터에 상처라도 났을까 봐 당황했다. 그러나 청년은 스쿠터 상태를 확인하기는커녕 웃으며 나를 일으켜주었다. "오케, 잇츠 오케이, 노 프라블렘." "응 그래 알았어. 고마워. 다시 해볼게." 스쿠터는 생각보다 힘이 좋고 빨랐지만 이번에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균형을 잡자 금방 감각이 생겼다. 무엇보다 겁을 내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았다. 엔진 달린 자전거일 뿐이라고 생각하니 안될 이유가 없었다. 난 대담하게 속도를 더 올렸다. 핸들을 꺾어 유연하게 유턴까지 해낸 내가 스쿠터 가게로 돌아오자 나를 바라보던 청년이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됐어, 이제 타도 돼요. 자, 돈을 내세요."


인도에서 일반적으로 유명한 곳들은 대부분 북인도에 위치해 있다. 그러므로 인도를 한 달 이내로 짧게 여행하는 사람들은 북인도의 명소들만 다니다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처럼 장기간 인도에 체류를 한다면 북인도 보다 더 북쪽 히말라야 가까이 가거나 남인도로 내려가는 여정을 택할 때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인도의 동남쪽 해안 도시인 폰디체리에 도착해서 북인도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중이었다. 폰디체리는 인도에서 드물게 프랑스령이었던 도시이기 때문에 아직도 불어를 사용하는 인도인들이 있고 무엇보다 다른 도시보다 거리가 깨끗해서 놀라게 된다. 게다가 남인도는 맛있는 해산물 음식도 많고 맥주 값도 북인도 보다 싸며, 심지어 이태리식 피자집까지 있으니 북인도에서 지친 사람이라면 힐링하기 딱 좋은 곳인 것이다. 그러나 내가 폰디체리에 온 진짜 이유는 사실 오로빌에 가기 위해서였다. 폰디체리 옆에 있는 오로빌은 인도에 오기 전부터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진 곳이었다. 이상적인 삶을 추구하는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오로빌의 여러 가지 규범들은 날 유혹하기 충분했다. 나는 우선 폰디체리에 있는 스리 오로빈도 아쉬람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면서 오로빌에 대한 사전 정보를 얻었다. 당장 내가 오로빌에 사는 오로빌리언이 될 자격은 없었지만 입주자 후보라고 할 수 있는 뉴커머가 될 수 있는 조건과 방법 등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오로빌을 내 눈으로 봐야 하니 스쿠터를 빌려야 했던 것이다. 오로빌리언들은 모두 스쿠터를 타고 폰디체리와 오로빌을 오가고 있었다.


폰디체리에서 오로빌로 향하는 해안 도로는 정말 아름답다. 온화한 바람이 기분 좋게 팔뚝을 스치고 바다에서 돌고래가 점프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오로빌은 공중에서 보면 달걀형 단지처럼 생겼지만 실제로 처음 오는 사람들은 내가 지금 오로빌 거주 지역 내에 들어와 있는지 모르기 쉽다. 그만큼 숲 속에 드문드문 집이 있기 때문이다. 스쿠터를 몰고 오솔길을 따라 오로빌의 구석구석을 본 나는 드디어 마트리만디르에 도달했다. 마트리만디르는 오로빌의 심장 같은 곳으로 일종의 명상센터 같은 곳인데 수십 년 전에 시작해서 아직까지 건축 중인 곳이다. 그래도 이제는 건축이 거의 마무리된 상태였기 때문에 외부인도 견학이 가능했다. 단, 마트리만디르 내부에 들어가려면 정해진 시간에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들어갔다가 나와야 했다. 그날은 날씨가 유난히 화창 했다. 마트리만디르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정원에 감탄하고 있을 때 가이드가 방문객들에게 줄을 서라고 안내했다. 가이드는 우리 모두에게 주의 사항을 알려줬는데 한 줄로 따라오되 절대적으로 정숙하라는 것이었다. 옆사람과 대화하지 말라는 말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우리는 가이드를 따라 하얀 자갈이 깔린 길을 걸었다. 가이드의 지시가 어찌나 엄격했는지 모두가 말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게 보였다. 서른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아무 말도 없이 일렬로 걸었다. 바람 소리와 자갈 밟는 발소리가 부드럽게 들려왔다. 난 그 발소리가 참 좋다고 생각하며 앞사람을 따라갔는데 얼마 안가 안내판 하나가 보였다. 그 안내판에는 "사일런스, 사일런스, 사일런스."라고 쓰여있었다. 침묵하라는 말을 세 번이나 강조하다니. 이동 간에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소리라도 들리면 가이드가 여지없이 다가와서 조용히 하라고 주의시켰다. 거대한 마트리만디르가 점점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또 같은 안내판과 마주쳤다. "사일런스, 사일런스, 사일런스." 그곳에서 지켜야 할 것은 침묵 하나밖에 없는 건지, 그 하나를 지키지 않으면 당장 쫓겨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마트리만디르에 들어갈 때까지 같은 안내판을 다섯 개나 보았다.


