륜과 순애 사이
내 생애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 전경린
가급적 삶과 연루되지 않는, 관능적이고 부유하는 사랑을 미화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쾌락과 감상과 욕망의 비루함과 무상한 환멸을 기록하게 되었으니, 사랑이 왜 지리멸렬한 삶의 가랑이를 벌리고 그 살점 속에 뿌리를 박아
서로의 악성 종양을 만들어가야 하는지 이 글을 쓰면서 새삼 숙고하게 되었다.
- 전경린 -
사랑이라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동시에 지겹기도 한 화두다. 인간이란 존재가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희로애락의 감정 중 사랑에 관한 다양한 경우와 해석들은, 작게는 개인의 삶은 물론이거니와 크게는 역사의 줄기까지 좌우하는 존재이다.
우정, 모성, 신뢰, 아가페, 에로스 등의 다양한 이름들로 불리긴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감정이 사랑이라는 하나의 굴레 안에 존재한다. 결국 감당하는 개인의 상식과 한계 안에서 모든 사랑은 공평하다 할 수도 있겠다.
영화와 소설, 일상에서 목격하는 사랑이란 것은 인간만이 느끼는 고유한 감정이고 동시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것으로 이야기되곤 한다. 누구에게나 사랑이라는 감정이 한 번쯤은 찾아왔을 것이고 그 커다란 파장을 직접 경험해 보았을 것이니 그렇게 얘기하는 것일 게다.
그런데 사랑이란 것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살아가는 가장 근본적인 에너지인 동시에 가장 잔인하게 죽일 수 있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전경린의 이 통속소설은 어느 철학자의 이야기보다 사랑의 본질에 다가가 있다.
“흔히들 더 선량하고 너그러운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랑을 한다고 착각을 하지만, 실은 정말로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끝까지 하는 자들은 나쁜 사람들이지. 보다 덜 선량하고, 부도덕하고, 연약하고 이기적이고, 히스테릭하고 예민하고 제멋대로이고, 불행하고 어둡고 자기도취적이고 집요하면서도 변덕스럽고, 독선적이고 질투하는 사람.”
“행복이란, 무지한 상태의 다른 말이죠. 행복하다는 말은 모른다는 말과 같아”, “당신 같은 안전 주의자가 평생을 나누어도 못 나눌 양의 사랑을 우린 나누었어.”
크리스마스 오후, 서른 살의 전업주부 미흔의 집을 찾아온 빨간 스웨터의 여자. 그것은 차라리 테러였다. 그 여자의 몇 마디는 미흔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었고, 믿음이 곧 결혼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에게 결혼생활은 아무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 사막에 사는 여자처럼 그 속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했었어. 육십 도의 고열도, 육 년 동안의 가뭄도, 뜨거운 모래바람도, 백이십 일간의 부재도, 삶 자체의 남루함과 처참함도….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참을 수 있게 하는 사랑이 박탈된 거야. 넌 단지 부정을 저지른 게 아니라 내 생을 빼앗아버렸어. 안 돼…. 난 이제 절대로 예전처럼 될 수 없어. 아무리 시간이 흘러가도 다시 사랑할 수 없어. 삶이 참을 수 없이 하찮아. 사람이 왜 허무해지는지 아니? 삶이 하찮기 때문이야. 마음을 누를 극진한 게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고요한 나비 마을로 이사 온 미흔의 가족은 그 평화로움에 도취되어 마치 아무 일이 없던 것처럼 살고 있다. 하지만 미흔은 알맹이를 상실하고 껍데기만이 바스락 거리며 살아간다. 그때 규를 만난다. 제도 속의 사랑을 거부하고, 아니 깨어져 버리고 그녀는 제도 밖의 사랑에 눈을 뜬다. 삶이 무너졌다고 생각한 인생의 자락에서 섹스는 하되 절대로 사랑해서는 안 되는 위험한 게임에 빠진다. 그것은 명백한 불륜이다. 그러나 불륜이란, 밖에서 보는 척도일 뿐 그녀의 입장에선 그럴 수밖에 없는 필연인 것이다.
“이제부턴 강해지기를 바라. 강하다는 건 이를 악물고 세상을 이긴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상관없이, 어떤 경우에도 행복하다는 거야”
제도 밖 사랑의 예후가 그렇듯이 미흔은 홀로, 파멸이 끝난 폐허를 딛고 무덤덤하게 낯선 도시에서 낯선 모습으로 낯선 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녀는 가졌다. 가장 생의 본질에 맞닿았던 그 시간들을…. 그 시간들은 제도 안에서는 말할 수 없는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로 영원히 그녀의 내부에 새겨져 있다.
내 생은 살이 망가진 우산을 펴고 보이지 않는 먼 공중으로 아득히 날려가고 있는 것만 같다. 삶도 둥글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바다를 건너 언젠가는 그 처음으로 가 닿고 싶다. 훼손되지 않은 내 꿈의 맨 처음으로…….
나비는 날기 위해서 30도 이상의 체온을 유지해야 한다. 최대한 빛을 많이 쪼여 그 복사열로 체온을 올려 비상을 꿈꾼다. 체온이 뜨거운 동안만 날 수 있는 흡사 나비처럼, 여자는 남몰래 제도 바깥의 비상을 꿈꾸기도 한다. 때론 너무 무겁고 때론 너무 하찮은, 곡예라도 하듯 이쪽 끝과 저쪽 끝을 오가는 삶을 나비처럼 견딘다. 그러나 무덤덤할 때는 불륜 같은 자극을 꿈꾸지만, 그것이 내 것이 되었을 때는 감히 자극적이라 말하지 못한다. 그 삶에 중독되거나 소외되거나 하는 것을 위안 삼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불같은 사랑 때문에 일생을 미흔처럼 혼자 견뎌야 한다고 해도 그 사랑을 선택할 것인가. 겁쟁이인 동시에 영원한 실패자인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리라. 그런데 장담할 수 있을까? 내 서 있는 자리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순간을 만난다면 미흔처럼 위태로운 날갯짓을 하며 날아갈지도 모르는데.
사랑은 결코 행복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순애(純愛)' 속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륜(倫)'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믿음이 사랑의 본질에 이르는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짜 사랑은 '이 사람이 어딘가에 살아만 있다면 나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사랑받는 것은 멸망하는 것이며, 사랑하는 것은 멸망하지 않는 것이다.
릴케 <말테의 수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