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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Dec 20. 2023

지금은 봄이라고 말할 수 있나?

영화 <서울의 봄>


"넌 대한민국 군인으로도, 인간으로도... 자격이 없어"


이태신이 넘어지고 일어나고 또 넘어지면서 무수히 늘어선 바리케이드를 넘어온다. 그리고 마주한 전두광에게 군인으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자격이 없음을 일갈한다. 이에 전두광은 몇 초 정도 이태신을 바라보지만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승리의 축배를 들기 위해 차를 타고 이동하던 함께 가던 절친 노태건에게 먼저 가서 파티 준비를 하라고 하며 차에서 내려 잠시 걷는다. 영화에선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가늠할 수 없다. 아마도 잠시 잠깐이었을 것이다. 다음 장면에서 그는 신군부 반란자들의 축하 잔을 받아 든다.


그가 왜 차에서 내렸는지 궁금했다. 아마도 혼자 파티장소까지 걸었던 듯한데 영화에서는 그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전두광에게는 한 컷의 서사도 주지 않던 감독이 왜 이 장면을 그에게 주었을까? 적어도 이태신의 마지막 말이 그의 폐부를 찔렀으면 하는 감독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인간이면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순진한 우리들의 바람을 담았을지도 모르겠다. 


반란군과 진압군의 대치와 이태신이 전두광에게 한 당연하고도 담담한 말 한마디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이자, 천만 관객이 뒷목을 부여잡으며 영화를 끝까지 본 목적이 아니었을까. 너무도 당연하고 정직해서 누구도 벨 수 없을 것 같은 저 말이 오히려 전두광의 눈빛을 흔든다. 


출처: 네이버


명분과 정당성을 가진 이태신과 '사후승인' 종이 한 장 가진 전두광의 대결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관객들은 꽤 오랫동안 생각할 것이다. 전두광 그는 훗날 한 줌의 재가 된  자신의 육신이 편히 뉠 곳 없어 떠돌게 될 짐작했을까? 짐작했다 해도 번들거리는 눈을 빛내며 이렇게 외칠 게다. "마! 싸나이로 태어나서 원 없이 자알 살았다 아임미까." 그는 사나이가 되었어야지 군인이 될 자격은 없는 사람이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관객들은 빠르게 일어서서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출입구 통로에  늘어선다. 어서 빨리 전두광의 그 추악한 웃음소리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다. 아무 말 없는 우리들 뒤로 군가 한 곡이 서글프게 울린다.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눈 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 젊은 넋 숨져간 그때/ 그 자리 상처 은 노송은 말을 잊었네/ 전우여 들리는가 그 성난 목소리/ 전우여 보이는가 한 맺힌 눈동자/...


군대도 가 보지 못한 내가  군가인 <전선을 간다>를 들으며 상영관을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마치 반란군에게 무장해제를 당한 진압군처럼 고개를 숙이고.



하늘을 나는 철새만이 약속을 지키는 세상, 이태신이 판타지가 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이 가엾다.


과연, 지금은 봄이라고 말할 수 있나. 


#서울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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