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시린 기억의 소중함
난 올케와 저녁으로 스파게티와 맥주를 한잔 하고 있었다.
난데없이 고모에게 온 전화.
'XX야, 오늘 엄마랑 통화했니? 엄마가 이상한 것 같아!'
엄마와 고모는 나와 올케처럼 친언니 동생 사이처럼 지내는 사이다.
난데없이 엄마가 이상하다니?
'무슨? 오늘은 통화 안했고 어제 통화했는데 아무렇지 않았는데?'
'니 엄마가 오늘 아무것도 기억을 못해! 오늘 나랑 몇 번을 통화했는데도 기억을 못해.
오늘 아무것도 기억을 못한다. 이거 어쩌니! '
'고모 알았어. 끊어봐. 내가 한번 전화해볼게'.
이미 엄마는 고모와 통화하면서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 상황에 당황했을꺼다. 그래서 난 최대한 조심히 얘기를 꺼냈다.
'엄마, 오늘 아빠랑 병원은 잘 다녀왔어?'
'응? 병원? 무슨 병원? 방금 아빠랑 어딜 갔다 오긴 했는데 어딘지 기억이 안나...'
'그럼 엄마, 오늘 김치 담궜어? 누가 배추 준다고 오늘 김치담글꺼라고 했잖아'
'모르겠어. 기억이 안나...'
그랬다. 엄마는 오늘의 일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단 하나도 말이다...
아빠한테 전화했다.
'아빠, 엄마랑 방금 통화했는데, 엄마 왜 그래요? 아무것도 기억이 안난대.'
'아침에 추운데 김치해서 그런 가봐. 너무 걱정하지마. 괜찮아질거야'
'검사 받아봐야지요. (앗, 내가 술을 먹어서 운전을 못하는구나...) 낼 아침에 갈게요'
'그래 검사는 한번 받아야지. 괜찮을거니 오늘은 오지 마.'
아무래도 안심이 되질 않았다. 추운 날 김치 담그며 혈관이 터졌나? 뇌졸중? 그렇다면 골든타임 안에 병원엘 가야하는데.... 아니면 갑자기 온 치매?
고모도 너무 걱정되셨는지 연거푸 전화를 해대며, 아무래도 자기는 너무 걱정이다. 꿈에 돌아가신 할머니도 나타나질 않나.... 이거 가볍게 넘어갈 건 아닌 것 같다. 한시 바삐 움직여야 할 것 같아!
맞다. 당장이다.
직장에 있는 동생에게 전화해서 알리고 올케한테 카드빌려 택시타고 바로 엄마네 갔다. 동생도 두시간도 넘는 거리를 일단 택시부터 잡아타고 가고 있다고 알렸다.
문을 여니, 엄마는 내가 사준 백팩을 열어 안의 내용물들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러면서 왠일이냐신다.
'그냥 왔어. 엄마 뭐해?'
'어, 방금 아빠 저녁 진지 드셨어'
'근데 엄마 가방은 왜 뒤져?'
'아무것도 아니야'
엄마를 방에 끌고 와서 다시 묻는다.
'엄마 오늘 병원 갔다왔어?'
'병원? 무슨 병원? 몰라. 기억 안나. 아빠랑 아까 어디 갔다왔어'
'오늘 고모랑 전화한 건 기억나?'
'고모랑 내가 전화를 했어? 넌 여기 갑자기 왜 왔어?'
'고모가 전화왔더라고. 엄마가 통화하는데 아무것도 기억 못한다고. 엄마 나랑 아까 통화한 것도 기억 안나겠네. 엄마가 어제 나한테 얘기한 거 물어보니까 아무것도 기억 못하더라고. 엄마 혹시 모르니까 잠깐 병원가서 검사라도 받아보자. XX(동생)도 지금 오고 있으니까 같이 가자'
당황해 하는 엄마.....
이윽고 동생이 왔고, 아빠한테 검사만 받고 올테니 집에 계시라고 한다.
