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등대로 가자

등대로 / 버지니아 울프

by 마루

쏟아져 나오는 신간들 사이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고전을 그래도 몇 페이지씩 계속 읽는다. 오랜만에 울프의 책 『등대로』를 읽었다. 박인환의 시를 먼저 읽었는지, 울프의 책을 먼저 읽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사실 처음은 중학교 때 읽어서) 처음 읽었을 땐 시도 소설도 영 재미가 없었다. 시는 관념적이고, 소설은 의식의 흐름…. 싫어할 만했다. 그래도 끝까지 읽긴 했었다.

(...)

……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

박인환 詩 <목마와 숙녀> 中

이 소설은 ‘의식의 흐름’ 기법을 처음 사용한 소설이다. 사건도 없고 인물을 중심으로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기술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 읽었을 때 재미없었던 이유는 다음에 발췌한 이런 부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좋아하는 서술이다. 내가 매일 산책을 나가는 것도 이런 램지 부인의 이 독백을 나도 체험을 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는 그 누구에 대해서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홀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었다. 바로 그것이 그녀가 이제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생각하는 것, 아니 생각하는 것조차도 아니고, 그저 잠자코 있는 것, 혼자 있는 것, 모든 존재와 행위가, 팽창하고 번쩍이고 소리 내는 것들이 사라지고 줄어들어 거의 엄숙한 가운데 자기 자신이 되는 것, 쐐기 모양을 한 어둠의 핵심,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인가가 되는 것. 그녀는 여전히 똑바로 앉은 채 뜨개질을 계속했지만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을 느낄 수 있었고, 그렇듯 착념을 떨쳐 버린 자아는 자유로워져서 그 어떤 기이한 모험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P. 86


‘등대가 있는 섬에 가고 싶어 한다. 날씨 때문에 등대 행은 유보된다. 시간이 흘러 램지 부인은 죽는다. 10년 후 램지 씨 가족은 다시 별장에 모여 등대로의 여정을 떠난다.’ 이 심플한 서사를 이렇게 그려 내는 버지니아 울프에게 그저 경의를 표한다.

1부 <창문>, 램지 씨의 별장에 그의 아내 램지 부인과 여덟 명의 자녀, 그리고 다섯 명의 손님이 머물고 있다. 램지 부인과 아들 제임스는 등대가 있는 멀리 떨어진 섬에 가고 싶어 하나, 램지씨는 날씨가 좋지 않아 갈 수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손님인 릴리는 램지 부인의 성품을 동경해 그녀를 초상화에 담으려 하지만 미완에 그치고, 등대행은 유보된다.

2부 <세월이 가다>, 1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있었고, 램지 부인과 그녀의 아들 앤드류, 딸 프루가 죽는다. 바닷가의 별장은 황폐해지고, 릴리는 램지 부인의 죽음 이후에는 그림 그릴 의욕을 상실한다. 램지 부인이 죽자 집안은 온기를 잃는다.

3부 <등대>, 10년 후 램지 씨 가족과 손님들이 다시 별장에 모인다. 램지 부인은 없지만 그들은 폭풍우로 취소되었던 등대로의 여정을 떠난다. 별장에 모인 모두는 따뜻했던 램지 부인이 여전히 가슴 속에 존재하고 있다고 느낀다. 릴리는 램지 부인을 회상하며 초상화를 완성한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상징하는 인물,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램지 씨는 등대(‘희망’을 상징하는 등대는 문학의 전형적인 클리셰지만)로의 여정은 험난하고 쉽게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린 아들 제임스는 물론 등대지기의 아들까지도 배려하는 감성적인 램지 부인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등대 행을 포기하지 않는다. 사회의 관례, 즉 가부장제에 익숙한 램지부부의 모습을 통해 전통적인 사회가 요구했던 남녀의 특성을 다시금 들여다 보기도 한다.


울프가 대단한 지점은, 램지 부인의 독백은 물론이고 가족 구성원들의 내면을 마치 들어가 본 것처럼 묘사한다는 것이다. 인물들의 내면을 이렇듯 묘사했다는 것에서 이후 소설가들은 울프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학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지혜로운 램지 부인은 사소한 일상에 속에서도 통찰을 보여준다. 아마도 버지니아 울프 그녀 자신일 게다. 자전적 소설이니 만큼 자동 기술로 머릿속에서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술술 썼을 것이다.

큰 서사는 없지만 등장 인물들의 내면에 주목한다면 필시 재밌는 소설이다. 『등대로』는 모더니즘 소설로도 읽히고, 시각에 따라 페미니즘 소설로 읽히기도 한다. 내 마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다가온다.

『등대로』와 함께 내가 지향하는 울프의 산문집 『자기만의 방』은 글을 쓰는 여성이라면 거의 교과처럼 읽다시피 한다. 그러나 이상이 이렇게 높으니 늘 자기 글에 좌절을 맞게하는 악역을 맡고 있기도 하다 버지니아 울프는.


"우리는 각자 홀로 죽어가노라 그러나 나는 좀 더 거센 파도 밑에서 그보다 더 깊은 심연에 가라앉노라. 우리는 침묵을 무릅쓰고 달린다. 우리는 침몰할 것이 분명하다. “

전후의 허무함, 박인환이 <목마와 숙녀>에서 일컬었던 페시미즘(염세주의)을 극복하지 못하고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중에서 나는『등대로』가 백미라고 생각한다.

올해는 우리 모두 등대로 다시 향하는 그런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개인과 사회 모두.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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