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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서 Apr 06. 2022

낯선 곳에서의 아침

여행산문. 여행에세이

"수많은 이메일과 스마트폰 알람 소리에서 벗어나서 천천히 아침 식사를 한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여행지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날이 밝는 거리를 걷는 걸 좋아한다. 방금 피운  냄새를 맡으며 짜이  잔을 마시러 가던 캘커타의 아침, 하루 장사를 시작하려고 플라스틱 의자를 펼쳐놓는 소리가 상쾌하던 하노이의 아침, 해가 뜨지 않는 극야에도 카페에서 모닝커피를 마실  있던 레이캬비크의 아침,  굽는 냄새 사이로 자전거가 달려가던 코펜하겐의 아침, 딱딱한 토스트에 버터를 발라 먹으며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바라보던 런던의 아침, 쏟아지는 눈을 뚫고 라면 가게를 찾던 삿포로의 아침. 짙푸른 공중 속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칸첸중가를 보고 넋을 잃던 다질링의 아침. 모든 아침이 소중하다.


나는 아침을 좋아하기 때문에 낯선 여행지에서이른 아침좋아한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해뜨기  오픈하는 빵집에  손님으로 가서 바게트 하나를   카페에 들려 크루아상과 에스프레소  잔을 마시고 숙소로 돌아오는 루틴을 반복하는 파리의 아침이다. 혼자 여행 중이라면 이러한 아침의 분위기를 100% 즐길  있지만 만약 동행이 있는 여행이라면 보통은 내가 일어나는 시간에는 함께 일어나 밖으로 나갈  있는 일행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숙소에서 아직  일어난 일행을 위해 커피나 빵을 사서 방으로 돌아갈 때면 그들이 여행지의 아침 풍경을 즐기지 않는다는 사실이 안타까웠.


우리는 여행지에서 경우에 따라 좋은 호텔, 저가 호텔, 또는 게스트하우스나 에어비앤비 등 다양한 종류의 숙소를 이용하게 된다. 아침 식사도 어떨 땐 호텔에서 뷔페식으로 먹기도 하고, 어떨 때는 룸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하고, 어떨 땐 근처의 카페나 빵집에 가거나, 또는 편의점이나 길거리 음식으로 해결할 때도 있다. 내게는 그중 매력 있는 것이 저가 호텔에서 제공되는 조식이다. 고급 호텔의 조식 뷔페야 말할 필요 없이 훌륭하지만 외국의 호텔들 중엔 저가 호텔이라도 간단한 뷔페식으로 조식을 제공하는 곳들이 많다. 그런 조식은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와 낭만이 있다. 코펜하겐 호텔의 오픈 주방식 조식 뷔페, 파리의 투 스타 호텔에서 먹었던 커피와 치즈, 하코다테의 어떤 호텔에서 먹었던 죽과 맑은 간장, 후쿠오카의 어느 호텔에서 먹었던 흰쌀밥과 일본식 된장국. 일본의 작은 호텔들은 숙박업에 대한 자존심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많이 있어서 테이블 위에 접어 놓은 냅킨 하나에서도 정성이 느껴지고 좋은 대접을 받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대체로 작은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식 뷔페는 모두 10여 가지 정도의 간소한 메뉴로 구성되지만 따뜻하게 데워진 접시를 들고 그 음식들을 덜어 오노라면 테이블에 앉기 전부터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냥 손끝에 전해지는 접시의 온기만으로도 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가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의외로 많은 호텔들이 어떤 음악도 틀지 않았는데, 이른 아침, 하나 둘 내려와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이 소곤소곤 이야기 나누는 소리와, 달그락 커피잔 내려놓는 소리, 그리고 신문 넘기는 소리 정도가 전부인 그 조용함이 나는 좋다. 수많은 이메일과 스마트폰 알람 소리에서 벗어나서 천천히 아침 식사를 한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물론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출근을 하고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리던 일상에서 벗어났으니 늦잠도 자고 햇살에 눈이 부실 때까지 뒹굴거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침 일찍 나가 산책도 하고 이른 아침 문을 연 카페나 빵집에도 들리고 어느 날엔 간단히 조깅을 하는 것도 여행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다. 동행이 있다면 그렇게 혼자만의 아침 산책을 마친 후 꽃 한 송이와 커피 한 잔을 사서 들어가면 어떨까. 잠에서 깬 동행에게 좋은 선물 아닐까.

올 해가 가기 전에 다시 낯선 곳 작은 호텔에서 조용히 아침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면 좋겠다.



/ 글, 사진. 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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