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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영 Jun 22. 2024

6월 22일, 여름비와 상념들

에세이_05


#1 6월 22일 토요일, 하루종일 비가 내린다. 이른 불볕더위가 가신다. 진득한 열기가 신선한 물방울로 바뀐다. 새 소설의 첫 장을 넘긴다.


#2 몇 달 전쯤이었나,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를 봤다. 소꿉친구였던 두 남녀가 각자의 삶으로 갈라졌다 24년 만에 재회하는 이야기였다. 한국과 미국에서 자기 삶을 꾸려가느라 엇갈렸던 둘은 과거에 미련을 품지 않았다. 다만 너가 너라서 좋았다며 다음 생에서의 만남을 기약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앞선 아주머니의 재킷 후면부 레터링이 눈에 띄었다. "I will die for you". 누군가는 상대를 바라보며 다음 만남을 다음 생으로 넘긴다. 누군가는 당신을 위해 죽을 수 있노라 말한다.

이 양극단의 고백을 보며 실소를 터트렸다. 다음 생과 다잉메시지 사이 평범하고 밋밋한 고백들의 가치를 생각했다. 아무래도 순한 것이 오래 먹기 좋다.


#3 날이 더워지면 밥보다는 면이 끌린다. 여름에 주로 먹는 면요리는 오일파스타와 메밀소바. 둘 다 간이 세지 않고 부드러우며 뒤끝이 크게 남지 않는다. 질리지 않는다. 여름 더위는 사람을 쉽게 질리게 만들어서 음식만큼은 질리지 않는 걸 골라야 한다. 싫증과 단념을 부르는 더위지만 매끈한 면을 빨아들이는 것만큼은 중도하차할 수 없으니까! 올여름 더위도 입 속에서 뭉개져버린 면과 함께 미끄덩 삼켜버리자.

그렇다고 밥, 속상해할 것 없다. 다시 날이 쌀쌀해지면 공허해지는 속을 옹골진 쌀로 꾹꾹 채울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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