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노산……이건 친정아빠 탓을 할 수도 혹은 내가 섭취했던 음식들 탓을 할 수도 없는 아주 빼도 박도 못하는 나이의 문제였다. 아무리 동안이라도,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해 몸매가 탄탄하더라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한다 하더라도 산부인과 적 나이는 정직하게 30대 중반이 넘어서면 노산 이다. 엄연히 따지면 만 30세도 노산 일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만 30세 이후에 결혼하는 여자들이 많아 우리가 체감하는 노산의 나이가 높아진듯하다. 친정엄마는 당시 나를 30살이 낳아 노산 이라고 엄청 걱정들을 했다고 한다. 아마 그 당시 지금 내 나이 41살의 출산이면 실수로 생긴 늦둥이였을거다.
물론 의사 선생님이 그런 의도로 말씀하신 건 아니겠지만 마치 노산이 문제인 것처럼…… 노산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모든 원인이 거기에 있는 것처럼 그렇게 느껴졌다. 노산이라 이런 저런 검사도 더 많이 해야 하고 노산이라 임신성 당뇨병에도 걸릴 확률이 높고…… 이 모든 것은 노산이라……
임신성 당뇨병 검사는 임신 24~28주 사이에 이루어진다. 공복 상태로 병원에 가 포도당 50g을 마시고 1시간 후 채혈해서 일정 수치 보다 높으면 다시 날을 잡고 재검사를 한다. 병원마다 기준 수치가 아주 조금씩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를 말 할 수는 없지만 턱걸이로 통과한 어떤 산모들은 한번 확정을 받으면 관리가 꽤 성가시고 귀찮지만 뱃속에 아가를 위해서 재검사를 의뢰 하거나 자체 관리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검사 날 아침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병원에 도착했다. 그래도 나름 걱정 되어 전 주에는 달달한 음료수도 자제 했었다. 병원에서 주는 포도당 액 50g은 그야 말로 설탕 시럽을 마시는 것 같았는데 진짜 역했던 그 달달한 맛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포도당을 마시고 1시간 가량 기다렸다 채혈을 했다. 채혈 후 1주일을 참아온 갈증 해소를 위해 대기시켜 놓았던 아이스티 한 병을 원샷 해 버렸다. 임신 기간 동안 나의 갈증은 그 어떤 물이나, 쥬스나 차 종류로도 해결이 안되었었다. 오로지 달달한 아이스티 만이 답이었었다. 그런데 그 아이스티를 1주일이나 참았으니 내 몸 속은 가뭄으로 쩍쩍 갈라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며칠 후 병원에서 문자가 왔다. 이상 소견이 있으므로 재검사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순간 앞이 캄캄했다. 친정 아버지가 당뇨인지라 어떤 식단으로 먹고 어떻게 관리 해야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기에 막막했다. 일단은 임신성 당뇨병 산모들의 온라인 카페에 가입해 재검사에 통과 하려면 무얼 해야 하는지부터 검색했다. 어떤 산모는 1주일 정도 검사하고 재검사에 통과했다 하고 어떤 사람은 그래 봤자 소용 없다 하고……
임산부의 3~14% 정도가 겪는 임신성 당뇨병은 포도당이 정상 범위보다 높은 상태로 임신 중 발견되거나 시작되는 경우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의 효과가 감소하는 인슐린 저항성이 증가되어 발생했다가 출산 후에는 사라지는 당뇨병의 형태라 한다. 임신성 당뇨병에 걸리면 아가가 거대아로 태어나거나 신생아 저혈당, 황달, 호흡 곤란증 등이 올 수 있으며 산모는 양수과다증이나 임신중독증을 겪거나 출산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제2형 당뇨병으로 이환 될 수 있다.
