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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넛버터B Sep 11. 2023

6. 부서진 심장을 채워주는 것

나 지금 마이 아파


알리 왕자님, 그만 사야 되지 않겠니?



우리 집엔 알리 왕자가 산다. 영화 알라딘에 나오는 그 노래 잘하고 춤도 잘 추면서 영리하기까지 한 알리 왕자가 아니라, 언젠가부터 "알리익스프레스"라는 중국 쇼핑몰에서 이것저것 물건을 사들이는 나의 남편이다.


처음엔 아주 작게 시작했다. 물건도 가격도 작고 저렴해서인지 뭔지. 택배아저씨는 이 작은 물건들을 우편함에 넣고 가시곤 했다. 우편물을 꺼내려 우편함을 여는데 정체불명의 택배가 똬-악. 무언가 보니 송장에 중국어와 영어가 가득하다. 무슨 밀거래도 아니고. 영문의 남편 이름을 확인한다. 그리고 전화를 건다.


"여보, 우편함에 뭐 온 거 있던데 이거 뭐야?"

"어. 그거 별거 아니야. 휴대폰 케이스야."

"무슨 케이스를 직구까지 해?"

"엄청난 곳을 발견했어 여보. 여태까지 왜 이걸 몰랐나 싶어."


휴대폰 케이스와 필름, 워치 액세서리, 충전기 등 등 등. 1000원에서 10,000원 정도의 상품은 수시로 날아왔다. 직구라며. 뭐 이렇게 빨리 오는가. 배를 타고 왔겠지만 날아오는 거 아닌가 싶게 자꾸만 왔다. 자꾸 사니까 꾸준히 도착한 거였겠지. 계속 사들인다고 뭐라고 하기도 애매한 금액. 또 대단히 필요 없는 물건들을 사들이는 것도 아니요, 본인 용돈으로 사신다는데.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인간의 욕망과 욕심은 끝이 없고 더 커지기만 하는 법. 그가 자꾸만 물었다.


"여보, 애들 장난감 필요 없어? 진짜 신기한 거 많아. 후기도 엄청 좋아."

"여보, 지금 세일은 엄청하는 기간인데 로봇 청소기가.."

"여보, 창문 청소기 있잖아.."


이제 진짜 없는 게 없다. "단군이래 가장 풍요로운 세대"라는 말을 집 안에서 실감한다. 그래도 다행히 물건이 날아오는 빈도수가 줄어들고 있다. 정말 살 건 다 사긴 샀나 보다.


"여보, 우리도 해외여행 갈까?"


하. 하. 하. 여보. 저기요. 아저씨.

제주도 다녀온 지 한 달 밖에 안 됐거든요.








사실. 남편의 심장이 많이 부서졌다. 불같은 화를 품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사가 온 후로 사무실 분위기는 몹시 불편하다고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상사는 자신을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그만큼 온갖 일들이 자신에게 넘어온다고 했다. 회사가 가기 싫다고. 일요일 저녁이면 슬픔에 젖은 표정이다. 아마도 누구나 있지 않을까. 이런 경험. 회사 가기 싫은 이유는 각양각색이어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하나인 그런 경험. 일요일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그런 경험.


주말은 그래도 낫다. 아이들 애교에 절로 미소를 짓고, 아내가 던지는 남편 맞춤형 농담에 웃기도 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감탄도 한다. 가깝든 멀든 새로운 장소로의 이동을 통해 도파민을 얻으며 일상을 벗어나는 것도 큰 행복이다. 그러나 매일이 그러할 수는 없다. 야근과 회식은 덤인 반복되는 평일은 도통 숨 쉴 구멍이 없다. 그래서 작고 큰 물건들을 사면서 삶을 위로해 나가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그 마음을 알고는 더 이상 잔소리는 하지 않는다. 버티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시간들이 있으니까.


소비를 통해 순간의 스트레스를 날리고,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지 말라고 해도. 과연 그게 쉬울까. 해가 뜨자마자 시작되어 캄캄한 밤이 되어 끝나는 일상의 연속에서 그 어떤 탈출구를 모색할 수 있을까. 나라고 그와 다를까.


무언가 자꾸 사고 싶은 밤이 있다. 쇼핑은 밤에 하지 않겠다는 규칙을 세워두고도 자꾸 무언가를 사려고 기웃거리게 되는 날들이 있다. 모든 것이 지겨워지는 마법 같은 순간도 있다. 맘에 쏙 들어 자주 입던 옷부터, 즐겨 앉아 커피를 마시던 식탁까지도. 다 바꿔 버리고 싶은 욕망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때 말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더니. 애꿎은 물건들에 감정을 쏟아내고 있는 모습라니.


평소 같지 않은 생각들과 행동들이 계속될 때는 잠시 멈추어 본다. 멈추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때가 있다. 그렇게 잠시 숨을 돌려 본다.






Photograph source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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