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쓰는 길

by 빛나는

“육아하다 답답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크게 마음먹고 등록한 수필 반의 개강 날, 오랜만에 자기소개를 했다. 이름 석 자 말고는 내세울 직함이 없어 횡설수설하다가 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의 외출이라 예쁘게 단장하고 싶었지만, 칭얼대는 아기와 종일 씨름하느라 세수만 하고 급히 나왔다.


마흔 살의 새내기 작가 지망생이라는 말이 어쩐지 우스웠다. 제대로 써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은 늘 있었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첫 수업에 임했다. 그런데, 내 뒤를 이어 인사를 한 사람은 교과서 편집자 출신이었다. 다음은 출간 경험이 있는 사람, 방송 작가로 일하고 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점점 작아졌다.


들뜬 얼굴로 나갔다가 침울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강의가 별로였다고, 안 하는 게 낫겠다며 감정 섞인 말을 쏟아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은 딱 한 달만 다녀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한 달만, 이번 학기까지만 버텨보자 다짐했는데 어느새 일 년이 되었다. 그사이에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모두와 무척 가까워졌다. 그들은 나에게 아직 한창때라며 응원의 말을 건네주었다. 진솔한 문장을 통해 서로의 삶을 조금씩 나눠보니, 초라하게 느껴졌던 내 모습이 그리 별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다 각자의 어려운 사정 속에서 꿈을 향해 걷고 있었다.


퇴근 후 저녁도 먹지 못하고 강의실로 뛰어오는 사람, 아이를 재워놓고 밤늦게 펜을 드는 사람,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사람. 형편은 다르지만 전부 글에 대한 애정을 붙들고 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없고, 나이가 많다는 핑계만 둘러대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괜히 의기소침했던 지난날이 스치며, 이분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싹텄다.


처음엔 화려한 경력의 사람들을 따라갈 수 있을지 두려웠다. 글은 원래 혼자 쓰는 거라며 어설프게 자기 위로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같은 길을 걷는 문우(文友)라고.




※ 동서식품「삶의 향기」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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