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빛

희랍어 시간 / 한강

by 마루

언어를 잃어 가는 여자, 빛을 잃어 가는 남자. 굳이 죽은 언어를 공부한다. 그로 인해 소멸과 존재, 삶과 죽음, 사랑과 상실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말도 안 되는 원고뭉치를 넘긴 날 나는 다시 한강의 작품 속으로 들어왔다. 두 달여를 애초 생명을 부여받지 않아도 될 내 글과 치열하게 싸우다가 돌아온 것이다. 한강의 시간으로 돌아오며 다시 잡은 첫 책이 「희랍어 시간」이다.


이번에 넘긴 원고 중에서, 시와 에세이의 경계가 없는 작품 하나를 썼다. <철모르는 것들에 대하여>란 제목으로 짧은 에세이 사이사이에 시를 묶은 옴니버스 형식이다. 미리 밝히자면 한강의 이 소설을 읽고 한강작가가 소설과 시의 경계를 넘나들듯이, 수필을 쓰는 나도 그 경계를 허물어 보고 싶었다. 결과는 모르겠다. 그저 내가 쓰는 지지부진한 이야기일 테다.


한강의 「희랍어 시간」은 시와 서사의 경계를 넘나 든다. 한강 작가의 문체가 워낙 시적이니 소설의 문장과 시어를 굳이 구별하는 것은 의미 없을 듯한다. 「희랍어 시간」도 한강의 다른 작품들처럼 친절한 이야기는 아니다. 읽다가 흐름을 놓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사전을 놓고 더듬더듬 독해하듯이 읽어 나갔다. 그녀의 한 문장도 놓치기 싫었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은 나와 같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왜 고대 희랍어일까? 대답은 심플하다. 지금은 죽은 언어니까. 의미가치가 다소 약해진 언어니까. 한때는 유럽언어의 기본이 되었고, 지금도 철학 인문 사회 과학 분야의 개념어로서 자리 잡고 있지만,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언어다.

첫 인간의 언어를 생각한다. 그것은 아마도 소리가 아니었을 게다. 몸짓이 아니었을까 싶다. 인류가 언어를 사용하면서 이 몸짓은 언어의 주변으로 밀려났다. 더욱이 원래 하나였던 이 몸짓이 언어로 분화되면서, 소통의 단절과 그로 인한 갈등이 생겨났을지도 모른다.


이 소설을 읽을 때, 말을 잃은 여자를 동정하고 싶은 마음은 애초에 생기지 않는다. 대신 우리에게 언어라는 존재가 가지는 효용과 또 다른 언어 즉 애초에 우리의 언어였던 몸과 감각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말을 너무 많이 주고받는 중에 오히려 오해가 증폭되는 경우를 종종 겪는다. 그럴 때면 차라리 말을 하지 못한다면, 하지 않았더라면을 떠올린 적이 있다. 말을 잃은 여자를 보며 언어의 뿌리를 더듬게 된다.

한강의 소설엔 늘 연약한 존재, 여린 존재, 물기 어리거나 한기 어린 존재들을 만난다. 플라톤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것들은 이데아에 있지만,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한강의 책에도 있었다. 그것을 표현하는 한강만의 방식이 어둡고 슬플 뿐이다.


어릴 때부터 언어에 민감했던 그녀는 문장의 의미와 단어 속에 담긴 의미를 완벽히 이해한다. 그 언어는 아름답기도 추하기도 하고, 진실과 거짓이 혼재되어 있다. 폭력적인 상황에 맞물려 그녀는 언어를 버린다. 그녀에게 언어란 '얼음 기둥' 같은 것이었다.

남자는 시력을 잃어간다. 첫 장에 등장하는 '보르헤스'의 은유는 '칼'이다. 칼의 놀림은 면이 아니라 한 줄의 선이다. 그의 빛과 어둠은 그렇게 한 줄의 선으로 나뉜다. 그래서 곧 시력을 잃는 자신에게 말이 필요하다고 청력을 잃은 연인에게 강요한다. 폭력이다. 후회하지만 연인을 잃었다.


소설 속의 아픈 이들을 다시 본다. 여자는 말을 잃고 아이도 잃는다. 남자는 시력을 읽었고 그의 첫사랑 청력을 잃었다. 온갖 잃은 이야기 속에서 '잃는다'라는 정의를 다시 세우게 된다. 연약할지언정 그들이 잃은 것이 무엇인가. 우리에게 있으니 그들은 잃은 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남자의 집으로 간 그들은 많은 대화를 나눈다. 남자는 질문을 하고 여자는 손바닥에 글씨를 써 소통한다. 그리고 그의 손바닥에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기에 머물겠다고 쓴다.


나의 고통에 그들의 고통이 더해져 어깨를 누른다. 하지만 그 고통들이 뭉쳐서 의외로 홀가분함을 느낀다. 왜 그런지는 명확하게 언어로 도출할 수 없지만 나는 그렇게 느낀다.


나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은다.
혀끝으로 아랫입술을 축인다.
가슴 앞에 모은 두 손이 조용히, 빠르게 뒤치럭거린다.
두 눈꺼풀이 떨린다, 곤충들이 세차게 맞비비는 겹날개처럼.
금세 다시 말라버린 입술을 연다.
끈질기게, 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쉰다.
마침내 첫 음절을 발음하는 순간, 힘주어 눈을 감았다 뜬다.
눈을 뜨면 모든 것이 사라져 있을 것을 각오하듯이.


처음 읽을 때는 여름 휴가지 호텔 레스토랑에서 내가 좋아하는 화이트 와인을 마시며 읽었다. 두 번째는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를 따로 찾아가며 읽었다. 한강 작가는 교차를 통해서 그들의 내면을 좀 더 깊이 파고들 기회를 차단했다. 그러니 아득하고 멀고, 남자와 여자의 고통이 함께 뭉쳐져 다가왔다. 영리한 독자인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분리해 냈다. 그렇게 읽고 일대일로 아픔과 상실의 심연으로 한발 한발 나아갔다.


언어와 빛에 가려져있던 촉감에 대해서 오래 떠올렸다. 눈과 입사이의 거리만큼 깊어진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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