그래도 노력은 해보고자 재검사 전까지 1주일간 밀가루 섭취도 줄이고 나름 건강식으로 먹었다. 그리고 재검사 날…… 그날은 그 역했던 포도당 액을 무려 100g 이나 마셔야 했다. 공복에 1차 채혈을 하고 포도당 액 100g 마신 후 1시간 후, 2시간 후 그리고 마지막으로 3시간 후 이렇게 4번 채혈을 했다. 안 그래도 혈관들이 많이 움직여 채혈도 까다로운 나인데 4번은 정말 곤욕스러웠다. 왼쪽 팔 한번 오른쪽 팔 한번 그리고 왼쪽 손등 오른쪽 손등 한번씩을 채혈하고 나니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듯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여름 호캉스를 가는 길에 들린 병원에서 의사는 믿고 싶지 않았던 임신성 당뇨병 확진 판정을 내렸다. 4번의 채혈 수치 중 2개만 기준치 안에 들어와도 통과라는데 나는 4개의 수치가 다 기준 치 밖이었다. 진료 후 옆방에서 식단 및 관리 상담을 받는데 너무나도 침울했다. 안 그래도 몸이 힘든데 어떻게 저렇게 골고루 채소 단백질 탄소화물의 (채단단) 비율을 맞추어 가며 매 끼니 먹을 수 있을까? 거기에다 하루 4번, 공복, 아침, 점심, 저녁 식사 후 1시간 혹은 2시간후의 채혈을 하여 적고 먹은 식단 또한 기록하여 기준 수치 안에 들어 왔는지 확인해야 했다. 어떤 음식들을 먹었을 때 정산 수치에 들어오는지 그리고 채단단의 비율을 잘 지켜 가며 먹었는지를 확인하고자 하는 기록들이 너무나도 버거운 숙제였다.
1, 2주차에는 나름 의욕이 앞서 기록도 꼼꼼히 하고 최대한 채단단의 비율로 맞추어 먹으려 했고 운동도 꽤나 열심히 했다, 하지만 그것이 버거웠는지 3주차때부터 입맛이 뚝 떨어져 버렸다. 그러면서 후기 입덧도 같이 와버렸다. 속은 울렁거리지 그렇다고 땅기는 음식을 먹을 수도 없고 최대한 당뇨 환자 식단 안에서 내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메뉴들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3끼를 먹는 것은 사치 2끼를 먹으면 많이 먹는 것이었다.
주기적으로 방문한 내과 선생님은 공복혈당이 내려가지 않는다며 인슐린을 처방하셨고 도저히 내가 내 몸에 주사 바늘을 찌를 수는 없었기에 임산부도 복용 가능한 당뇨약을 처방 받았다. 이 시기에 찾아온 나의 후기 입덧 때문일까 아기의 몸무게는 정상적으로 증가하고 있었으나 나의 몸무게는 빠지거나 운이 좋으면 유지가 되고 있었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께서 나에게 살을 쪄오라는 특명을 내리셨다. 2주 뒤에 볼 때는 적어도 1.5kg 이상 쪄 오란다.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다이어터 같은 식단으로 많이 먹고 운동해서 혈당은 유지하되 살을 쪄오라니…… 이건 마치 공부 안하고 시험 봐서 100점을 받으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복용 약으로 공복혈당이 안정성을 찾아가는 듯 하자 살을 찌우기 위해 나의 식단에도 일탈이 시작되었다. 파스타도 한번 먹고 부대찌개도 한번 먹고 간식으로 달달한 빵도 먹었다. 하지만 그래도 더디게 찌는 살 때문에 외래 날 몸무게를 잴 때면 두꺼운 외투도 꼭 입고 올라가 어떻게 해서던 몇 백 그램이라도 더 나가게 만들었다. 이런 일상들이 반복되며 한두 번은 괜찮겠지 하는 나의 일탈이 세네 번이 되고 채혈도 점점 소홀하게 하던 임신 36주차 새벽에 이슬이 비치고 나의 진통은 시작되었다.
다행이 아기는 3주 빠르지만 건강하게 태어났고 황달, 저혈당, 호흡 곤란증도 없었으며 거짓말같이 나의 당 수치 또한 정상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