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 산

혼자 살 때 가장 불편한 것

by 하루사리

오늘도 찾고 있다. 행방이 묘연한 휴대폰을 10분째 찾아 헤매고 있다.




좁은 집에서 나의 행적을 되새기며 똑같이 이동하며 찾는다. 이쯤 되면 나올 만 한데 나오지 않는다. 설마 아니겠지 하며 마지막 자존심으로 냉장고 문을 연다. 다행이다. 없다. 어이없어 씩 웃으며 다행 아닌 다행에 안도하며 다시 찾는다.


독립을 하고 처음 휴대폰을 찾아 나서던 날, 첫마디가 '전화해봐야겠다.'였다. 그러나 전화해 볼 전화기가 없다는 것을 알고 극도로 불안해했었다. 단순히 휴대폰을 못 찾을까 봐가 아닌 지금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연락을 하지 하는 뜬금없는 공포감에 섬뜩했던 거다.


가족과 함께 살 땐 일상처럼 숨어버리는 내 휴대폰을 집전화로 부모님 휴대폰으로 싱겁게 찾았었는데, 이젠 찾을 길이 없다. 혼자 산다는 것은 전혀 뜻하지 않은 불편함 속 공포를 인지시키며 나의 망할 건망증을 여실히 느끼게 해 준다.


나름의 최선으로 휴대폰을 최대한 잘 보이는 곳에 둔다. 그럼에도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둘 때면 어김없이 찾아 헤맨다. 울어도 우는지 모르는 무심한 주인 덕에 그 옛날 전설 속 캔디폰이 된 지 오래인 나의 휴대폰은 전화를 받기보다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는 일이 다반사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으로 나의 필요에 의해 손에 쥐어지기에 이럴 땐 이기심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기분이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전화도 좋으니 지금은 좀 울어주면 좋으련만 나와 나의 휴대폰은 궁합이 안 맞다.


설마 아니겠지 하며 의미 없이 침대를 들춰본다. 침대에서 내려오면 무의식적으로 바로 정리하는 습관 덕에 이미 정리된 나름의 부드러움을 한껏 표현한 각 잡힌 이불을 살핀다. 떡하니 있다. 분명 휴대폰을 들고 거실에 나왔었는데, 노래 가사처럼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뒷목이 절로 잡힌다.


찜찜한 다행으로라도 찾았으니 됐다. 안 맞는 궁합으로 함께 살려면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행이라 여기는 하루살이라 다행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