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 조세희
"30년 전 나는 취재를 하기 위해 서울의 한 철거촌에 갔습니다. 어느 세입자 가정의 마지막 식사 자리, 목이 메인 가장은 밥을 잘 넘기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식사 자리를 지켜 주기에는 벽은 너무 얇았습니다. 뚫려 버린 담벼락 밑에서 나는 철거반원들에게 맞선 주민들 속에 섞였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다니던 잡지사 부근의 문방구에 들러 볼펜 한 자루와 작은 공책 한 권을 샀습니다. 그것이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시작이었습니다." - 조세희 작가
신간을 묵혔다가 읽는 버릇 때문에, 읽을거리가 밀렸고 에세이집을 준비하면서 극심한 독서 갈증에 시달렸다. (그냥 읽는 사람으로 살 것을) 원고를 넘긴 지 몇 주되었지만, 갑자기 활자가 보기 싫어 그야말로 몇 주동 안은 수업과 관련된 거 외엔 거의 책과 담을 쌓고, 그래픽에 의존해 지냈다. 영화와 밀린 드라마도 보고, 게임도 했다. 이제 다시 활자의 세계로 돌아와서 읽을거리가 한가득 쌓인(책은 계속 샀다) 서재에서 망연자실하다가 퍼뜩 이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떠올랐다. 좋아하는 책이지만 어떤 형태로든 감상을 적은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조세희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1978년 6월 초판을 발행한 후, 1996년에 100쇄, 2005년에 200쇄를 돌파하고, 2017년 300쇄를 찍었다. 소설이 300쇄를 넘는 것은 한국 문학으로서 가히 기록이 될만한 일이다.
100쇄를 찍었던 1996년 한 인터뷰에서 조세희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계엄령과 긴급 조치의 시대였던 1970년대에 이 작품을 쓴 것은 벼랑 끝에 내몰린 우리 삶에 '경고 팻말'이라도 세워야겠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한 작품이 100쇄를 돌파했다는 것은 작가에겐 큰 기쁨이지만 더 이상 이 작품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왔으면 한다."라고.
200쇄 출간을 앞두고 작가는 한발 더 나아가 "부끄러운 기록"이라고 말한다. 30여 전의 불행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책이 증명한 셈이었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후 300쇄를 찍었으니, 작가의 소망은 영영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지금도 여전히 이 작품이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음이다.
아직도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빠지지 않고 실리는 작품이다. 그동안 수도 없이 수업을 했지만 개인적 감상은 배제한 채 기계적으로 시험과 연관된 것만 가르치는 것에 한계를 느끼기도 했던 작품이다. 1978년 '경향 신문'에 <지붕 없는 철거민 어디로 가야 합니까>라는 기사 정도를 인용해 주는 것으로 내 할 도리를 하곤 했다.(더 나아가다가는 소위 '좌빨'소릴 듣는다. 직업적 한계이다.)
경향 신문 기사의 골자는 '철거민들에게 보상으로 아파트 입주 추첨권이 나왔으나 당첨 확률은 지극히 낮고, 떨어진 사람들에게 나오는 보상금은 이들의 평균 집값의 10%도 되지 않는 20만 원 정도에 불과했다. 추첨에 떨어진 사람들은 자살하는 이도, 집을 허문 자리에 움막을 짓고 사는 사람도 있었다. 입주권을 얻게 되더라도 철거민들은 아파트를 살 돈이 없었고, 울며 겨자 먹기로 투기 브로커들에게 70~80만 원의 헐값으로 팔아넘기고 또 다른 빈민촌으로 내몰린다.'라는 기사였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 P.80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中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1975∼1978년 문예지에 발표한 단편 12편을 묶었다. 하나의 장편으로 봐도 무방할 소설집이다. 이 연작소설이 갖는 힘은 무엇인가. 며칠 동안 그들의 시선을 다시 따라갔다.
「뫼비우스의 띠」 '꼽추' '앉은뱅이', 「칼날」「육교 위에서」는 난장이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소시민의 아내 '신애', 「우주여행」「궤도 회전」「기계 도시」 세 편에서는 부유한 자신의 계층을 버리고 노동 운동에 눈뜨는 '윤호',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잘못은 신에게도 있다」「클라인 씨의 병」「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의 난장이 아비의 자식들 영수 영호 영희, 「에필로그」 속 자신의 의도를 이해받지 못하는 교사와 앉은뱅이.
이 연작 소설 속 인물들이 보여 준 고달픈 삶은 1970년대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자신의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지금도 우리 곁에는 얼마든지 있다. 이 작품이 쓰인 그때로부터 시간은 멀어졌지만 여전히 우리는 앉은뱅이처럼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굳이 달나라를 찾지 않고도,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너무나 순진한 발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일들이 그러하듯 정답은 의외로 쉽고 간단하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미 유치원에서 다 배운다) 조세희 작가의 이 '난장이 연작'이 죽지 않고 계속 살아나는 것이 달갑지 않다. 모르긴 몰라도 조세희 작가도 그렇지 않을까.
표제작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속 난장이 아버지는 대학생 지섭에게 <일만 년 후의 세계>라는 책을 빌린다. 난장이 아버지가 꿈꾸는 사회가 아주 먼 미래의 사회이며, 현재 사회의 경제적 착취와 정치적 억압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해소되지 못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난장이 아버지는 도덕성이 확립된 지순한 세계이자, 지섭이 말하는 사랑의 세계인 '달나라'로 가고자 한 것이다. '죽은 땅'과 달나라'라는 대비되는 공간을 통해서 난장이 일가(어쩌면 우리)가 직면한 현실의 문제를 마주한다. 죽은 땅은 '욕망'과 '불공정'이라는 속성, 달나라는 '사랑'과 '타자를 위한 눈물'이라는 속성으로 구체화된다. 산업 사회의 이면에 대한 비판과 이상 세계를 향한 낭만적 동경으로 이야기를 이끈 작가의 고뇌에 응답하고 싶어진다. 우리 사회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들은 낙원을 이루어간다는 착각을 가졌다. 설혹 낙원을 건설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들의 것이지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나는 했다. 낙원으로 들어가는 문의 열쇠를 우리에게는 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낙원 밖, 썩어가는 쓰레기더미 옆에 내동댕이쳐둘 것이다.
- P. 221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中
혹자는 산업화가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도 없다고 말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피해가 또 다른 가해를 낳고, 안과 밖을 구별할 수 없는 사회에서는 흑백논리적 접근이 불가능하다. 요즘 사회는 난장이와 거인을 구별하는 일이 점점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사회의 부조리를 표면적으로만 보지 말고 심층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조세희 작가의 당부는 지금도 유효하다.
강남의 초고층 아파트와 난장이 가족이 살던 집의 옹색한 마당에 핀 팬지꽃의 극명한 대비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도 어쩌면 난장이 일가처럼 '낙원구 행복동'이라는 역설적 세계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승자도 패자도 없이 서로 보듬어 주는 삶이 그리 요원한 일일까. 「뫼비우스의 띠」에서 수학 선생이 들려준 '굴뚝 청소부 이야기'가 더 와닿는 요즘이다.
*난쟁이가 표준어지만 소설 속 '난장이' 표기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