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서 Apr 19. 2022

요정을 만나는 밤

여행산문. 여행에세이

"그날 밤은 바람이 많이 불었다. 거인의 기침 같은 바람 소리를 밟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밤이었다."




"북쪽으로 가고 싶어. 멀고 추운 곳."

나는 버릇처럼 중얼거렸다. 그렇게 난 오래전부터 극지방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 있었다. 눈물도 한숨도 모두 얼어버리는 찬 공기와 처음 듣는 언어 속에서 동면하듯 겨울을 나다가, 얼음이 녹으면 먼바다로 사라지는 것이 이 삶의 라스트씬이라고 생각했다.  


계절과 날씨는 때때로 우리를 어느 먼 장소로 데리고 간다. 차가운 겨울 공기를 마시면 난 먼 북쪽을 떠올리는데, 그곳에는 내 곁을 떠난 모든 것이 모여있을 것만 같아서 그리움을 도무지 말릴 수가 없는 것이다. 파리에 머물던 어느날 나는 레이캬비크행 항공권을 샀다. 그날은 유난히 공기가 더 짙은 푸른빛이었다. 파리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케플라비크 공항에 착륙할 즈음 저 아래 하얀 벌판에 누군가 손가락으로 쭉 그어놓은 홈처럼 도로 하나만 길게 이어져 있는 걸 보았다. 갈수록 희미해 지는 그 길은 마치 기억나지 않는 시의 마지막 줄처럼 안타까운 느낌이었다. 나를 태운 차가 그 늘어진 도로를 따라 레이캬비크를 향하는 동안 차창 밖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눈길을 행군하는 패잔병 같은 가로등 불빛이 차창을 긁었고 검은 창에서는 타르르르 환등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눈앞의 풍경이 끊어진 필름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밤이었다. 눈을 치우는 와이퍼의 덜커덕거리는 소리가 고장 난 로봇의 혼잣말처럼 들렸다. 그것은 알 것 같지만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는 언어였다.


극야의 레이캬비크는 아침도 밤인 것 같고 저녁도 깊은 밤인 것처럼 어둡다. 나는 검고 흰 겨울의 레이캬비크에서 며칠 동안 오로라를 볼 수 있는 날을 기다렸다. 일정에 쫓기는 사람도 아니고 늘 원하던 것이 폭설이 내려 문도 열지 못한 채 집에 갇히는 것이었기 때문에 눈과 밤만 있는 이 도시가 나는 좋았다. 항상 먹을 것이 떨어져도 허기를 느끼지 못하는 고립과 몰입을 바랐던 내게는, 아무 계획 없이 레이캬비크를 걷다가 숙소에서 글만 써야하는 아이슬란드에서의 날들이 좋은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극야의 밤에 라디에이터 옆에 앉아서 타이핑을 하다가 지구라는 행성에 나밖에 없는 듯한 고독을 느꼈다. 그렇게 긴 긴 밤을 지나 새벽이 되면 긴장한 근육들이 푸른 모니터 불빛 앞에서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걸 느낀다. 그러다 고개를 돌리면 지난밤 마시다 남은 압생트나 그라빠가 반 잔 정도 남아있고 접시에는 말라비틀어진 치즈 조각이 포크 끝에 걸려있곤 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짙고 푸른 새벽을 껴안는 것이다.


며칠 후, 오로라 지수와 일기예보가 오늘 밤은 오로라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길에는 나처럼 레이캬비크 곳곳에 숨어서 오늘 만을 기다린 사람들이 오로라 투어 버스를 타러 나와있었다. 버스는 보다 선명한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포인트로 우리들을 데리고 갔다. 버스에 탄 사람들이 저마다 설렘을 안고 웅성거렸다. 도시를 빠져나가 가로등마저 사라져 버릴 무렵, 창밖으로 거대한 트롤의 그림자가 절룩거리며 우리를 따라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건지 아무도 그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때 컴컴한 어둠 속에서 오로라 투어 가이드가 아이슬란드인들이 요정과 사는 법을 알려주었다. 아이슬란드인들이 요정의 존재를 진짜로 믿는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지만 가이드가 그것이 사실이라고 얘기해주는 것을 들으니 새삼 신기했다. 그녀는 아이슬란드인들은 요정이 언제나 인간과 함께 살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사를 가더라도 집의 구조를 크게 바꾸지 않는다고 했다. 왜냐하면 집집마다 요정이 머무는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 자리를 허물면 요정이 있을 곳이 없어지니 조심하는 것이다. 보지도 만나지도 못하지만 언제나 내 곁에 있다고 믿으면서 그 존재를 위해 항상 배려하며 사는 삶은 어떤 기분일까. 그즈음 난 아무도 모르는 곳, 아무도 모르는 집에서, 아무도 모르는 일상을 살다가 아무도 모르는 삶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쩐지 서랍장을 향해 내 생각을 얘기하면 요정의 대답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요정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가 어떤 언덕에 도착했다. 이제 그만 요정에 대한 상상은 버스에 두고 내려야 했다.