엄마 소지품은 내가 들었다.
이제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엄마가 아까 내용물을 다 끄집어낸 백팩을 맨다.
'그거 왜 가져가?'
아무 말없이 짊어진다. 그냥 두었다.
신발을 신다가 엄마가 다시 멈칫하고 가방을 내려놓는다.
'아빠 저녁 진지 드리고 가자'
'아까 드셨어. 얼른 가자'
카카오택시를 부르고 기다리고 있는데, 대뜸 엄마가 그런다.
'내가 이 가방을 왜 메고 왔지? 아무것도 없는 빈 가방인데.'
아... 가슴이 미어진다.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엄마, 급히 나오느라 정신 없이 나와서 그래. 그냥 가져가지 뭐'
택시가 왔다. 동생은 앞자리에, 엄마와 나는 뒷자리에 앉았다.
엄마가 핸드폰을 열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려고 한다.
'엄마 전화하게? 누구한테?'
'아빠 저녁을 안드리고 와서..'
...
이걸 가는 내내 한 30초 마다 반복한다.
결국 핸드폰을 뺏었다.
그러고 나니 '근데 내가 이 가방을 왜 가져왔지?'
'정신없어서 그래.'
이젠 이 얘기를 계속 묻는다. 이 백팩 왜 가져왔느냐고.
그렇게 응급실로 향했다.
코로나시국이라 응급실에도 쉽게 들어갈 수가 없다. 보호자1인만 동행가능하고, 코로나검사도 받아야 한다.
동생이 엄마를 모시고 응급실에 들어갔다.
난 정처없이 걸으며 참았던 울음을 엉엉 쏟아부었다.
이게 치매인가. 엄마 불쌍해서 어떡해.....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한참 울고나서 올케와 고모한테 전화해서 응급실 들어갔다고 알렸다.
진정이 되질 않는다. 하염없이 눈물이 나고 무서웠다.
자고 있을 남자친구에게 전화했다.
잠에서 깨 귀찮은 듯 전화를 받는다.
'나 병원이야. 엄마가 이상해.....'
남친이 화들짝 놀란다. 남친에게 40분 정도 이런 저런 얘길 한다.
남친도 믿질 못한다. 어떻게 갑자기 그렇게 아무것도 기억을 못할수가 있는지...
남자친구와 얘기하며 조금 마음을 가라앉히고 동생에게 전화걸었다.
응급실에서 다시 나와 코로나 검사 대기중이란다. 밖이니까 와보란다.
급히 달려갔다. 엄마와 아들은 응급실에 들어가기 위한 코로나 검사 대기용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너 여기 왠일이야?'
아.. 말이 안나온다.
엄마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에 동생이 나에게 말한다.
엄마가 계속 같은 걸 질문한다.
화장실도 조금 전에 갔다왔는데도 찾질 못했다. 상태가 안좋은 것 같다.
누나가 혹시 모르니 화장실 좀 들어가봐봐.
화장실에서 나오는 엄마한테 '괜찮아?' 그랬더니 '응 소변봤어'.
곧 응급실에서 엄마를 부른다. 동생과 함께 들어갔다. 난 그 사이 보호자대기실에서 대기한다.
...
적막함이 감돈다. 정신 차려보니 대기실에 틀어져 놓은 TV가 혼자 나불거리고 있다.
정신을 차려보자.
이 믿기지 않는 상황을 어째야 하나, 이성을 찾자.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동생이 대기실로 왔다.
CT는 찍었고, MRI는 한참 대기해야 하니 먼저 집에 가라고.
그러자.
일단 동생 집으로 왔고, 올케와 엄마 상태에 대해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출근해야 하는 올케를 재우고 나도 조카방에 가서 누웠다.
잠이 오질 않는다.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자자. 조금이라도 자고 아침에 엄마네로 가자.
새벽 2시반쯤 잠이 들었나보다. 인기척 소리에 깼는데 동생이 왔다.
어떠냐고 물었더니, CT와 MRI 이상이 없단다.
