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일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많은 도구를 이용했다. 처음에 내가 붙잡은 건, 맞고 틀림이 분명한 수학이었다. 딱딱 떨어지는 세계에서는 어중간할 필요가 없었고, 늘 해답이 존재했다. 수학이라는 과목에 매력을 느끼며 나 역시 그렇게 정의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일었다. 왠지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정확한 단어가 어딘가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는 혈액형으로 성향을 파악하는 일이 유행이었다. 누구든 만나기만 하면 서로 혈액형을 공유하며 상대에 대한 호기심을 싹틔웠다. 내가 O형이라고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성격이 호탕할 거라고, 또는 진취적일 거라는 말을 꺼냈다. 어떻게 사람을 넷으로 나눌 수 있을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O형과 관련된 일화를 자꾸만 듣다 보니 내가 그런 사람인 것 같기도 했다. O형이라는 단어 안에 속한 내 모습에 안정감이 느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면서 재미 삼아 상담 공부를 병행했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강연에서 '에니어그램'이라는 도구에 매료되었다. 4가지로 나뉘는 혈액형보다는 조금 더 심도 있었다. 각각의 성향에 따라 9가지 동물로 비유되었다. 참여한 사람끼리 스스로가 어떤 동물인지 나누고, 장단점을 분석해 보는 시간이 너무 흥미로웠다. 나는 리더십이 있는 호랑이 성향에서 높은 점수가 나왔다. 친가와 외가에서 첫째로 자라서 자연스레 해온 역할들이 몇 줄의 문장으로 나타난다는 것에 감탄했다. 그동안 정리하고 싶었던 내 성격이 일목요연하게 눈앞에 나타났다. 더욱 진지하게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자격증 과정을 수료했고, 이는 나의 두 번째 직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내담자를 만나 상담하는 일이 익숙해질 무렵 예상치 못한 문제가 솟아올랐다. 명확하게 나누길 좋아하는 내 성격 탓이었을까. 누군가의 에니어 그램 검사지를 받자마자 그 사람을 판단해 버리기 시작했다. '이분은 호랑이라서 강압적이겠군, 저분은 코끼리라서 게으를 거야.' 결과를 풀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아니라 상대를 평가했다. 내담자가 무슨 말을 하던 내가 생각하는 틀 안에서만 대화를 이끌어갔다. 판에 박힌 공식처럼 '호랑이니까 강아지처럼 하세요, 코끼리니까 독수리처럼 하세요.'라는 식으로 간단하게 답을 제시했다.
이런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건, 내가 그 잣대 위에 서 있게 되고 나서야 알았다. 나에게 호랑이 성향이니까 팀장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하면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사실 나는 앞에 나서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이미 나는 호랑이라는 성향에 갇혀있었고, 그대로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어찌어찌 사람들을 이끌어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면, 돌아오는 말은 '다음에 또 해줘, 호랑이니까 이런 건 쉽잖아.' 같은 말뿐이었다. 좋으나 싫으나 대장 역할을 연이어 담당했고, 직급은 빨리 올라갔지만 마음은 푹푹 꺼져갔다. 그즈음, 코로나19의 여파로 일하던 상담센터가 문을 닫았다. 아쉬운 마음도 컸지만, 잘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마터면 분류의 덫에 빠질 뻔했으니.
얼마 전부터는 사람을 16개의 유형으로 나누는 MBTI라는 성격검사가 인기를 끌었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알파벳 조합을 나열하지 않으면 대화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환갑을 넘긴 엄마까지 그 검사를 어떻게 하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런데 나는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지루한 문답에 체크하는 그 몇 분도 투자하고 싶지 않았다. 지인들이 너는 무슨 유형이냐고 물어보면 나는 '외향적인 E일 때도 있고, 내향적인 I일 때도 있어.', '어떨 때는 계획형인 J인데, 어떤 날은 즉흥형인 P야.'라고 얼버무렸다.
이런저런 경험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답을 찾았다. 생각해 보면 내가 좋아하는 건 때마다 달랐고,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있어도 직관이 앞섰다. 수학을 좋아한 이유도 어쩌면 내 성격과 정반대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었을지. 어느 하나로 묶이지 않는 상태가 나에게는 가장 자연스럽다. 나는 매번 다르다는 것, 그게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