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외할아버지의 손을 처음으로 의식한 건 초등학생 무렵이었다. 식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는데, 숟가락을 잡는 구부정한 엄지손가락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신경이 죽어 새카맣게 된 살에 은색 수저를 걸쳐서 팔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하는 자세가 영 어색했다. 같은 공간에 앉아 하나의 상을 차려 나눠 먹는데도 함께 먹는 것 같지가 않았다. 내가 젓가락을 든 채로 멍하니 있는 걸 보고 외할아버지가 말을 꺼냈다.
“한번 만져볼라?”
나는 흠칫 놀라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다가 이내 끄덕였다. 어린 마음에 올라오는 호기심을 찾지 못하고, 조심스레 손을 가져다 외할아버지 오른쪽 엄지에 댔다. 반들반들한 검정 도자기를 만지는 듯한 촉감이 손끝에서 전해졌다. 분명 외할아버지의 손등은 따뜻했는데 이어진 손가락은 차가웠다. 시린 게 아니라 온기가 없는 느낌이랄까. 내가 미간에 주름이 잡힌 채로 한참을 만지자 외할아버지는 이상하냐고 물었다. 확실히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눈치를 살피며 나직하게 ‘아니요.’라는 말을 뱉었다. 내 표정을 읽은 외할아버지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이 손으로 너희 엄마와 삼촌 둘을 학교 졸업까지 다 시켰다고 말하며 내 볼을 살짝 꼬집었다. 왼쪽 뺨에 전해지던 생경한 감촉. 나는 멋쩍게 웃으며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 엄지를 최대한 티 나지 않게 쳐다봤다. 공장을 운영하는 외할아버지와 같이 다니면, 구경거리가 많은 물류 센터에서도 오로지 그 손가락만 보느라 바빴다. 짐 더미 아래를 받치고 있거나 박스 위에 걸쳐둔 모습을 슬쩍슬쩍 훔쳐봤다. 그나마 마음껏 쳐다볼 수 있는 때는 외할아버지가 운전하는 순간이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틈에 동그란 가죽 운전대 위에 얹혀 있는 엄지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어쩌다 저리 되었을까. 불편하지는 않을까. 혹여 창피하지는 않을까. 수많은 질문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고 안으로 삼켰다.
자동차에 붙어있는 장애인 배지도 여간 적응이 되질 않았다. 정작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것 같았다. 괜히 나 혼자서 부끄러워했다. ‘외할아버지는 두 다리로 멀쩡하게 잘 걷는데, 휠체어를 탄 모양과는 다른데.’ 싶으면서도 ‘외할아버지가 정말로 큰일을 겪으신 거구나.’ 하면서 뒤바뀌는, 스스로도 명확하게 방향을 정할 수 없는 생각들만 난무했다. 밝은 하늘색 구역에 주차하고 내릴 때마다 이래저래 마음이 불편했다.
서른 살이 넘어서야 우연히 엄마에게 그 손가락 이야기를 들었다. 외할아버지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공장 사고로 손가락이 절단되었다. 당시에는 제대로 봉합할 의술이 없어 잘린 마디를 엉성하게 이어 두기만 했다. 손가락 하나를 쓸 수 없는 외할아버지는 가장의 역할을 하기가 어려웠다. 제조업이 성행했던 시절이라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아이 셋을 키우던 외할머니가 길거리에 나가 떡을 팔았지만 생계를 유지하기엔 부족했다. 외할아버지는 치료도 제대로 받지 않고 급히 일터로 나갔다. 하지만 손 때문에 제대로 삯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전국 각지의 공장 문을 두드려 자리를 구했다. 그렇게 환갑을 지나 여든이 넘는 나이까지 일선에 계시다가 은퇴하셨다.
돌이켜보면, 내 머릿속에 있는 외할아버지 집은 언제나 깨끗하고 넓은 곳이었다. 게다가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항상 주저 없이 사 주셨다. 그동안 나는 가족들을 지키고, 외손녀에게 넘치는 사랑을 주려 애쓰던 손길보다 독특한 생김새에만 관심을 두었던 것이다. 외할아버지에게 선물을 여러 번 받을수록 오히려 점점 건조해진 나의 ‘감사합니다.’가 떠올랐다.
이제 외할아버지는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신다. 누구보다 건강했는데, 일을 관두고 나서는 급격하게 몸 상태가 나빠졌다. 이제는 내 팔뚝보다도 더 가느다란 다리로 걸어 다니는 것마저도 힘에 부치신다. 지난주에 병문안을 갔을 때 외할아버지가 양손으로 내 뺨을 만지셨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엄지의 감각. 왠지 이 느낌이 곧 멀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갑게 안아 드리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팔을 깊게 둘러 감아야 하는 그 허전함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외할아버지와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단단한 엄지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무엇보다 이 느낌만은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