의사가 엄마한테 이것저것 물었는데, 곧 또 엄마는 의사 만난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의사는 이럴수 있으나, 대부분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진다. 그러나 기억하지 못한 건 영원히 기억이 돌아오진 않는다고 한다. 어머니의 경우 자고 일어나서 괜찮아지면 좋은데, 또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건 문제다.
일단 집에 가서 자고 내일 1시경 XXX선생님과 얘기를 해보아라 하셨단다.
그래서 엄마를 집에 모셔드리고 주무시는 걸 확인하고 왔다. 내일 1시에 병원에서 아버지 어머니와 만나기로 했다.
'고생했다. 어서 자'
...
동생도 잠을 이루지 못하나보다.
카톡으로 '일과성 단기기억상실증'이라는 인터넷 게시글을 보내줬다.
죽 읽어봤다. 어, 엄마랑 증상이 같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갑자기 8시간 정도, 길면 24시간 정도의 기억이 없는 것이다. 50대 이상에서 나타날 수 있는 병이란다.
치매랑은 다르다. 이 증상에서는 기억이 안나는 게 불안하여 계속적으로 질문을 반복한다고 한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후유증은 없고, 재발률이 그리 높지는 않다고 한다.
대부분 24시간 정도 지나면 정상으로 돌아오나, 그 시간을 기억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크게 걱정할 건 아니라한다. 제발 맞아라....
계속 서칭을 했다. 그래, 엄마가 자고 나서 정상으로 돌아오면 문제 없는거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래도 여전히 잠이 오질 않아, 6시에 집으로 왔다.
잠을 못 잤더니 피곤하고 핑핑 돈다. 잠시 눈을 붙였다가 10시쯤 엄마네로 갔다.
엄마는 말짱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고모도 와있다. 아빠한테 어제 상황을 다 들었겠지.
엄마한테 별거 아니라고, 50대 이상에서는 가끔 나타난다더라. 후유증도 없고 치매랑도 전혀 다른 거란다했더니, '그래야할텐데...'하신다.
난 고모를 댁에 모셔다 드리고, 아빠와 엄마는 1시에 맞춰 병원으로 가셨다.
동생에게 전화 오길 기다린다.
3시 넘어 연락이 왔다.
일과성 기억상실이면 MRI에서 하얀 점들이 나타나는데, 엄마는 그게 안보인단다. 그리고 엄마가 어지럽다고 하시는데, 일과성 기억상실과 이석은 전혀 관련성이 없다. 이석이 정확히 맞는거냐며, 만약 이석이 정확하지 않다면 일과성 기억상실이 아니라 혈관의 문제일수도 있으니, 정밀 검사를 받아보자.
저녁때 아빠한테 전화를 했더니 엄마가 받는다.
힘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
'오늘 정밀 MRI 찍고 뇌파검사하고, 12월에 무슨 무슨 검사 잡아놨어'
아, 오늘은 결과를 알 수 없구나.
'엄마, 고생 많았어. 어서 좀 자고. 쉬어'
가볍게 내려놓을 줄 알았던 근심이 가시질 않는다.
어제 오늘 아무 일도 못했는데, 아직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불안함에 오랜 만에 기도를 했다.
지금까지 보호자였던 엄마를 이제 내가 보호해야 한다.
프리랜서를 시작한 게 갑자기 부담스러워진다.
부양의무가 없었기에 택한 길인데.
어쩌면 엄마에게 많은 돈이 필요할지도 모르는데, 돈을 많이 벌어야 할지도 모른다.
또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컴퓨터를 켜고 귤 까면서 어제 오늘 미뤄두었던 프로젝트 보고서 원고 목차를 읽어본다.
일단 엄마 결과 나올 때까지 다른 생각하지 말고 이것부터 해치우자.
엄마의 기억은 계속 될꺼다.
그냥 일과성 기억상실증일 뿐일거다. 재발 없는.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난 엄마를 책.임.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