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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서 Apr 17. 2022

여행의 동기

여행산문. 여행에세이

"여행자에게는 왜 그곳으로 가려는지 보다 어디로든 지금 떠나야 하는 마음이 더 큰 거니까."




그곳이 어떤 곳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바다가 있는지, 숲이 있는지, 어떤 색깔의 골목이 있는지, 사람들의 표정은 어떤지, 날씨는 어떤지, 커피는 맛있는지 아는  하나도 없다. 내가 그곳에 대해 아는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원곡을  조빔이 제목을 바꾸어 노래했다는 ,  데이브 그루신  많은 아티스트들이  아름다운 곡을 커버했다는 사실뿐이다. 갑자기  조빔의 암파루(Amparo) 듣고 싶어서 찾아 듣는 아침이다. 암파루는 어떤 곳일까. 어떤 곳이기에 많은 아티스트들이 실제로 그곳을 찾아 여러 작품을 창작하게 만든 걸까. 그곳의 어떤 매력이 예술가를 부르는 건지 궁금해졌다.

세계에는 아름다운 음악이나 시의 제목이 되거나 다양한 작품의 소재가 된 도시나 마을들이 있다. 나는 그런 장소에 늘 가고 싶다. 하늘을 뚫을 듯한 랜드마크나 정치인들이 모이는 국제행사를 치렀다는 이유로는 어떤 도시의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어떤 도시의 가치는 여러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겠지만 도시 기능적이거나 경제적인 척도보다는 어떤 소설의 무대가 된 골목이고, 어떤 예술가가 산책하던 공원이며, 어떤 시의 제목이 된 마을이고, 어떤 음악이 쓰인 곳이라는 설명이 한 도시의 가치를 훨씬 높여준다고 생각한다.


곧 축제의 계절이라는 5월이다. 그러나 축제라고 하는 것이 간판만 바꾸었을 뿐 똑같은 텐트를 치고 똑같은 음식을 늘어놓는 행사라면 재미없다. 내게 서울은 그렇게 같은 텐트들로 숫자만 채운 도시 같아서 그것을 즐기기는커녕 피하고 싶은 것이다. 지하철 계단에서 쉽게 거리의 악사들을 만날  있고, 1 개가 넘는 작은 서점들이 골목골목 자리 잡고 있으며, 해가 뜨기 전에 동네 빵집에서 빵을   있는 . 내가 파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런  가지 소소한 이유 때문이다. 무엇이 국격이고 무엇이 도시의 품격일까. 내게는 G20 정상이 방한하는 도시보다 소설가, 시인, 화가가 방문하는 도시가  아름다운 것이다.


내가 파리에 잠시 머무를 때 일부러 그 동네에 집을 구한 건 아니었는데도 알고 보니 집 근처 메트로 이름이 에밀 졸라 역이었다. 나는 그게 참 마음에 들었다. 나는 날마다 에밀 졸라 역에서 출발하여 전 시대의 문인과 아티스트들의 흔적이 가득한 도시를 산책했다. 그런 도시야말로 내게는 다닐 맛이 나는 거다. 아침에 프루스트의 길을 산책하고 피카소의 자취가 남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위고가 식사를 한 바로 그 자리에서 점심을 먹고 뒷골목을 산책하다가 피츠제랄드의 단골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저녁에는 짐 모리슨이 술을 마신 바에 앉아 술을 마시면 하루가 지나는 것. 그 정도면 혼자라도 괜찮은 하루 아닐까.


누구든 여행을 떠날 때 보통은 몇 가지 동기에 의해 움직일 것이다. 죽기 전에 뉴욕은 한 번 가봐야지 하는 마음일 수도 있고, 도장 깨기 하듯 유럽 일주를 하려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행의 동기는 그것 말고도 많다. 시간이나 계절의 변화와도 관계있고, 어떤 장소에 대한 동경도 작용한다. 그리고 어떤 날 문득 떠나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드는 온도와 바람 때문에 벌떡 일어나기도 하고, 음악 한 곡 때문에 경로를 바꾸기도 하며, 누군가는 책에서 본 사진 한 장 때문에 들어보지도 못한 곳을 향해 티켓을 사기도 하는 것이다.


오래전, 어느 출판사 사장님은 소설가 김승옥 님의 무진기행을 읽고 실제 무진이라는 곳이 있는 줄 알고 전라도에 가서 며칠 동안 찾아다닌 적이 있다고 했다. 나 또한 비슷한 이유로 길을 나선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날 우리들의 대화는 무척 즐거웠다. 이처럼 작품 안의 장소는 실제 존재하는 곳이든, 아니면 상상의 장소이든지 그 한 줄만 가지고도 충분한 여행의 동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사적인 이유들도 어쩌면 떠나고 싶은 내게 이유를 만들어 내려는 의도일 뿐인지 모른다. 여행자에게는 왜 그곳으로 가려는지 보다 어디로든 지금 떠나야 하는 마음이 더 큰 거니까.


/ 글, 사진. 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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