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자들이 말하길 '흰머리카락 한 올도 소중해질 날이 온다. 보기 싫으면 뽑지 말고 염색해라.'
그들의 예언은언젠가는 옳을 때가 오기에 흰머리카락을 뽑지 않는다. 지인이 뜬금없이 내 뒤통수를 보며 흰머리카락 보이는데 뽑아줄까 하면 '그냥 둬'한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흰머리카락이 보이지 않으면 됐지 뒤통수까지 신경 써서 뭐하겠나 싶다. 그래서 난 흰머리카락 없는 사람이다.
기분 좋게 거울을 보며 머릿결을 손질하는데, 한 녀석이 눈에 띈다. 손가락 정도 되는 길이의 새하얀 그 망할 녀석이빛에 보였다 안보였다 아주 귀염을떨며 해맑게 반짝인다. 주인닮아서 눈치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거슬린다. 분명 나는 흰머리카락 없는 사람인데 이 녀석이 순식간에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당당하게 정수리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이 녀석을 난 망설임 없이 뽑아버리고자 마음먹었다. 집게를 들고 앞선 자들의 말은 지금은 안 맞다며 과감하게 뽑는다. 소중한 한 올이 될 수 있었던 녀석은 종이 한 장 차이도 무색하게 박해받는 한 올이 돼서 떠났다.
일주일 전에도 있었고, 어제도 있었을 것이다. 분명 존재하며 자기 갈 길 가던 녀석이 맞긴 맞다. 죄가 있다면 오늘 내 눈에 띄었다는 것뿐.
곰곰이 생각해보니 코로나 때문이다. 헤어숍을 가지 않은지 1년, 조금 긴 단발이 자연스럽게 긴 머리가 되었고 길어진 만큼 검은 머리카락 비율이 높아졌다. 흑백이 분명해진 나의 정리수는 흰머리카락의 존재를 어쩔 수 없이 확실하게 보여줬을 뿐이다. 그래 코로나 때문에 흰머리카락이 오늘 갑자기 생긴 것이 분명하다.
새치염색을 하지 않는다. 일반 염색을 하면 흰머리카락은 염색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도 새치염색을 하지 않는다. 원래는 흰머리카락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는 대범하기까지 한 나인데, 코로나 때문에흰머리카락에 신경이 잠시 쓰였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