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ka aka 도깽이 엄마 Jun 24. 2021

나는 DINK족이었다

Double Income No Kids

“임신 맞는데요?”

“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임신이라고? 아니 집에서 임신테스트기(임테기)를 두 번이나 했을 때 분명 한 줄 이라 안도했는데 임신이라고? 이게 말이나 되는 것인가? 임테기가 불량이었던 것인가? 아니다 이제 와서 임테기가 분량이었는지 아닌지 따져봤자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난 40살에 결혼을 했다. 내가 늦게 결혼을 한 이유에는 딱히 이 사람이다 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던 것도 있었지만 나는 애초에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었기에 굳이 결혼이 급하지도 않았었다. 그냥 내 일을 즐기며 소소히 벌어 들이는 월급으로 감각 있게 집을 꾸미고 모임에 나가 새로운 사람들과 사교를 즐기고 죽마고우랑 소문난 맛집도 다니고 주말 아침이면 조용한 카페에서 카페라떼 한잔과 크로아상을 즐기며 네일아트가 끝난 후 소소한 쇼핑을 즐기거나 극장에서 영화 한편을 보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구애 받지 않는 행복이었다. 중간 중간 연애를 하다 실증나거나 혼자이고 싶으면 헤어지기도 하고 그러다 또 누군가가 그리우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러다 또 아니면 헤어지고 또 새사람을 만나고의 연애 패턴도 반복됐었다. 또래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 키우는 모습도 충분히 행복하고 좋아 보였지만 나에게는 맞지 않는 옷 같아 보였다.


그러던 나에게 결혼을 하고 싶은 남자가 생겼다. 38살 겨울에 만나 40살 봄에 결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하나 걸리는 것이 나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는 DINK족이었고 당시 남자친구에게 그것을 확실히 해 놓고 결혼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DINK란 Double Income No Kids의 약자로 한글로 딩크라고 읽는다. 90년대까지만 해도 남녀가 나이가 차면 무조건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하면 또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 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결혼도 선택 그리고 출산도 각자의 초이스가 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는 저출산 시대를 맞이 하였으며 뉴스 및 각종 매스컴에서는 결혼을 장려하고 출산율을 높여 보고자 연예인들을 앞세워 육아 예능 프로그램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또한 각 지자체들에서도 출산 장려를 위해 여러 장려금 및 혜택들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노력들을 근거하여 출산 관련 다큐멘터리 들에서는 요즘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주된 이유를 돈과 연관 짓는 듯 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맞이한 저출산 시대는 일부 금전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다른 이유가 더 크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실제 나랑 내 주변의 친구들만 봐도 그렇다. 실제 내 주변에는 맞벌이로 수입도 나쁘지 않은 편인데 딩크로 살고 싶어하는 커플들이 있다. 수입과 무관하게 어딘가에 억매이거나 혹은 주어진 자유로움을 박탈당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나만해도 그랬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밥하기 귀찮으면 외식하고 그마저도 귀찮으면 시켜 먹고 청소나 빨래가 귀찮으면 몇 일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하루 종일 널 부러져서 미드를 보고 싶으면 미드를 보며 씻기도 귀찮은 주말에는 씻지도 않고 그렇게 종일 먹고 자고 티브이 보고를 반복하는 그런 삶이 좋았다. 단순 좋았던 거 이전에 내 삶이기에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을 때 무언가를 하고 내가 하기 싫을 땐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건 남자친구가 남편이 되고 나서도 가능한 일이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배고픈 자가 밥 차려 먹고 입을 옷이 없는 자가 빨래를 하며 먼지가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 청소기를 밀면 됐었다. 누가 보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나 하고 오해를 할 수도 있다. 나는 꽤나 성실한 아내였다. 아침잠이 많아 아침을 꼬박 차려주지는 않았지만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은 집밥을 먹게 하였고 청소와 빨래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단지 가끔 한번씩 무언가를 하기 싫을 때 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 이 모든 것은 지금처럼 "됐었다"로 쓰여지게 되고 엄마놀이 25일차인 나는 아직도 이 모든 것이 실감이 나질 않는다.


결혼 하기 전 남편에게 이야기 했었다. 나는 딩크로 살고 싶다고. 남편도 내 의견에 크게 반발하지는 않았었다. 남편은 아마도 나와 다른 생각을 했던 것 같지만 결혼 전 나에게 전혀 내색하지 않았었다. 아마도 나에게 아이를 낳자고 강요할 생각은 없었지만 계기가 생기면 설득할 생각은 있었던 듯 하다. 모든 남자들은 종족번식의 본능이 있다는 말에 내 남편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42세의 늦갂이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