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의 색깔

by 빛나는

나를 떠올리면 노란빛이 그려진다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내가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로 무장한 옛 시절의 캔디라던가, 최근 개봉한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기쁨이 같다는 말을 했다. 지인들은 내가 긍정적이어서 친해지고 싶다고 했고, 주변 어른들도 집안에서 사랑을 듬뿍 받은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처음엔 그런 말들이 쑥스러웠다. 칭찬받으려고 의도하지 않았는데, 좋은 말이 들려오니 몸 둘 바를 몰랐다. 내가 남들보다 밝은 성격이 맞는지도 아리송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별로 관심이 없던 노란색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빛나는 아이’라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태양처럼 모두를 따스하게 비춰야겠다는 사명감마저 생겨났다.


자연스럽게 주위에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들었다. 나를 ‘절친’이라고 불러주는 친구들이 두세 명에서 열 명도 넘게 늘어났다. 그들은 나에게 꺼내기 힘든 개인사를 털어놓았고, 나를 자신의 인생에서 특별한 존재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내가 별 뜻 없이 내뱉는 말에 놀라는 몇몇을 보며 왠지 모르게 우월감이 들었다. 상담 공부를 하게 된 이후로는 대단한 전문가 행세를 하며 이래라저래라 하기도 했다. 우울함을 호소하는 지인들에게는 기분 전환용 활동을 권하고, 무기력해서 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같이 해보자고 손을 내밀었다. 정신과 치료나 약물 복용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으면, 알약에 의지하면 안 된다고 선을 긋고 내키는 대로 처방을 내렸다. 격한 운동을 하면 나아질 거야, 깨끗한 공기를 마시면 괜찮을 거야. 상대가 내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혼자만의 구원자 놀이에 빠져 있었다.


'혹시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던 건, 우연히 참석한 글쓰기 동아리에서였다. 아는 분이 주관하는 첫 모임이었고, 구성원은 스무 명 남짓이었다. 전부 초면이라 어색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진행자의 안내에 따라 한 명씩 자기소개를 했는데, 나는 그 속에서 수많은 우울과 무기력을 마주했다. 귓가에 오래 남은 말은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주지 않아요.'였다. 주변 사람에게 어렵게 자신의 상황을 말하면 그냥 별일 아니라고 치부한다고. 본인이 의지가 있으면 다 극복할 수 있다는 소리가 제일 듣기 싫다고 했다. 공감하듯 허탈한 웃음을 짓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 홀로 외딴섬에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무기력한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습관처럼 던지던 말, 너도 할 수 있어, 하면 다 돼.


그날 밤은 제대로 잠에 들지 못했다. 내가 명랑하게 이야기할 때마다 버거워했던 친구들이 떠올랐다. 은연중에 좋은 게 좋은 거라며 강압적으로 활기찬 분위기를 이끌어 갔던 나날들도 스쳐 지나갔다. 그동안 나는 누군가 모임에서 오래 입을 다물고 있으면 재빨리 그 친구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물쭈물 대던 그 얼굴에서 입꼬리라도 살짝 올라와야 안심이었다. 누군가 일이 있어 모임에 나오지 못한다고 하면 걱정이 되어 따로 연락을 해서 만났다. 무슨 일로 네 감정이 가라앉았는지 캐묻고, 환하게 웃을 때까지 붙잡고 있었다. 안으로 상처를 삼킨 채, 티 내지 못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씩 파도처럼 밀려왔다. 연락이 뜸해진 친구들에 대해, 자기만의 골방에 들어갔을 거라 치부했던 나였다. 또다시 그 안에서 억지로라도 꺼낼 방법을 궁리하면서.


늦은 시각이었지만 스치는 몇몇 사람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만나서 다짜고짜 사과를 건넸다. 최근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네 생각이 났다며, 그동안 내가 실수한 일이 있는지 알려달라고 덧붙였다. 그중에는 20년 넘게 나와 가깝게 지낸 친구도 있었다. 친구는 머뭇거리면서도 속에 묻어둔 감정을 모두 꺼냈다. 마지막에는 '미안하다고 해주다니 고맙다.'는 말을 했다. 괜찮아도 아니고 고맙다니. 나는 그 친구를 끌어안고 내가 더 고맙다고 말했다. 그렇게 몇 명을 더 만났고, 비슷한 장면들이 연출되었다.


얼마 전에 노란색이 울적한 사람들에게 쥐약이라는 말을 들었다. 환한 빛깔이 우울한 상대의 감정을 밀어내는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예전 같으면 흥미로운 상식을 하나 얻었다고, 어디선가 써먹을 생각만 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좀 더 성숙한 마음이 올라왔다. 밝음이 언제나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곁에서 기다려주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 머릿속으로 그간 만났던 친구들의 얼굴을 그리며 작게 속삭였다. 나는 노란색, 너는 파란색으로, 우리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빛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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