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미친 김 군 / 김동성
『꽃에 미친 김 군』은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가 쓴 '백화보서'의' 백화보'를 그린 화가 김덕형을 모티브로 한 그림책이다. 아쉽지만 백화보는 전해지지 않는다. 김덕형이 그렇듯 김동성 작가의 세밀화도 가히 작품이다. 꽃에 대한 진심과 관찰을 섬세하게 붓질하고, 아름다운 색감으로 담아낸 김동성 작가는 십여 년에 걸쳐 이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 열정과 장인정신에 화답하듯 '2025 한국에서 가장 즐거운 책' 대상을 받았다.
18세기 조선에 실존했던 화가 김덕형은 아쉽게도 기록은 많지 않다. 실학자 박제가의 서문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나마 동양화를 전공한 김동성 작가의, 전통에 현대적 감수성을 더해 그린 화려한 꽃그림을 보면 김덕형의 감성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담장 위 나팔꽃이 저절로 열리는 모습을 본 아이는 꽃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늘 '꽃 속에 살았고, 하루 종일 자신이 가꾼 화원에 자리를 깔고 누워서 꽃만 바라본다. 꽃을 그리고 꽃 그림을 보고, 꽃시를 읊고, 꽃차를 마신다.' 그런 김덕형을 사람들은 '미친' 사람으로 조롱한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이 아름다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으리라.
세상 모든 것이 변해도 꽃의 아름다움은 변치 않으리. 언제까지고 꽃과 함께라면 미친 사람이라 불려도 좋으리라.
그림책을 펼치면 꽃 향기기 은은히 피어오른다. 담백하고 청초하고 단아한 우리 꽃이다. 봄의 설렘 진달래, 싱그러운 여름 초롱꽃, 은은한 가을의 향기 국화, 고고한 겨울의 매화. 김 군처럼 우리도 책 속의 꽃 그림으로 빨려 들어가며 절로 미소가 인다.
'치(痴)'라는 글자가 있다. 어리석다 또는 미치광이라는 뜻이지만, 한 분야에 대한 깊은 취향으로 지극한 경지에 이른 사람에게 '치'라는 말을 쓴다. '책만 읽는 바보' 간서치 이덕무의 사례에서 보듯. 김덕형은 꽃에 관해 아무도 넘보지 못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누구도 따르지 못할 방식으로 꽃을 그리는 화가가 된다. 김덕형 스스로가 생각하듯 우리도 그를 '치'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김덕형은 종내에 스스로가 꽃이 되는 경지에 이르렀을 게다.
실존인물 김덕형에 대해 실학자 박제가는 '백화보서'의 서문에 "김 군을 보고 미친놈 혹은 멍청한 놈이라며 비웃고 조롱하며 욕하지만… 김 군은 만물을 스승으로 삼고, 기예는 천고(千古)의 사람들과 견줄 수 있다. 김 군이 그린 ‘온갖 종류의 꽃(百種之花)’은 역사에 길이 남을 공적… 향기의 나라에서 배향하는 위인으로 삼기에 충분하다…”라고 썼다. 아마도 '백화보'는 김덕형이 그린 화첩이 아닌가 싶은데, 전해지지 않으니 아쉽기만 하다. 김덕형에 대해 알려진 바는 많이 없으나 '균와아집도'라는 그림 속 쟁쟁한 조선의 화가들 사이에 13살의 김덕형이 보인다.
“책상에 기대어 거문고를 타는 사람은 표암 강세황… 옆에 앉은 아이는 김덕형… 옆에 앉아 있는 이는 현재 심사정… 검은 망건을 쓰고 바둑 두는 사람은 호생관 최북… 호생관과 마주하여 바둑을 두는 사람은 추계(미상)이다. 구석에 앉아 바둑을 관전하는 이는 허필… 자리에 기대어 비스듬히 앉은 사람은 균와(미상)… 균와와 마주하여 퉁소를 부는 이는 단원 김홍도….” - 허필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18세기 예술계의 거장들이 한 곳에 모여있는 그림에 13세의 김덕형이 끼어 있다. 그의 그림이 남아있지 않아도 재주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무언가에 미쳐본 사람은 안다. 알면 알수록 모르겠고, 알아가면 갈수록 그 깊이 빠져 사소한 인간세를 잊어버리는 그 그윽한 즐거움 말이다. 나도 무언가에 많이도 미쳤더랬다. 지금도 미쳐있거나 혹은 흔적만 남은 그 '미침'의 즐거움은 긴 여정에서 지치지 않고 살아가게 하는 이유가 될 때가 있다. 다가오는 봄엔 무언가 새로운 '미칠'거리를 찾아 나서 보고 싶다. 꽃에 미친 김덕형처럼, 김덕형에 미친 김동성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