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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이루리 glory Jul 21. 2024

스마트폰 없이 한 달 살기

더 오랜 시간 스마트폰에 무심할수록 더 힘이 강한 사람이다.
더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모두가 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부자들이 스마트폰으로부터 멀어지는 사이, 지위가 낮은 이들의 스마트폰 이용도는 더 높아지고 있다. 부자나 권력자와는 달리 사회적 약자는 '중요한 전화'를 받지 않았을 때의 타격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김영하 <보다> 中


 어제 남편의 새 폰이 입고되어 나는 남편이  쓰던 핸드폰을 양도받게 되었다. 플립 3이지만 내가 예전에 쓰던 폰보다 씬 가볍고 예쁘고 빠르다. 이  세 가지 만으로도 이미 내가 바라는 핸드폰의 조건을 다 충족했기 때문에 더 이상 바랄 것은 없다. 남편은 물건을 워낙 깔끔하게 써서 거의  새거나 다름없다. 주위에서 "왜 너는 매번 남편 핸드폰을 받아 쓰니?" 불쌍하다, 왜 그렇게 사냐 등등 측은지심으로 나를 바라보는 분들에 대한 나의 소심한 해명이다.


 폰을 양도받기까지 한 달을 LG pro 구폰을 쓰면서 나는 평생 가도 못해볼 경험을 해보았다. 장점도 많았다. 외출할 때는 꼭 책을 챙겨서 나갔고 책을 읽을 수 없는 경우에는 주위의 풍경과 사람들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할 시간이 많아져서 그동안 신경 쓰기도 귀찮아서 오래된 책처럼 덮어두었던 복잡한 사고의 실타래를 풀기도 하며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몇 달 전, 비가 내리던 토요일 아침에 왠지 센티해져서 일찍부터 무인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는데 학생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여학생이 우산을 접었다 폈다 불안하게 몇 번을 들락날락하더니 급기야 카페에 혼자 있던 나에게 핸드폰을 빌려달라고 해서 몹시 당황한 적이 있었다. 순간, 한 사람의 인생을 뒤흔들만큼 무서웠던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보통의 나였다면 엄마 같은 마음으로 빌려주었을 텐데, "미안하지만, 핸드폰은 안 돼요..." 하고 거절했다. 마음속으로는 내 핸드폰은 락 장치도 걸어놓지 않았는데 순간적으로 이상한 것을 깔거나 들고뛸 경우 내가 따라갈 방도가 없어... 별의별 생각이 뇌리를 스쳤기에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다. 여학생은 놀라는 눈치였지만 우산을 들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소심한 나는 더 이상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토요일 아침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까지가 여유로운 시간이었는 때아닌 무차별 공격을 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생판 모르는 타인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경우가 아직도 있다니, 약간의 원망이 들기도 하고 무엇보다 어른스럽게 대처하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해서 계속 마음에 걸렸다. 아줌마가 겉으로는 친절해 보였는데 냉정하기 그지없다고 욕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 집 아이들에게도 요즘 핸드폰은 나의 모든 개인 정보가 다 들어가 있으니 목숨처럼 여겨야 한다고 교육을 해왔다. 모르는 타인에게 무턱대고 친절을 베풀기에는 핸드폰이 가진 위험요소가 너무 많았다. 나의 가족은 물론 나의 생체리듬까지 담겨 있는 제2의 나와 같은 존재,  AI까지 탑재되어 실시간 통,번역을 해 주는 등 극도의 편리함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없어지면 상상불가의 불편함을 주는 스마트폰은 이제 우리 삶에 지나치게 필수적인 존재가 되어 버렸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에게 이 일을 얘기했더니, "엄마, 왜 그랬어요. 전화가 필요한 거면 엄마가 걸어주면 되는 거잖아요." 딸아이가 쿨한 답변을 내놓았다. 아차 싶었다. 시간을 다시 되돌려 밖으로 아까 그 여학생의 손을 붙들고서 전화를 대신 걸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지나치게 차갑고 은근히 무서웠을 이 아줌마를 기억에서 속히 지워주길 바랄 뿐이다.


 스마트폰이 없는 한 달 동안, 카톡이 안되니 약속을 정해놓고 무턱대고 나갔다가 아는 지인들을 통해 묻고 물어 연락을 간신히 했었던 적도 있었고, 인터넷뱅킹도 안되어 혼자서만 현금을 들고 다니며 회비를 냈고, 은행업무는 현금인출기에 가서 계좌이체를 해야 했다. 지인들 생일선물을 보내기 어려워 직접 만나서 전했고 제일 불편한 것은 인터넷 쇼핑을 맘껏 할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굉장히 불편했던 한 달이었고 밖에서 아이 일 때문에 급하게 자료를 찾아봐야 하는데 인터넷 검색이 안되어 답답해서 운 적이 있었음에도 쭉 정리를 해 놓고 보니 그래도 견딜만했던 것 같다. 내 손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는 직접 은행에 가고 옷가게에서 쇼핑하고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문명의 이기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한편, 동선을 줄이고 교류도 줄이면서 혼자서 스마트만 보면서 지내는 '스마트폰 종속형 인간" 양성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인간관계도 스마트폰 안에서 이뤄지니 잠시라도 손에서 떨어지면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작가 김영하가 말한 것처럼 더 오랜 시간 스마트폰 없이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더 강한 거라면 나는 지난 한 달 동안 강한 의지로 나름 잘 버텨낸 것 같다. 힘들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고맙고도 너무도 한 달이었다.

블로그 페리의 감성생활 <스마트형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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