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플래툰(Platoon)

by 백권필




영화를 만나다


내가 영화를 알게 된 계기는 중학교 때다. 시험이 끝나면 학교에서는 극장 하나를 빌려 학생들에게 절반 가격에 보게 해 주었다. 내가 그때 처음 본 영화는 <예스마담 3>였다. 이 영화의 주인공 ‘양자경’은 내가 본 배우 중 최고의 미인이었다. 영화도 재미있었지만 ‘양자경’이라는 배우에 흥미를 느껴 <예스마담 1>, <예스마담 2>를 찾아보았다. 그때는 친구 집에서 보거나 만화가게에서 500원을 내고 비디오를 보았다. 그 당시 유명한 영화는 <천녀유혼>, <영웅본색>, <람보> 시리즈, <탑건> 등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영화에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1987년 여름 TV에서 한 영화 광고를 보게 되었다. 그 영화는 <플래툰(Platoon)>이었다. 전쟁 영화였고, 신문이나 뉴스에서 평이 좋았다. 친구 누나는 대학생이었는데 영화를 보고 이 영화에 대한 해설과 시나리오와 사진이 담긴 책자를 사 왔다. 나는 그 책을 여러 번 보면서 <플래툰>을 꼭 봐야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 그 영화를 개봉관에서 보지 못했다. 아마 돈이 없었거나 관람등급에 걸렸던 것 같다. 그때 내 나이 열다섯 살이었다. 3개월이 지나 2류 극장으로 넘어오자 나는 모은 용돈을 털어 용감하게 극장에 혼자 갔다. 조금은 무섭고 두려웠지만 이미 관람등급을 무시한 경험이 있었기에 뻔뻔하기로 했다. 내가 들어갔을 때는 이미 영화는 절반이 진행된 상황이었다. 빈자리는 많았기에 문에서 가까운 자리에 앉아 영화를 관람하기 시작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영화를 뚫어져라 쳐다본 나는 가슴에 뭔지 모를 이상한 전율을 느꼈다. 영화가 끝나자 난 좋은 자리로 옮겨 처음부터 보기로 했다. 그때 2류 극장은 한번 표를 사면 나올 때까지 볼 수 있었다. 처음부터 보기 시작한 영화는 내가 이미 봤던 부분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고 영화에 대한 나의 느낌은 더욱 강하게 다가왔다. 영화가 끝나자 나는 저녁노을을 보며 집으로 돌아왔다.



영화 - 플래툰(Platoon)


영화 <플래툰>은 중사 엘리어스와 중사 반즈 그리고 신병 크리스 테일러 이들 세 인물을 중심으로 미군의 한 소대가 월남에 참전한 모습을 보여 주며 월남전에 담긴 의미를 조명하고 있다. 중사 엘리어스는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인간미를 잃지 않으려고 하나 마약을 하는 인물로 월남전에 회의를 가지고 있다. 중사 반즈는 전쟁에 잔뼈가 굵은 노련한 군인으로 전쟁에 집착하여 생존과 승리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정한 인물이지만 가장 현실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신병 테일러는 참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자원입대한 상류층 신분으로 전쟁을 겪으며 전쟁의 참상을 알아가는 인물이다.

미국의 상류층에 속한 크리스 테일러는 자신의 지위와 위치에 회의를 느껴 대학을 중퇴하고 월남에 자원입대한다. 월남에 도착한 순간부터 이곳이 지옥이라는 생각을 하며 군대 생활에 힘들고 괴로워 하지만 오히려 마음만은 홀가분하다고 생각한다. 월남에 참전해서 피를 흘리는 군인들 대부분은 사회의 하층 계층이라는 것이 잘못됐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들은 밑바닥 인생을 살지만 사회와 자유를 위해 싸우는 진정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자신의 새로운 삶을 설계하고자 한다.

첫 매복 때 크리스는 모기 때문에 잠에서 깨어나게 되고 베트콩이 온 것을 확인하지만 얼어버린다. 갑자기 총성이 울리고 교전이 시작된다. 교전 중 크리스는 가벼운 총상을 당하지만 함께 온 동료 가드너는 전사한다. 그때 전투를 지휘하는 반즈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후방 병원에서 돌아온 크리스는 엘리어스에게 마리화나를 배우며 월남전의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1968년 캄보디아 국경 근방에서 수색하던 크리스 일행은 베트콩의 벙커를 발견한다. 벙커 주변에 설치된 부비트랩에 한 명이 전사하고 대원 한 명이 사라진다. 아래 마을에 베트콩이 발견되었다는 무전을 들은 크리스 일행은 분노하고 극도로 흥분한다. 소대장은 엘리어스와 몇 명을 남기고 전 부대원을 이끌고 마을로 쳐들어간다. 마을로 간 크리스 일행은 마을을 수색하며 무고한 마을 주민을 살상한다. 반즈는 베트콩을 찾으려 혈안이 되어 촌장의 부인을 죽이고 촌장의 딸을 인질로 삼는다. 모두가 아미노 상태에 빠져 있을 때 엘리어스가 도착하고 반즈의 행태를 저지하며 싸움이 일어난다. 반즈와 엘리어스가 싸우자 부대원은 반즈파와 엘리어스파로 갈라져 대립하게 된다. 크리스 역시 처음엔 죽은 동료 때문에 분노로 흥분했지만 차츰 이성을 되찾으며 반즈에 대한 반감이 생기고 오히려 엘리어스에게 대한 친밀감이 생긴다.

