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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Dec 25. 2022

무엇이 밥만큼 무거운가

옷과 밥과 자유

공중에 떠다니는

저기 저 새요

네 몸에는 털 있고 깃이 있지.

 

밭에는 밭곡석  

논에는 물베

눌하게 닉어서 수그러졌네!

 

楚山지나 狄踰嶺

넘어선다

짐 실은 저 나귀는 너 왜 넘니?


김소월 詩 <옷과 밥과 자유>






소월의 결핍은 '옷과 밥과 자유'였다. 공중에 떠다니는 새에게는 자유를 부러워할 것 같지만 그는 깃털 즉, 옷을 첫 번째로 부러워한다. 그리고 옷조차 없는 이에게 남의 밭에서 익어가는 곡식은 배고픔을 더욱 상기시킬 뿐이고.


주린 등짝에 짐을 싣고 힘겹게 적유령 고개를 넘는 나귀에게서는 자유를 강탈당한 , 고삐 쥔 이가 끄는 대로 이끌려가는 시인을 포함한 우리를 본다.


한때 내가 운영하던 블로그의 이름이 소월의 이 시에서 제목을 차용한 '글과 밥과 자유'였다. 배부르지 않더라도 글로 밥벌이하며 자유롭게 살고 싶은 자기 암시로 지은 이름이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당차고 야무진 꿈이었고 인생이란 어차피 예상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교훈만을 얻었다.


소월의 시선으로 이야기하자면 전공 덕에 밥걱정 안 하고 사니 족해야 한다. 누구에게 얽매이기 싫었든, 사랑을 믿지 않았든, 비혼인 지금의 생활에는 그야말로 자유넘쳐흐르니 이것도 족해야 한다. 자유는 방종이 될 만도 한데 제법 자신을 통제할 줄 아는 정도의 지성은 겸비하고 있으니 이것도 불행 중(?) 다행이다.


문학이나 예술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성공은 결핍에서 온다고 믿는다. 그런데 내겐 결핍이 결핍되었다. (애초, 욕망의 그릇이 작았던 터)


소월의 세 가지 결핍이 좋은 시로 이끌었다면, 그랬다면 나는 좋은 글을 쓸 수 없는 것이 자명하다.'당신은 글쓰기에 재능이 없소!'라고 신통한 예언가가 말해준다면, 정말 그래준다면 차라리 그 핑계로 글쓰기를 놓고 사뿐하게 살고 싶은데. 그 하나의 결핍을 채우고 싶은 것은 욕심이라고 누가 대신 말해 줬으면.




비틀스가 차트를 휩쓴 후 데뷔하는 밴드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천재들이 노래하고 간 뒤 누구 하나 들어주지 않는 무명 밴드들의 연주.

음악이란 것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을 그들을 일으켜 세운 건 순수한 음악 그 자체였을까?


내겐 소월의 만큼이나 무거운 쓰기!

당신은, 무엇이 밥만큼 무거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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