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의 편지를 열어볼 자신이 없는 나
2년전 가을 받았던 편지.
그 편지가 다시 떠오르는 글귀를 발견했다.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닌데도
나에게 하고 있는 말 같아서
지레 움찔거리고 겁을 먹는다.
오늘 발견한 글은 이렇다.
"진정한 자아를 찾고,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아가기를
가면을 쓰고 남탓만 하는 인생은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는 거야.
아무도 너를 감옥에 가두지 않았어.
[중략]
니가 더이상 댈 핑계가 없거나 무기력하거나
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만
그저 다시 착한 사람인냥 거룩한 사람인냥 가면을 쓰고
가련하게 있었을 뿐...
너에게 가면을 벗을 힘이 생기길 바래.
[중략]
가짜 자아, 거짓 자아, 거대 자아를 벗고
진짜 너로 살기를 간절히 기도해"
그 때 받았던 편지를 축약해 놓은 것만 같은
한 상담사의 글에 나 혼자 마음이 움찔댄다.
큰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말이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아프니까 묻어두고 싶었고
모르는 척, 없던 일인 척 하고 싶었지만
나만 아는 내면 세계에서는
여전히 그 편지의 글귀들이 가장 큰 간판처럼
내 앞을 버티고 있다.
물론 A4 3장에 달했던 편지가 제대로
모두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나를 자극했던 단어들이 있었다.
"가면" "가짜 자아" "거짓 자아"
이런 단어들이 나오면
나를 심하게 검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 존재 전부가 가짜이고 거짓인 것 같아 괴로워진다.
내가 모든 관계를 가면쓰고만 대하고
진심도 없고, 진짜 내 모습으로 대한 적도 없는 것 같은 확대 해석을 하게된다.
세상에 내 모습을 드러내기 두려워 가면으로만 세상을 사는 듯 싶어서..
비겁하고 어른답지 못한 어린애가 된 것 같다.
아직도 내가 모르는 가면이 나에게 씌워져 있을 수 있으니...
때로는 그 가면으로 다른 사람을 내 마음대로 조종하고 있을까봐 두렵다.
내가 나를 두려워하고 있다니...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편지를 받고서는 수치스러웠다.
그리고 내가 발기발기 찢긴 느낌이었다.
나는 그렇게 단단한 사람은 아닌데, 감당하기 버거웠다.
그래서 묻어두었다. 편지를 한 번 그 이상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 글이 무서웠다.
내가 정말 그 글에 쓰여진 사람 같을까봐 무서웠다.
그리고 이 두렵고 무서운 마음이
그 편지 내용이 사실이라고 말하는 증거가 되는 감정일까봐
또 두렵고 무섭다.
오늘 발견한 글 귀를 통해
내가 나의 가면을 두려워하고 무서워 하고 있구나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가면을 벗어버린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구나를 알았다.
어른이 되는 것은
가면을 벗는 일인 걸까.
그렇다면 어른이 되면
나는 그 편지를 다시 열어볼 용기가 생기게 될까.
아직은 가면을 벗을 용기도
어른이 될 용기도 없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