진지로 복귀하자, 엘리어스는 반즈를 중대장에게 고발한다. 궁지에 몰린 반즈는 엘리어스를 죽일 계획을 세운다. 크리스는 엘리어스와 단 둘이 있으면서 누가 옳은지 묻는다. 엘리어스는 자신이 옳은지도 확신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 전쟁에서 질 것이라고 한다. 그때 하늘에서 별이 떨어진다.

부대 이동 중 크리스 소대는 매복하던 베트콩에게 일격을 당한다. 설상가상으로 3소대와 마주치게 되어 아군끼리 총격을 하게 될 상황이다. 소대장이 잘못 알려준 좌표대로 포사격이 떨어지자, 아군이 피해를 입게 된다. 엘리어스는 대원 3명을 이끌고 매복하던 베트콩을 처리하러 간다. 결국 소대에게 퇴각 명령이 떨어진다.. 크리스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엘리어스를 기다리지만 찾으러 갔다 돌아온 반즈는 엘리어스가 죽었다고 한다. 헬기에서 부대원은 베트콩에게 쫓기는 엘리어스를 보았지만 그를 구하지 못하고 돌아간다. 진지에서 엘리어스를 추종하는 부대원은 반즈가 죽였다고 확신하지만 그에게 저항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화가 난 크리스는 반즈에게 대항하지만 오히려 위협을 당한다.

소대는 엘리어스가 죽은 곳으로 다시 간다. 그곳에 있는 베트콩 연대 병력을 제거하기 위해 크리스 부대는 미끼가 된다. 저녁이 다가오자 베트콩들이 쳐들어오고 부대는 견디지 못하고 퇴각할 지경에 이른다. 이 와중에 크리스는 반즈와 만나게 되고 반즈는 크리스를 죽이려고 한다. 때마침 비행기의 폭격으로 전장은 초토화된다. 살아난 크리스는 반즈를 찾아 죽인다. 수색하러 온 부대에게 발견된 크리스는 병원으로 후송하는 헬기를 타며 독백을 한다. ‘이 전쟁은 적보다는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반즈와 엘리어스가 자신에게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며 이 전쟁에서 배운 점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 생명의 소중함과 삶의 참의미를 말이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와 전사자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글자가 나오며 영화는 끝난다.



영화가 나에게 말하다


이 영화는 편지글 형태라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주인공 크리스 테일러가 할머니에게 월남에 와서 보고 느낀 전쟁의 실상과 자신의 심정을 간간이 나오는 내레이션으로 통해 전달하고 있다. 크리스가 할머니에게 보내는 내용은 당시 월남전의 실상을 말하고 있다. 크리스가 처음 월남에 오는 장면에서 죽은 시체들이 먼저 보인다. 이윽고 처음 건네는 말이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이다. 이처럼 당시 월남전은 승리보다는 패배의 기운이 완연한 상태였다. 오랜 전쟁으로 지쳐있었고 오직 시간만 보내고 돈을 벌어 가려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순수한 애국심이기보다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참전한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이곳은 지옥인 것이다. 아마 월남전은 미국이 치른 여타 전쟁과 달리 공산화 저지라는 정치적 판단에 따라 치러진 전쟁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크리스 같지만 내가 보기엔 엘리어스와 반즈이다. 엘리어스는 월남전에 초기부터 참전한 군인으로 처음엔 반즈 같은 인물이었던 듯싶다. 그러나 전쟁을 치르며 죽어간 많은 사람들 보며 이 전쟁이 가진 의미에 회의(懷疑)를 느낀 것 같다. 그래서 마리화나를 피우며 그 고통과 절망을 잊으려 했던 것 같다. 아마 월남전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엘리어스와 같지 않았을까. 반면 반즈는 전쟁 상황 속에서 가장 현실적인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는 인물이다. 여러 번의 죽을 위기를 넘기고 전장에서는 강한 카리스마를 발휘한다. 소대장마저 그에게 지시를 받는다. 그는 적을 이기기 위해서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법과 절차는 중요하지 않다. 이기면 그만이다. 월남전에 참여한 다른 부류는 반즈와 같지 않았을까. 결국 크리스가 말한 엘리어스와 반즈는 우리 자신의 내부에 있는 다른 모습이며 월남전에 참전한 군인들의 모습이다.

흔히 말하는 전쟁영화는 영웅적인 대원이 아군의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고 적군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플래툰>은 이런 영화가 아니었다. 늘 불평하는 흑인 병사, 자신의 종교에 심취한 병사,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부하는 병사, 경험 미숙으로 전사한 병사, 증오로 가득 찬 병사, 무능한 지휘관, 총에 맞아 고통스러워하는 병사, 같은 편이지만 대립하고 갈등하는 소대원 등은 내가 이전 전쟁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이 영화가 당시 월남전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전쟁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그것은 비극이라는 점이다. 전쟁 그 자체가 가지는 의미는 비극이다. 무고한 생명이 살상되고 가족과 헤어지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통받는 모습은 분명 비극이다. 이 영화의 OST(Original Sound Track) ‘현을 위한 아다지오’는 잔잔하지만 애잔한 느낌을 주는 멜로디로 영화 속의 장면과 어울려 전쟁의 비극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전쟁의 비극성을 다룬 영화가 여럿 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이 영화가 처음이었다.

영화 <플래툰>은 나에게 있어 영화의 참맛을 알게 한 작품이고 볼 때마다 새로운 감동과 의미를 주는 영화이다. 그리고 내 소중한 유년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영화로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이 글은 오래전에 쓴 글로 응모했는데 실렸던 글이다.

관련 사진은 다음 사이트에서 캡처한 사진

https://youtu.be/4ipJFgGXb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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