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비추는 자국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면서......
비 내리는 주말, 잔잔한 BGM이 흘러나오는 미술관 공예창작지원센터에서 패브릭화병을 만들기 위해 바느질 중이다.
한 땀 한 땀 아무 생각 없이 바느질에 집중하다 보니 간만에 느껴보는 몰입에 기분까지 충만해진다.
뿌듯하게 화병 한 쪽 면 바느질을 끝내고 다시 바늘에 실을 꿰고 있는데, 강사님이 친절하게 " 이렇게 바느질 한 부분의 천을 펴주면 우글우글한 부분도 펴져요"하면서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을 살펴준다.
'아!'
10년도 더 된 듯한 그 예전, 엄마에게 드리기 위해 손바느질로 누빔조끼를 만들어 드렸었다. 한 번 시작하면 완성될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고집스럽게 바느질을 하다보니 작품의 첫 바느질을 시작하는데 큰 마음이 필요했던 시절이었다. 새벽까지 바느질을 하며 보름 정도 걸려 완성한 퀼트조끼를 손에 쥐고 무척 뿌듯하게 엄마에게 입혀드렸었다. 한 땀 한 땀 바느질 하는 걸 옆에서 보셨던 엄마는 안쓰러워하시면서도 더없이 기쁘게 매일매일 입고 계셨다.
어느 날 발견 한 옥의 티! 조끼의 카라 끝이 항상 처마 끝처럼 들려있는 것이 거슬렸다. 볼 때마다 손으로 펴고 다림질을 해도 바느질을 할 때 실을 너무 당겨서 해서 다시 바느질을 하지 않는 이상은 어쩔 수 없었다. 매번 눈에 걸려 하는 딸을 보며 조끼를 다시 뜯고 바느질을 시작할까 봐 이쁘다며 한사코 만족해하셨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완벽한 한 땀 한 땀을 위해 팽팽하게 실을 당기며 바느질을 하고 있는 민낯의 나와 마주한다.
어제 저녁, 처음 부장이 되어 팀원들과 소통의 문제로 힘들어하다 응급실까지 갔다 온 친구에게 '너무 잘하고 있어. 너무 잘하려고 완벽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 지금 충분해'라는 말을 했던 자신이 머쓱하다.
"와, 예쁘다."
엄마와 함께 원데이에 참여한 초등학교 3학년쯤 보이는 아이가 자신이 완성한 화병을 보며 신나하고 있다. 당연히 강사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스스로 하고 싶은 의지를 보이며 완성한 작품은 듬성듬성 삐뚤빼뚤 다양한 바느질 자국이지만 확실히 나의 가지런하고 좁은 바느질 자국보다 예쁘다.
주말 오전, 평온한 마음의 힐링을 위해 찾아온 곳에서 만족스럽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느꼈건만 정작 손끝의 안간힘은 그렇지 못해 숨겨진 마음을 드러낸다.
마지막 한 면은 조금은 바늘땀의 집착을 내려놓고 완성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침대협탁에 자리를 잡은 패브릭 화병을 보며 외부의 자극과 무관하게 밥 먹듯이 찾아오는 번아웃의 정체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게으른 완벽주의의 삐뚤빼뚤 하루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