마트리만디르의 내부는 마치 고대 지구에 도착한 우주선 같은 느낌이  정도로 신비롭다. 구형 건물 전체를 둘러싼 페탈들이 열리면 사방에서 햇살이 들어와 중앙에 있는 거대한 수정에 모이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그 모습이 정말 놀라웠다. 그때 나는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명상을 하면 465 광년 떨어진 천체의 외계인과도 교신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 그렇게 마트리만디르를 견학하는 동안 수많은 상념에 휩싸여 있었지만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때때로 탄성이 들렸을  다른 사람들도 말없이 걷기만 했다. 그렇게 이동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쩌면 수도원의 회랑을 걷는 수도사들처럼 보였을  같다. 그곳은 기존 종교의 신전이나 예배당 같은 곳이 아니다. 오로빌은  레넌의 '이매진' 가사처럼 기존의 종교나 국가라는 틀을 뛰어넘는 이상을 실천하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들을 설교 하기보다 침묵해서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것 같았다.


폰디체리의 햇살은 마치 창가에 놓인 푸딩 같다. 스쿠터 핸들에 맺힌 빛을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면 빛을 머금은 말랑말랑한 덩어리가 흔들릴 것 같았다. 나는 폰디체리에 머물면서 날마다 오로빌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늘 지나가며 보던 해변가 사설 명상센터 한 군데에 들려보기로 했다. 내가 그곳에 흥미를 느낀 건 이름이 '콰이어트 명상센터' 였기 때문이다. 여러 나라에서 온 오로빌리언들과 폰디체리에 머무는 사람들이 명상이나 요가 등의 여러 가지 힐링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그곳을 방문하고 있었다. 그곳은 은은한 향 냄새와 명상을 위한 음악이 조용히 흐르는 전형적인 명상센터 분위기였지만, 조금 다르다면 그곳에 온 회원들은 복도에서 만나도 눈인사만 하고 말은 최대한 줄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난 그것이 바로 문자의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름 자체가 '콰이어트'인 명상센터인데 누군들 떠들 엄두가 날까. 

그날 오후 폰디체리로 돌아오는 해안도로에서 잠시 스쿠터를 세우고 먼바다를 보았다. 돌고래 두 마리가 뛰어오르는 게 보였다. 주위는 가끔 지나가는 차 소리가 들릴 뿐 고요했다. 난 마트리만디르에서 보았던 "사일런스, 사일런스, 사일런스."라는 안내판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짧은 기간 동안 머물렀던 오로빌에서의 시간들은 어쩌면 단순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조용한 환경을 유지하는 것과 스스로 침묵하는 것이 삶에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겐 오로빌과 폰디체리에서 먹었던 것이나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보다 '사일런스'와 '콰이어트'라는 두 개의 단어가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알만한 곡을 부른 원히트 원더 가수였던 선배가 있었다. 그 형은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지만 그 형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한 가지 추억이 있다. 어느 날 나는 그 형의 차 조수석에 앉아서 그 형과 음악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카오디오를 켰는데 운전하던 형이 내게 말했다. "그거 켜야 돼?" 난 너무나 버릇처럼 음악을 켠 것이라서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멀뚱멀뚱 형을 바라보았다. "지겹지 않니? 하하. 가끔은 음악도 안 듣고 싶지 않냐? 좋잖아. 조용하고." 그때 나는 음악을 포함한 어떤 소리보다 때로는 소리가 없는 순간이 더 좋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우린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고 열린 창으로 들어온 시원한 바람이 머리칼을 넘겨주었다. 사람들은 좋은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리지만, 음악을 듣고 감동하는 순간보다 음악조차 없는 완전한 침묵의 순간에 느끼는 감동이 더 깊을 수 있다는 걸 잘 모른다. 우리가 그걸 깨닫는 건 쉽다. 그저 일상의 환경을 조용하게 만들고 스스로 말을 줄이며 고요한 순간을 유지해 보면 된다. 그렇게 하면 비로소 안 들리던 작은 소리들이 들리고 마음에 평화로운 바람이 부는 걸 느낄 것이다.


'회복'을 영어로 하면 'Rescilence'다. 이 단어를 자세히 보면 scilence 앞에 re가 붙어있다. 그러므로 회복이란 다시 고요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는 보통 몸이나 마음이 다쳤을 때 빠른 회복을 바란다고 말을 전한다. 이때 회복이란 이전의 상태로 빨리 돌아가길 바란다고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회복이란 고요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니, 인간이 다치기 이전의 상태란 평온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다. "세상 모든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은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언젠가 우리가 제자리로 돌아가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복잡하고 시끄러운 상태에서 벗어난 고요한 상태라는 걸 알게될 것이다.


폰디체리에서의 마지막 날, 게스트하우스 이층 테라스에 앉아 있는데 어디선가 사각사각하는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어릴 때 학교에서 칠판에 글을 쓰는 소리 같았다. 일어나서 주위를 살피니 골목길 바닥에 어떤 인도인이 하얀 석필 같은 것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그가 그 그림을 완성할 때까지 바라보았다. 바라보는 나도 그림을 그리는 그도 아무 말이 없었다. 우리 사이에는 그의 손끝에서 들려오는 석필 긁히는 소리만 흐르고 있었다. 오래 걸리지 않아 그가 그림을 완성했다. 그 그림은 힌두교의 신을 그린 것 같았다. 그림을 보니 폰디체리가 떠나려는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 같았다. 그 후로 나는 여행길에서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은 지는 몰라도 어느 골목에서의 고요한 순간 만으로 여행의 의미를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사일런스, 사일런스, 사일런스."라는 말을 자주 떠올린다. 폰디체리에서의 마지막 날 조용한 오후를 보낸 덕에, 나는 잠시 동안 신을 그리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 글, 사진. 희서

작가의 이전글 요정을 만나는 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