언덕에 도착한 지 이 십분 쯤 지나자 검은 지평선 위에서 연두색 아지랑이 같은 것이 촛불처럼 피어올랐다. 그리고 곧 그것은 밤하늘을 덮을 정도로 커지더니 커다란 커튼처럼 너울거렸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양손을 들고 깡총깡총 뛰었다. 나 또한 황홀한 오로라에 취해있었다.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차가 지나갈 때마다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는 먼 길을 보았다. 인간은 길을 왜 만들었을까. 길은 어디로 가기 위해 있는 걸까 아니면 어딘가로부터 떠나기 위해 있는 걸까.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 가고 있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로부터 떠나고 있는 걸까. 그저 찬란한 오로라 밑에 서있을 뿐, 나의 위치가 어디인지 짙은 안갯속에 갇혀있는 느낌이었다.


돌아오니 레이캬비크 시내에는 밤 새 온 눈이 가득 쌓여있었다. 나는 도시의 끝 어딘가 가려고 했는데 지도상 거리를 잘못 계산한 탓에 눈밭에 발이 푹푹 빠지는 길을 한 시간 동안 걸어야 했다. 목적지에 다 왔을 즈음 차가운 벤치에 걸터앉아 파란 하늘을 보았다. 하얀 입김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그때 나는 어떤 생각을 했던 걸까. 사라진 것들에 대한 생각인지, 당신에 대한 생각인지, 아니면 아직도 찾지 못한 무언가에 대한 생각인지 모르지만 흐르는 눈물이 무척 차가웠다. 손가락으로 공중에 글을 쓰고 후우 한숨을 내쉬니 몇 마디 낱말이 밤바람처럼 흩어졌다. 그때였다. 나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어느 길가 가로등 옆 건물 모퉁이에 서있었다. 버버리 코트를 입고 스카프를 두른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순간 나는 그녀가 요정임을 직감했다. 그녀는 오로라 가이드가 말해주었던 바로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 어두운 지점. 아이슬란드인들은 가로등 불빛이 너무 옆으로 퍼지지 않도록 전등갓을 설치한다. 그 이유는 요정들은 어둠을 좋아하는데 도시가 너무 밝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일정 간격으로 그림자를 만들어 둔 것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딱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 어두운 곳에 서있었다. 나는 금세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길을 건너 그녀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빛이 계속 나를 쫓는 게 보였다. 그런데 몇 걸음 남지 않았을 때 그녀는 모퉁이 뒤로 휙 달아나 버렸다. 나는 뛰어서 모퉁이를 돌았지만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몇 초 안 되는 짧은 시간인데 그녀가 사라진 것이다. 


숙소로 돌아오며 나는 아득한 쓸쓸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이 요정을 놓쳐서인지, 오로라를 본 감동 때문인지, 아니면 섬나라에서 느끼는 고독감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살면서 숱하게 느껴온 상실감을 다시 느낄 뿐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누군가 내게 "한 때는 당신의 슬픔을 감당하기 힘들었어."라고 말했고, 이어서 "하지만 그 슬픔 때문에 당신이 아름다운 거야."라며 덧붙였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언어가 관계를 회복시키지는 못한다. 언제부터인가 쓸쓸함을 동반자 삼아 걸었다. 내가 사랑한 많은 존재들은 어김없이 떠나갔고 그때마다 나는 많은 의미들을 길가에 놓아주었다. 내가 자꾸 떠나려는 것이 그런 쓸쓸함을 사랑하기 때문인지 잊고 싶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혼자 걷는 길에서 쓸쓸함이 무용한 것만은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밤이었다. 잠깐의 낮을 보내고 다시 밤이 펼쳐질 무렵 숙소에 들어갔다. 물을 마시다 나도 모르게 "보고 싶어",라고 말하자  안에 노을이 물들었다.  오늘 밤도 같은 시간에  가로등이 있던 골목으로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날 밤은 바람이 많이 불었다. 거인의 기침 같은 바람 소리를 밟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밤이었다.


/ 글, 사진. 희서


작가의 이전글 여행의 동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