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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 헤아림 Nov 18. 2023

‘다른 친구들보다 못할 까봐’ 걱정 된다는 아이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 마음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 마음이 밀물처럼 들어오는 날이 있다. 누군가와 나의 다름을 발견하는 순간, 그리고 비교하여 내가 더 못하다는 생각, 일순간 나는 할 수 없다고 느끼도 막막해지는 찰나. 우리는 자기 자신이 할 수 있었던 능력들 마저도 의심하게 되는 웅덩이에 발이 빠진다.


나는 모든 아이들의 상상력에 감탄한다. 재잘재잘 하고 있는 역할놀이를 볼 때면 ‘어쩌면 이렇게 상상력이 좋을 수 있을까.’, ‘도대체 저런 몰입과 다양한 상황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까’ 싶다.


내 딸 역시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여겼던 날이 없다. 들로 산으로 바다로 계곡으로 나가면 손에 잡히는 모든 자연물로 놀이가 가능했던 우리 아이들이기에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던 나는 이 아이들의 상상력만큼은 유지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했다.


그런 아이와 며칠 전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첫째와 둘째랑 함께 놀이방에 앉아 이런저런 만들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옆에 앉아서 일하는 중...)


첫째가 말했다.

"엄마. 나 요즘 고민이 좀 있어."

"응? 말해봐 봐 뭔데~"

"국어시간에 말풍선에 이야기를 채워 넣어야 하는데... 그게 좀 어렵더라?"

"아. 그래? 어떤 게 어렵다고 느껴지는 거야?"

"잘 모르겠어."

"정답을 맞혀야 할 것 같아서 부담이 되는 거야? 아니면... 생각이 안 나서 어려운 거야?"

"그것도 모르겠는데"

"너의 마음이니까 네가 알 수 있지"


그러다 갑자기 아이가 울먹거렸다. 그리곤 내 귓가에 다가와 속삭였다.

"내가 다른 친구들보다 못하게 될까 봐.. 걱정돼.. 엉엉..."


어머나.. 세상에.. 이런 생각을 하다니. 너무 괴로웠겠다. 그리고 얼마나 괴로웠으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까.

어른도 그런 생각에 잠식되면 슬프고 고통스러우니 어린아이가 얼마나 낯선 감정이었을까 싶었다. 앞으로 경험하게 될 수많은 상황들에서 비슷한 고통을 경험할 수 있는데 넘어져 있게만 할 수 없었다.



우리 첫째는 승부욕이 있다. 자기가 잘하고 싶은 분야에 대해선 욕심을 내서 울더라도 하는 아이다. 예컨대 줄넘기를 잘하고 싶으면 매일 연습을 하고 배드민턴을 잘하고 싶으면 그것도 매일 하려고 하고 (몸을 쓰는 일에 더 흥미를 가지고 욕심을 내는 편) 좋아하는 것에는 근성을 보이고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한다.


그렇다 보니 학교에 입학해서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 발동되면 스스로 움직이는 모습들을 보여줬는데.

어쩐지 이 대화를 한 날은 마음이 많이 꺾여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동안 대화를 하고 마지막에 이런 말을 아이에게 들려줬다.


"열매야. 엄마는 너를 믿어. 그리고 너 스스로를 의심하지 마. 너의 상상력을 의심하지 마. 엄마가 옆에서 너를 봤잖아? 너는 상상력이 넘치는 아이야.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지. 그런데 비교하기 시작하고 주변에 있는 친구들을 보는 순간 그 상상력이 방해를 받을 수 있어. 틀려도 괜찮으니까 주변을 살펴보는데 시간을 너무 사용하기보다는 혼자 상상하는 것에 시간을 더 사용해 봐. 그러면 충분히 할 수 있어. 너는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아이야. 맞지? 너도 알고 있잖아 , 그런 너의 능력."


사실 이 순간에 스친 나의 생각과 감정들을 붙잡느라 애썼다.


'내가 아이를 방치해서, 공부를 시키지 않아서, 적절한 공부를 선행시키지 않아서 아이가 고생하고 있는 건가? 내가 공부를 집에서 붙잡아 놓고 풀게 해야 하나? 어떤 문제집을 사야 하나? 내 아이의 상상력이 부족했던 건가? 내가 아이를 잘 못 이해하고 있었던 건가?' 엄마인 나의 책임인 것 같고, 내 탓인 것 같은 생각을 부여잡고 이 상황을 잘 흘려보내야 했다.


돌이켜보며 다행이라 여기는 것은 “너 내일부터 엄마랑 국어를 공부하자"라는 말로 대화를 마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딸과의 대화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면 아마 아이는 자기 자신을 더 의심하는 방향으로, 그리고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힘이 부족하구나'라고 여기며 지내게 됐을지도 모르니까.


아이에게, 그리고 어른이 된 우리에게도 자기 자신의 능력이 의심스러운 날이 오기 마련인 것 같다.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세상에서는 나의 생각과 감정을 현재에 발 붙이고 있게 하기가 참 어렵다. 그럴수록 우리는 자기 자신을 의심하게되고 하찮게 여기며 역기능 적인 생각의 늪으로 빠지기 쉬워진다.


이럴 때 취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선을 밖에서 나에게로 돌려 내가나를 믿어주는 마음이다. 그리고 정서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받는 조건 없는 사랑, 믿음, 격려와 지지이다. 이 두 가지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 된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다양한 외부적인 것들을 나에게 허락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나를 끝끝내 믿어주지 못하고 의심하고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험한 말을 자신에게 서스름 없이 하고 있다면 나를 위해 한다는 그 어떤 행위도 자기 사랑, 자기 돌봄으로 향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까먹는다. 얼마나 신비롭게 이 세상에 왔는지, 얼마나 귀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지, 이 땅에 존재하는 내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하고 아름다운지 잊는다. 자신이 가치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비춰주었던 부모가 없었다면 이제라도 내가 나를 그런 존재로 여겨주기 시작해야한다. 그리고 나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야 한다.



상상력 가득한 아이의 그림


다음 날 딸이 하교하고 나를 만나자마자 말했다.


"엄마! 나 오늘 말풍선에 잘 쓸 수 있었어! 옆에 있는 친구들 조금 참고하긴 했지만 잘 할 수 있었어!"

"그래! 잘했네~ 거봐~ 할 수 있다고 했지? 엄마는 널 믿었다니까~"


그리고 나에게도 이 말을 들려준다.

"유선아, 잘했네~ 거봐~ 할 수 있다고 했지? 나는 널 믿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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