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임신하고 두세 달 정도 지났을 때, 담당 선생님이 자리를 비워 다른 분에게 진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유난히 친절했던 의사 선생님은 갑작스레 성별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파란색 옷을 준비하시면 될 것 같다면서 초음파 화면에 보이는 무언가를 가리켰다. 얼떨결에 아들임을 알게 된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요즘엔 엄마들이 어찌나 딸을 좋아하는지, 태어날 아이가 남자면 위로해 주고, 여자면 축하를 해주는 게 어느 정도 정해진 일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아들, 딸 구별하지 말자고 다짐했었는데, 못내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늘 먹고 싶었던 유명한 냉면집에 갔는데도 젓가락은 허공만 헤맸다. 표정이 어두운 나를 달래려 남편은 아들의 장점을 끊임없이 나열했다. 애쓰는 남편의 표정을 보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딸을 바랐을까.
이후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동네 할머님들에게 꼭 듣는 소리가 있었다. 딸이 없어서 어쩌냐고. 뒤를 이어 나오는 말은 딸이 엄마를 잘 챙겨준다는 거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들만 셋을 낳은 할머님 이야기였다. 이웃에는 딸만 셋인 엄마가 있었는데, 예전에는 자기를 부러워했었지만 최근에는 입장이 바뀌었다고 했다. 자기 아들들은 지 먹고 사느라 바쁜데, 그 집 딸들은 엄마 옷도 사주고 집 청소도 해주고 살뜰하게 모신다고 하면서. 나는 애써 웃으면서 자리를 피했다. 나도 누군가의 딸인데, 마치 효도를 강요하는 것처럼 삐딱하게 들리기도 했다.
얼마 전, 딸을 선호하는 원인이 무엇인지에 관해 쓴 기사를 봤다. 간단하게 줄이면 딸이 부모를 잘 봉양하기 때문이라는 내용이었다. 구구절절 관련된 사례가 나와 있는 글을 읽다 보니 한 사람이 그려졌다. 바로 우리 엄마였다. 엄마는 친가에서는 맏며느리였고, 외가에서는 맏딸이었다. 양쪽 집안에 대소사가 생기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미 소매를 걷어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왜 항상 그런 역할은 엄마 몫이어야만 하는지.
돌이켜보면 내가 딸을 바랐던 것도 결국엔 나 자신을 위해서였다. 나랑 같이 쇼핑도 가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다 키워놓으면 나를 싹싹하게 돌봐주겠지 싶은 진심이 바탕에 깔려있었다. 곁에 오래 남아 줄 거라는 생각, 나를 더 자주 떠올려 줄 거라는 기대가 한쪽에 자리 잡았다. 정작 나는 그런 딸도 아니면서.
엄마는 나에게 그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았다.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양손 가득 반찬을 들고 왔고, 본인이 아프면 나에게 숨기느라 바빴다. 그러면서 엄마를 신경 쓰지 말고 네 마음껏 뭐든 하면서 살라고 말했다. 가슴에 남았던 그 한마디 탓인가. 이제는 누군가 딸이 좋다는 말을 하면, 가끔은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