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by 빛나는

카페에서 글을 쓰다 막히는 지점이 생기면 주변을 둘러보곤 한다. 그날은 애띈 얼굴 여자 넷이 들어와 내 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앉아 있는 자세를 언뜻 보아하니 금세 나가려는 모양이었다. 둘은 엉덩이를 반쯤 걸친 채 의자에 앉아있었고, 나머지 둘은 서 있었다. 그리고 전부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정 치마를 입고 있었다. 두툼한 외투로 가려져 윗 옷이 보이지 않았지만, 한복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 머리칼에 하얀 핀은 꽂지 않은 상태였다.


무심결에 들려오는 대화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네 명은 사촌지간처럼 보였다. 그들은 어릴 때 어쨌네, 저쨌네 하며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그중 한 명이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는 듯했다. 그녀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다 대자 모두 목소리를 낮췄다. 그럼에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이어졌다.


만약 내가 단 한 번도 상주의 자리에 서 본 적이 없었더라면 그 무리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을지도 모르겠다. 그 댁의 사정은 잘 모르겠으나, 상 중에 있는 자들이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보이는 것도 모자라 대낮에 장례식장에서 나와 음료수를 사 먹고 있다니. 속으로 혀를 끌끌 차며 요즘 젊은이들이 이렇다며 꼰대 같은 생각을 했을 게 분명했다.


마흔 살까지 사는 동안 검은 한복을 세 번 입었다. 17년 전 아빠, 10년 전 할아버지 그리고 작년에는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임종 소식을 듣고 달려갔던 첫날에는 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두 분 다 몇 개월을 요양병원에 누워계셔 자주 만날 수 없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장례식장에서 상복을 갈아입으며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인사를 나누고는 담담하게 하루를 지새웠다. 아빠는 임종을 바로 코 앞에서 목도했음에도 그 죽음이 믿어지지 않았다. 빈소가 마련되고 나서는 몰아치는 손님을 받느라 비통해할 새가 없었다.


슬픔에 잠기는 날은 대게 둘째 날이었다. 입관에 참여하는 한 시간가량은 슬픔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는 말이 무엇인지 체감하는 때였다. 평소 속 표현을 잘하지 않는 삼촌들까지, 가족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사랑하는 이가 눈을 감았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시간. 진이 빠진 상태로 빈소로 돌아오면 그제야 상장(喪章)으로 흰머리핀을 달 수 있었다. 이후 얼마간은 얼이 나간 사람처럼 주저앉아 상실감을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 것도 그림자 감정일 뿐이었다.


빈자리가 주는 허전함은 대게 일상에서 갑작스레 찾아왔다. 설날에 외롭게 앉아 세배받는 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보면 입술을 꽉 깨물고 절을 했다. 괜히 울음이 터져 복된 날을 허망하게 만들까 울컥하는 걸 꾹 참았다. 혼자 걷는 엄마의 뒷모습이 더 쓸쓸해 보이는 날도 있었고, 나와 동생이 둘 다 결혼을 해서 여섯 명이 아닌 다섯 명으로 애매한 식탁을 꾸리는 순간에도 눈가는 그렁그렁 해졌다. 그렇게 진짜 슬픔은 시도 때도 없이 왔다. 아무렇지 않았던 일상에 들이닥쳐 그리움을 불러왔고, 잠을 설치게 했다. 해가 넘어갈수록 애통한 마음이 옅어지는 건 사실이었지만, 또 다른 이를 잃은 아픔이 덧대져 감정은 계속 깊어져갔다.


앞으로 밤하늘을 보고 헤아릴 별의 숫자가 늘어날 일만 남았으니, 아무리 상주라도 장례의 첫날만큼은 마음을 좀 쉬어도 되지 않을까. 조용한 카페에서 유난히 주목되는 네 사람을 바라보며 괜한 오지랖을 부렸다. 그들은 알록달록한 음료를 하나씩 들고 가게를 나갔다.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내 안에서 한참 울려 퍼졌다. 차츰 줄어드는 울림을 따라서 마음속 수군거림도 잦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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