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루 Mar 18. 2024

마음의 앞섶을 풀어헤치고 봄봄


미온바람이 불어 가지를 흔든다. 봄바람이 잎눈에겐 잎을, 꽃눈에겐 꽃을 내놓으라 나무에 몸을 비벼댄다. 등쌀목련은 함박웃음 같은 허연 꽃송이를 벌렸다. 해낙낙한 그 웃음이 가지를 누른다. 나도 무언가를 주섬주섬 내놓아야 할 것 같은, 봄이다.


올해 대학에 들어간 녀석들 한 무리와, 입대를 앞둔 녀석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한 녀석들이 시차를 두고 끊임없이 찾아왔다. 본의 아니게 동네에 있는 예쁜 카페가 우리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좋은 어른이 되어 주고 싶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인생에 있어 칭찬이 매번 약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약을 발라가며 아이들에게 아픈 말도 많이 했더랬. 그것이 그때는 야속했지만 돌아보니 진짜 쓴 약이 되었다 한다. 오히려 나는 조금 더 다정히 대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아이들에게 고백을 했다. 그랬더니 녀석들은 까르르 웃으며  '한테 안 어울려요.' 한다.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아이들의 웃음이 바람이 비벼대는 초록보다도 싱그럽다. 어려운 인생의 관문을 하나씩 넘어가는 것이 기특하고, 자기들의 인생에 그저 지나가는 인연일 뿐인 나를 가끔 찾아와 주는 것도 고맙다. 이제 인생의 봄, 청춘을 맞아 함빡 예쁜 꽃들을 피울 아이들에게 축복을 다.


청춘을 맞은 아이들을 보다가 "청춘"이라고 나직이 소리를 내어 본다. 뜻과는 다르게 슬픈 이름이다. '청춘'은 지나온 사람이 부르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지나왔노라 말하면서 잠시 회상에 잠기는 것 중에서 청춘이라는 것보다 더 애틋한 것이 있을까. 청춘은 시간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들 말하지만 그것이 선물이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흘러야 한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기에 아까운 줄도 모르고 막 써버렸다. 녀석들은 아껴 아껴 청춘을 즐겼으면 좋겠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미래의 크기가 줄어드는 것이지 미래가 없는 것은 아닐 텐데,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가끔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상상을 해 본다. 그닥 지금과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아 조금 씁쓸하지만 봄 같은 녀석들을 만나니 내게도 푸른 물이 스며드는 것 같다.


우울한 사람은 우울한 꿈만, 슬픈 사람은 슬픈 꿈만 꾸는 법이다. 겨우내 듣던 물속 같은 플레이 리스트를 삭제하고 봄을 닮은 노래들로 다시 플레이 리스트를 꾸렸다.


봄이 내게도 살갗을 비벼댄다. 딱딱한 수피가 벗겨진다. 추스른 마음의 앞섶풀어헤치고 이제 봄을 맞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슬픔을 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